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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여기는 선불장(選佛場)

기자명 법보신문
“西江의 물 한 입에 들여마셔라”

마조대사 말씀에 방거사 활짝 깨달아




방거사라는 호칭으로 널리 알려진 방온(龐蘊)이 마조대사를 찾아가 물었다.

“만법(萬法)과 짝하지 않는 것은 어떤 사람입니까.”

“네가 한 입으로 저 서강(西江)의 물을 다 들여 마시거든, 그때에 일러주마.”

이 한 마디를 듣는 순간 방거사는 활짝 깨달았다. 그리고 이 같은 게송을 읊었다.



시방(十方) 함께 모여들어

저마다 배우는 무위(無爲).

그러나 여기는 선불장(選佛場)이라

마음 비워 급제해 돌아가노라.

十方同共聚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十方. 사방인 동서남북과, 사유(四維)라 일컬어지는 서북·서남·동북·동남에, 다시 상(上)·하(下)를 추가한 것. 모든 방위. △同共. 함께. 共同과 같다. △箇箇. 하나하나. △無爲. 열반. △選佛場. 부처님을 뽑는 과거장. 선을 수행하는 승당(僧堂)의 비유.



먼저 “시방 함께 모여들어”의 ‘시방’이라는 말의 용법이 이색적이다. 현실적으로는 각처에서 선객들이 몰려든 것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해 시방이라는 말을 썼는가. 더구나 불교의 용어례(用語例)에서 볼 때 ‘시방세계’라는 말에서 보듯 우주 안의 온갖 세계를 가리켜 왔으니, 그런 세계들이 여기에 모여 있다는 뜻인지 의아스럽기도 하리라.

그러나 우주에 깔린 무수한 세계도 마음의 잣대로 구분하는 불교적 관점에서는 십계(十界)만이 있음이 된다. 곧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범부의 세계인 육도(六道)와, 성문·연각·보살·불(佛)의 성자의 것인 사성(四聖)의 세계가 그것이어서, 이것 외에 어떠한 다른 세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런 십계의 하나하나는 꼭 고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천태대사의 십계호구(十界互具)의 설이 시사하듯, 한 세계는 그 세계의 특성을 강하게 드러내면서도 다른 아홉 세계를 자기 안에 지니고 있어서, 다른 세계로의 전락이나 초월의 가능성 속에 늘 놓여 있음이 된다. 이는 우리들 자신을 조금만 반성해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진실이니, 하루에도 몇 번씩 천상에도 올랐다가 아귀나 아수라로 떨어졌다가 함이 우리 자신이 아니던가.

이런 관점에 서면 시방세계는 곧 십계인 것이어서, 이제 마조대사의 도량에 선객들이 모여든 것은 그들의 마음에 내재해 있던 불심이 다른 구계(九界)의 마음 모두를 동반하고 나타난 것이 될 터이다.

그러면 무엇을 하기 위해 십계(시방)가 이리나 총동원되었던 것인가. 각자 무위를 배우기 위해서라 함이 게송이 주는 대답이다. 그리고 모처럼 희망에 부풀어서 찾아왔던 그들은 깊은 좌절에 빠지고 만다. 도대체 무위(無爲)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도 아닌 점에서 있다고도 할 수 없는 그 무엇이어서, 타자와의 관계 속에 있는 상대적 차원을 뛰어넘은 절대요, 절대라고 말만 한 대도 그 절대성을 깨뜨리는 결과가 되는 그런 절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분별에 서서 무위를 위해 기울이는 수행은 처음부터 파탄을 빚을 수밖에 없어지니, 방거사의 “만법과 짝하지 않는 것은 어떤 사람인가” 라는 물음도, 이런 처지로부터 탈출구를 찾아내려는 염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이 난관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 게송은 부처님이 되는 것이 선의 수행인 바에는 어려움은 당연하다 하고, 그 어려움도 마음을 비우는 것에 의해 손쉽게 극복된다는 결론을 내렸는 바, 신중한 검토를 요하는 대목이다.

앞에서 보아 왔듯 무위를 체득한다는 것은 하늘에 있는 별을 따오는 일인만큼이나 무모한 짓이었다. 그러나 이는 분별을 무기로 절대적 진실에 맞섰기 때문일 뿐, 공의 지혜로 대할대는 사정은 달라진다. 생사도 무위도 부처도 공인 터에 무엇이 장애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인다. 공의 지혜가 발동되는 곳에 일체의 의혹은 사라지고, 그리해 확 트인 무일물(無一物)의 차원이 바로 무위의 절대적 진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서강의 물을 한 입에 들여 마시라는 마조대사의 말이 공의 도리로 무명을 날려버리라는 가르침이었다면, 그 지시를 따라 대번에 깨달은 방거사 또한 대단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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