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식(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이 《한국학보》 제80집에 발표한 `조선불교청년총동맹과 만당'이 그것.
김연구원은 당시 불교계의 중심문제가 △사원령 철폐운동 △통일기관 설립운동 △불교계의 개혁운동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이들 문제가 불교청년을 중심으로 전개됐다"고 밝혔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조선불교청년회를 재건한 불교청년들은 자주적인 불교계 교정 확립을 위한 승려대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거나(1929) 범태평양불교청년대회에 대표를 파견하는(1930) 등 보다 진일보한 청년운동을 주도하지만 조직, 자금 등의 문제로 완전히 정상화되지 못했다.
이에 불교청년운동의 핵심세력이었던 조학유, 김법린 등이 불교청년운동을 강화하고 불교계 전반의 △정교분립 △교정확립 △대중불교 등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한것이 만당이라는 것이다. 즉 만당은 조선불교청년총동맹의 이면단체로 활동했다는것이 김 연구원의 주장이다.
따라서 1934년 이후 총동맹의 활동이 침체됐던 것도 만당의 와해가 근본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김 연구원의 지적이다. 당원간의 교정에 대한 상이한 현실인식, 김상호의 교무원 이사 진출 등의 문제로 만당이 와해된 후 총동맹은 침체되고 이후 일제의 식민통치에 타협하는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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