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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불교 19-아시아 여성불교인과 비구니 교단②

기자명 박경준
  • 교계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실천과 종교적 헌신 다하는 여성 불교인 집단

종교·사회적 지위 없어…카빌싱 모녀 비구니 교단 발원
태국 마에지 협회 '교육은 발전 토대' 인식 교육사업 전개


태국 여성불교인 '마에 지(Mae Ji)

태국에는 비구니가 존재한 적이 없었다. 서기 1세기 무렵에 불교가 동남아시아에 대부분 유입되었지만 당시에 비구니가 수계를 받았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좌부 불교가 스리랑카에서 미얀마로 전해진 것은 서기 11세기 무렵이었으며 그곳에 비구와 비구니 법계도 성립되었다.

그러나 17세기 정도만 해도 태국의 일부 불교 사원 내에 살면서 흰색 법복을 입고 삭발한 여성들에 대하여, 이곳을 방문한 유럽의 여행객들이 언급하고 있다. 그들이 바로 '마에 지(Mae Ji)'인데 이들은 신심 있는 재가인들의 10계 중 5계나 8계를 스스로 수지하고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도록 특별한흰색 법복을 입은 삭발 여성으로서 때로 연장자도 있었다. 오늘날 태국에는1만 명 정도가 존재한다.

'마에 지'는 조직화된 적도 없을 뿐더러 어느 누구로부터도 재정적이거나도덕적인 지원을 거의 받아보지 못했다. '마에 지'는 개인적으로 세속 생활과의 인연을 끊고 신성한 행동에 자신을 바치고자 하는 여성들이다. 이들은전국에 걸쳐 있으며 그들의 실천과 종교적 헌신 역시 매우 다양하다. 많은이들이 주지의 허락 하에 사원 내에 살면서 승려들을 위해 요리나 청소 등을 하는 대가로 최소한의 생활비를 받고 있다. 일부는 친척들에게서 약간의지원을 받으며 일부는 생존을 위해 걸식을 해야 한다. 자신을 도와 줄 가족도 없이 나이가 든 사람도 많다.

사람들이 '마에 지'를 승려들처럼 '복전(福田)'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말하자면 '마에 지'에게 한 보시는 보시자에게 많은 복을 짓게해 주리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많은 보시를 받지 않는다. '마에 지'는 수계한 사람들이 아니므로 그들의 종교적 행위에서 발생하는 종교적 지위나 사회에서의 특별한 지위가 없다. 많은 승려들은 이들을 귀찮게 생각하여 사원에 있지 못하게 한다. '마에 지'는 거의 모두 가난한 농가 출신이며 약 60%가 7년 미만의 학교 교육을 받았다. 대부분의 태국승려도 비숫한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재가인의 보시에 의존하는 각자의 사원에서 교육을 받으며, 개개인의 승려는 교단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상당한 법적·사회적 지위를 갖는다. '마에 지'는 이러한 권익 중 어떠한 것도 얻을 수 없다. 그 대신에 그들은 역경과 빈곤의 삶을 산다.

'마에 지'는 아직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들의 사회적 배경과 교육의 부재 때문에 자신들의 상황을개선하려는 생각을 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종교 개혁가와 종교의 보호자역할을 하는 태국 정부는 '마에 지'를 도움이 필요한 사회 단체로 보고 있으며, '마에 지'들도 자신들의 삶에 몇 가지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고자한다.

1969년 태국 왕비의 후원 아래 일군의 장로 비구들이, '마에 지'의 지위를 개선시키고 종교적 교육의 기회를 부여하며 그들의 사회복지에 기여함으로써 모든 '마에 지'들을 통합하고 조직화할 목적으로 '태국 마에 지 협회'를 구성하였다. 지금까지 4천명 이상의 '마에 지'가 등록하였으며 방콕에있는 협회에서 그들에게 종교 교육을 시키고 있다.

'마에 지' 스스로도 교육이야말로 자신들의 장래의 발전이 걸려 있는 기초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자신들이 비구로부터 계를받았으므로 이제는 태국 정부가 자신들을 성직에 있는 여성으로 완전히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된다면 그들에게도 정식으로 종교적 지위라는 품위가 주어지고 대중적인 인식과 그들에 대한 지원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마에 지'가 처한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필수적인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마에 지'는 비구니계를 받고자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더 높은 지위에대한 야망 없이 종교적 헌신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개인적인 결심을 한 여성들이다. 그러나 현재 태국에서 '마에 지'의 삶은 여성에게나 도움을 줄 수있는 단순한 종교적 사명감일 뿐, 도시 출신의 다소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에게는 매혹적인 것이 아니다. 이러한 여성 중 일부는 비구니 교단을 태국에 들여오고 싶어하는데 그럼으로써 품위와 적법성을 갖춘 종교적 사명감이 태국 여성들에게도 유용하게 하고자 한다.

비구니계를 사양하는 '마에 지'

오늘날 태국에서 비구니 수계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태국 최초로여성 불교인을 위한 사원을 나콘파톰(Nakhonpathom) 지방에 세운 보라마이카빌싱(Voramai Kabilsingh, 비구니 타 타오 Ta Tao) 승려와, 방콕 탐마사트 대학교 교수 찻수만 카빌싱(Chatsumarn Kabilsingh) 박사 모녀 팀이다.

젊은 시절 학교 교사였던 보라마이 카빌싱은 결혼해서 딸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종교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또 그런 만큼태국의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도 깊어갔다. 40대에 들어서자 그녀는 삭발을하고 방콕에서 존경받는 한 비구에게 8계의 수계를 부탁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마에 지'의 흰색 법복을 입지 않고 엷은 황색 법복을 입어 스스로를'마에 지'와 비구 양쪽으로부터 구분시켰다.

이듬해인 1957년 방콕 근처의 나콘파톰 지방에 부지를 매입하여 여성 불교인들이 머물기 위한 '와트라 송다르마 칼리얀티(Watra SongdharmaKalyanti)'를 건립하였다. 또한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와 고아원을 열고 월간 잡지를 발행하며 출판도 시작하였다. 지난 36년 동안 보라마이는 도움을필요로 하는 재가인들을 돕기 위해 많은 사업을 해왔다. 이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제자들을 위해 주말마다 자신의 사원에서 정기적인 종교 행사를 갖고있다. 중국의 교단으로부터 비구니계를 수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보라마이는 1971년 대만에서 타타오라는 법명으로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보라마이 승려의 딸인 찻수만 카빌싱은 여성 불교에 대한 어머니의 깊은헌신을 함께 하고 있다. 찻수만은 고국인 태국에서는 물론 인도와 캐나다의대학교에서 불교를 공부하였다. 그녀는 '마에 지'의 대변자로도 유명해졌는데 이와 아울러 상좌부 불교 국가에서의 비구니 교단 건립과 불교에서의 여성의 지도력에 대해서도 옹호하였다. 탐마사트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논문과 서적 몇 편을 출간하는 일 외에도 불교계 여성들을 위한 국제 회의를 조직하였다. 1984년에는 <국제 여성 불교인 운동회보(Newsletter onInternational Buddhist Womem's Activitues)>를 간행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현재 38개 국가에 구독자가 있다.

새로운 비구니 교단의 모색

차수만 카발싱이 재가 여성으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태국에 비구니 교단건립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녀도 스리랑카의 아야 케마처럼, 여성불교인들이 자신의 종교적 염원을 완전하게 성취해야 하고 이것은 비구니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리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여성들에게 태국 재가인의 존경을 얻을 수 있는 기회와 현실적인 안정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교단이라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카빌싱 박사가 선정이나 종교 의식에만 모든 시간을 다 바치는 그러한 비구니 교단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구니라면 자신을 지지하는 신성한 교단의 힘을 통해 태국은 물론 세계를 위협하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라교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태국의 사원은 남성과 소년들을 위해서는, 그들에게 종교적이고 현실적인교육을 시키고, 은퇴하고 찾아갈 수 있는 장소가 되어 주는 등 많은 봉사를하고 있다. 태국의 여성들은 의지할 곳이 없다. 비구니는, 보라마이 카빌싱승려가 '와트라 송다르마 카리야니'에서 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비구니 사원'에서 여성과 소녀를 교육할 수 있을 것이며, 여성들의 가정문제나 개인적인 문제들을 도와주고 상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찻수만 카빌싱은 그녀의 어머니인 보라마이 승려나 스리랑카의 아야 케마 승려처럼, 비구니가 사회 봉사에 참여해야 하며 그들도 그것을 원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비구니 교단 건립의 반대

대다수 태국 비구들은 자국에 비구니 교단이 건립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보라마이 카빌싱이 엷은 황색 법복을 입고 여성 불교인들을 위하여 '와트라 송다르마 칼리야니'를 열었을 때 비구 교단에게 돌아가야 할 특권을침해한다고 교단과 시 당국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태국 교단의 최고 지도부인 장로회의 조사에 의해 그녀의 무죄가 입증되고 나자 정부와의 어려움은 더 이상 없었다. 그러나 보라마이가 중국 법계의 비구니계를 수지했을때에는 태국 교단이 그녀의 수계 증명을 거부하였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국에서 상좌부 비구니가 아닌 중국 비구니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일부 학식 있는 소장파 태국 비구들은 여성과 비구니 교단을 향한낡은 부정적 태도를 바꾸고 있다. 장래에 이 남성들이 교단의 지도자가 될것이다. 태국의 교단은 계급적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주로 정부의 감독 하에 관리되고 있다. 장로회의의 의결 사항은 교단 전체의 행동을 결정한다.그러므로 비구니 문제에 대하여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소장파 비구들이회의석상에 앉게 되면 그 날이 여성 불교교단이 설립하기에 적당한 때가 될것이다.

재가인 들의 존경과 경제적 지원 없이는 교단이 존속할 수 없기 때문에 상좌부 국가의 재가인들이 비구니 교단을 받아들이는 것도 필수적인 일이다. 동남아시아의 상좌부 재가인들은 구족계를 받은 여성 불교인을 경험한 적이 없다. 재가인들을 설득하여 비구니라는 관념을 받아들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태국의 여성들이 중국 법계의 수계를 받고 나서 정결한 실천을 통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얻는 것이다.

비구니계 수지는 일부 학식 있는 태국 여성들이 열망하는 일이다. 일부'마에 지'는 비구니 수계를 원해왔다. 1988년과 1989년에 두 명의 '마에지'와 한 명의 태국 재가 여성이 미국에서 상좌부 비구에게 사미니계를 받았다. 사미니계를 받은 것은 구족계 수계의 첫걸음이다. 2년 후에 비구니구족계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미니계는 상좌부 계통에서 받았지만 이여성들이 비구니계를 받으려면 보라마이 카빌싱 승려나 아야 케마 승려, 그리고 다섯 명의 스리랑카 출신 '다사 실 마타보'가 그랬듯이, 중국이나 한국, 베트남 비구니를 통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수계식을 치루어 줄 수 잇는 상좌부 비구니 계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구 교단은 다시 한 번 그들을 상좌부 비구니로 인정해야 할 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과연 그들은 어떠한 결정을 내릴 것인가?


박경준/동국대 불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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