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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현장의 생애-7

4분3류의 독자적 유식학설 정립

호법 학설 계승 여부는 아직도 미지수




"4분(分)3류(類) 유식반학(唯識半學)"이란 말이 있다. "4분설과 3유경(類境)설을 제대로 이해하면 유식사상을 반쯤은 터득한 셈이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유식사상이라 했지만 실은 인도와 중국의 유식사상 전체를 통틀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법상종의 유식사상만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4분3류 유식반학'이란 전승에는, 4분설과 3유경설 속에 현장의 유식 사상이 농축되어 있다는 평가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4분설은 마음을 네 가지 존재영역으로 나누어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3유경설은 마음의 대상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마음과 마음의 대상은 능연(能緣)과 소연(所緣)의 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에 '4분 3유경'설은 결국 마음 세계 안의 한 쌍, 즉 능-소의 관계항에 대한 현장 나름의 분석이라 할 수 있겠다.

먼저 4분에 관해서 살펴보자. 4분이란 상분(相分), 견분(見分), 자증분(自證分/자체분 自體分), 증자증분(證自證分)의 네 가지를 말한다. 이 네 가지 마음의 존재영역이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지 정확하게 집어내기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읽는 분들의 질정을 기다리며 부족하지만 내 나름대로 이해한 바를 소개하겠다. 우리가 어떤 대상―그 대상이 허구적인 것이든 실재이든―에 마음을 기울인다고 하자. 이 때 우리의 마음에는 이 대상을 파악하는 어떠한 인식 방식이 있기 마련이다. 한 예로 동트기 전 골목길에서 돌장승을 보았다 하자. 가까이 가서 보지 않으면 생긴 것이 꼭 사람 같아 보이니, 평소에 겁이 많은 사람은 이 돌장승을 보고 강도로 오인할 수 있겠고, 비교적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사람은 그대로 돌장승으로 인식할 수 있겠다.

4분설에서는 이 양자의 마음 자체를 '자증분'으로, 사람 같이 생긴 '그 무엇'인 인식 대상을 '상분'으로, 강도로 보거나 돌장승으로 보거나 하는 마음 속의 인식 방식을 '견분'이라 부른다. "이것은 강도다" 또는 "이것은 돌장승이다"는 일차적 판단은 자증분, 견분, 상분, 이 세 가지가 갖춰질 때 비로소 성립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떻게 일차적 판단의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일차적 판단을 대상으로 삼는 반성적 마음이 일어나며, 이러한 반성적 마음을 4분설에서는 '증자증분'이라 부른다.

3유경이란 성경(性境), 독영경(獨影境), 대질경(帶質境)을 말한다. 좬성유식론장중추요좭에서 자은대사 기는 현장의 3유경설을 게송으로 전한다. "성경불수심(性境不隨心), 독영유종견(獨影唯從見), 대질통정본(帶質通情本), 성종등수응(性種等隨應)" 이 게송을 우리말로 풀이해 보자. "실재(性境)는 마음에 얽매이지 않는다. 환각(獨影境)은 주관적인 것일 뿐이다. 실재의 표상(帶質境)은 실재를 반영한 것인가 주관에 따른 것인가에 따라 주관적인 것일 수도 있고 실재적인 것일 수도 있다." 3유경, 곧 실재와 표상, 그리고 환각이 모두 4분설에서 말하는 '상분'에 귀속되니, 실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인식방식 곧 '견분'의 중요성, 더 나아가 '자증분'인 마음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법상종의 전통에서는 '안난진호(安難陳護) 일이삼사'란 말이 흔히 인용된다. 이 말은 마음 세계에 대해서, 안혜는 1분설을, 난다는 2분설을, 진나는 3분설을, 마지막으로 호법은 4분설을 주장했다는 뜻으로, 법상종의 학설과 선행하는 여타 학설을 구분 짓는데 쓰인다. '일이삼사'의 세세한 차이를 규명할 여유는 없지만, 4분설이 호법의 학설을 계승한 것이라는 점, 또는 적어도 4분설의 기원을 호법에 돌리고 있다는 점만은 알 수 있다. '4분'의 범어 원어가 무엇인지 아직도 그 정확한 출전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4분설이 과연 호법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아니면 현장이 창안해낸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4분설 뿐만 아니라 3유경설에 관해서도 사정은 같다. 호법의 저술에서 '4분 3유경'설을 찾아낼 수 없는 이상, 당분간 '4분 3유경'설을 '현장의 사상'으로 뭉뚱그려 파악할 수밖에 없다.



이종철(한국정신문화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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