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유지-교리발전' 목적 태동
오늘날과 가장 유사한 형태는 역시 보(寶)다. 보는 진평왕대 이미 원광법사에 의해 점찰보가 출현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보가 삼보(三寶)라는 말에서 유래했듯 처음 설치될 당시에는 보시자(布施者)들이 시납(施納)한 전곡(錢穀)을 비축해 보를 세운 뒤 이익사업을 벌여 그 이자로써 교단의 유지와 교리의 발전을 꾀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고려말 많은 사원에서 본래의 취지를 상실한 채 지나치게 이익만을 추구한 나머지 지탄의 대상이 되고 결국 억불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됐다.
조선후기 성행했던 사찰계(寺刹契)는 불교신앙을 바탕으로 수행과 신앙심을 증진시키거나 사찰 재산, 혹은 전각, 의식용품 등을 마련하기 위해 결성한 조직체다. 사찰계가 활성화된 것은 혹독한 억불숭유의 정책에서 자구책을 마련해야만 했던 경제적인 배경 때문이었다. 18∼19세기 전국의 모든 사찰에서 각종의 계가 번성하면서 조선후기 사찰의 경제적 기반을 확충시켜나갔다. 그러나 눈 여겨 볼 것은 사찰계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의 해결차원을 넘어 집단의 결속을 통해 수행과 신심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점이다.
이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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