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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우담화 보살에 대한 기억

기자명 지현 스님
남자 하나 바라보고 학교 직장 그만두고 내려왔는데

약속했던 땅도 집도 없고 “스님 저는 속았어요 엉엉…”


우담화 보살은 우리 절 아래 오래 살았다. 오래 살았다해야 십여 년. 그런데 그녀는 가끔씩 집을 나가 그녀의 남편을 울게 만들었다. 서울에서 대학까지 다니다 엉뚱하게 지금 남편을 만나, 그를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회사를 다니다 그것마저 그만두고 이곳 절 아래 남자의 마을로 내려왔다.

이제 그녀의 나이 서른 셋.

그녀는 나를 찾아와 울먹이면서 “스님, 전 속았어요. 속았어요.”라고 했다.
“땅도 많고 집도 좋은 기와집이라 하면서 저더러 내려가자고 했다구요. 그런데 아무 것도 없잖아요. 전 여기 못 살아요, 스님.”

그녀의 남편은 고추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그게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선해 보이는 그 남자의 모습이 떠올라 나는 그녀에게 조금 더 참아보라고 달랬다. 허나 그녀는 자기 부모가 살고 있는 부산으로 훌쩍 내려가 버렸다. 그녀는 그곳에서 모든 걸 잊고 새로 출발하고자 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자기 언니와 동생이 같이 하고 있는 카페에서 일하면서 생기를 얻고 자기만의 삶의 행로를 찾고자 했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견디다 못해 부산으로 찾아갔다. 장인, 장모 앞에 꿇어앉아 울먹이면서 아내를 다시 데려가게 해달라고 애걸했다. 우담화 보살의 부친은 평생 배를 타고 다니던 마도로스였다. 그분은 소주 한 병을 그대로 들이키고 난 뒤 남자의 귀 뺨을 후려치며 호령했다.

“이 못난 놈아, 오죽했으면 우리 애가 너를 떠났겠는가? 가서 너대로 살아라.”
남자는 돌아서야 했다.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그는 우리 절 아래 동네로 돌아왔다. 나는 그 후 그러려니 하고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불쑥 우담화 보살이 나타났다.

“…스님, 저 왔어요. 이제 안 가겠어요.”

나는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다독여 주였다. 아이를 가졌다고 하며 환하게 웃는 그녀는 참으로 착해 보였다.

“저 이제 진짜 도망가지 않겠어요, 스님.”

그녀의 옆에서 수줍은 듯 가만히 앉아있던 남자가 내게 조그만 선물을 내 놓으며 말했다.

“모든게 스님 덕분입니다. 잘 살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산 아래로 내려갔다. 가난이, 찌든 삶이 이제 그들을 갈라놓지 않기를 나는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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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달 동안 이 조그만 칼럼을 쓰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우리 이웃들과 함께 모든 아픔과 즐거움을 나누어야 함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또 다른 만남의 장을 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저의 졸필을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신 독자여러분께 심심한 고마움을 전합니다.


지현 스님/봉화 청량사 주지

chengsj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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