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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천성산 관통도 저지 단식 36시간 체험

기자명 안문옥

'편한 안방 뇌리에…스님 보니 한없이 부끄러워'

3월 8일 오후 2시 부산 지하철 시청 역. 출구를 채 벗어나가도 전에 기자를 맞은 것은 스님들의 독경 소리였다. 넓은 시청 광장 한 곳에 자리 잡은 2평 남짓한 천막, 그 안에 있는 작은 체구의 연약한 비구니 스님. 스님은 어쩌면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의 무모하고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한 걸음 한 걸음…. 천막입구에 들어서는 동시에 스님의 눈과 마주쳤다. 고개를 숙인 채 좌선을 하고 있는 스님을 보는 순간 내 속의 무언가가 울컥하고 솟구쳤다. 차가운 두 손, 까만 얼굴, 바짝 말라 갈라진 입술…. 스님과 36시간의 동고동락은 그렇게 시작됐다.



단식 현장 어떨까? 궁금

155cm의 정도의 작은 체구 어디서 저런 강함이 나올 수 있을까. 32일째 물과 소금으로 버티는 스님. 스님에게선 특별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스님은 타인의 부축이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일어나는 스님을 부축하려는 기자에게 지율 스님은 오히려 '먹지 않고 이틀간 버틸 수 있겠어요'라며 걱정어린 말을 건넸다.

' 내가 과연 36시간 동안 먹지 않을 수 있을까. ' 내심 걱정이 됐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 물 한잔을 받아 마셨다. 따뜻한 물 한 모금이 식도를 타고 뱃속으로 들어간다. 스님이 준 물 한잔에 온갖 망상이 사라지는 듯하다.

단식을 시작한지 채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 배고픔 '이 찾아왔다. 아마도 원고마감과 부산 도착 시간에 쫓기다보니 금요일 저녁부터 식사를 못한 까닭이리라. 스님이 기거하는 천막 안은 의외로 외롭지 않았다. 8일 오후 반나절 사이에도 많은 이들이 부산 시청 앞 단식 기도장을 찾았다. 불자들은 하나같이 스님을 뵙고 찬 바닥에 절을 하며 스님의 깡마른 모습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스님이 단식을 끝낼 때까지 매일 기도를 오고 있는 청도 운문사 비구니 스님 30여명, 일주일동안 함께 단식했던 통도사 포교 국장 오심 스님, 은하사 대중 스님, 혜원정사 주지 스님, 교사불자모임회원들,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에서 온 불자들, 부산시민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각 방송국 PD들과 신문사 기자들도 이곳을 찾는 단골손님이었으며, 특별히 건설교통부 최재덕 차관의 방문도 있었다. 이들 중 대다수 방문객들은 스님의 건강을 걱정하며 스님의 단식투쟁에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오후가 지나갔다. 피곤하고 고단한 일이 많았던 하루, 앞으로의 일에 대한 계획으로 스님은 늦은 시간까지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천성산엔 지금 얼레지가 한창이겠지….' 스님의 독백 같은 한마디는 스님이 천성산의 꽃과 생명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12시 5분전. 단식을 시작한지 반나절이 넘었다. 배가 고프다. 배고프고 지친 기자와는 달리 스님은 여전히 명상에 잠겨 있었다.

새벽 3시. 잠에서 깼다. 시끄러운 차 소리와 코끝에 스치는 차가운 새벽바람 때문이다. 춥고 배고픈 탓에 신세는 처량하기 그지 없었다. 피곤함에 밀려 또 다시 어렵게 청한 잠이었지만 어렴풋(?)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스님은 천막입구를 다시 여미고 있었다. 부산의 바닷바람이 여기까지 불어오는지 천막의 입구가 활짝 열려있었던 것이다. ' 아차. ' 스님의 잠자리를 지키고 챙겨야할 기자는 잠만 ' 쿨쿨 ' 자고 있었다니. 혹시 스님이 감기라도 들면 어쩌지…. 큰일이다. 이렇게 추운 밤을 이 곳에서 한 달이 넘게 지냈을 스님을 생각해본다. 따뜻한 방과 침대. 그 동안의 편하고 따뜻한 생활이 저절로 부끄러워지는 밤이다.


역시나 스님은 고행상 같아

다음날 오전 8시, 단식 16시간 째. 더 이상 배고픔은 느껴지지 않는다. 며칠 전에 먹다 남겼던 자장면이 생각난다. 그때 왜 자장면을 남겼을까.

스님은 날이 밝자 ' 단식 33일째 '라는 스티커를 천막입구에 바꿔 달았다. 그리고 소금기 진한 뜨거운 물 두 잔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그 사이 ' 맑고 푸른 시민연대 '의 간사가 이불을 햇볕이 잘 드는 부산 시청 앞 잔디에 내다 걸고 천막 안을 청소했다.

스님은 물을 마시며 하루를 차분히 준비했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을까. 스님과 함께 물을 나눠 마시며 하루를 계획해 본다. 시계를 보니 단식한지 23시간이 막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뱃속은 더 이상 요동치지 않았다. 다만 기운이 조금 없을 뿐이다.

오후 5시에는 부산 지역불자들이 지율 스님을 격려하는 ' 이배수 예참모임 '의 회향이 있는 날이다. 첫날 20명으로 시작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난 이배수 모임은 오늘로써 1000명이 되는 날이다. 오늘 행사준비를 위해 봉사자들은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전 11시. 청도 운문사의 비구니 스님들 30여명이 방문했다. 운문사 비구니 스님들은 매일 오전 부산 시청 앞에서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독경 소리를 만천하에 울렸다.

오후 1시. 대낮부터 술에 취한 아저씨가 천막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불안하다. 갑자기 안으로 들어온 술에 취한 아저씨. 깜짝 놀란 기자의 반응과는 달리 스님은 태연하기만 하다.

'스님예, 스님 왜 밥 안 먹고 그러요, 스님, 나도 살기 싫어예.' 스님은 연민이 가득한 눈빛으로 술 취한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마침 나타난 통도사 포교국장 오심 스님. 스님의 큰 덩치에 주눅든 술 취한 아저씨는 슬그머니 천막 밖으로 나가버렸다.

오후 3시. 스님은 14일에 있을 ' 자연환경 보전과 수행환경 수호를 위한 불교도 정진대회 '에 많은 불자들이 참여해 주기를 바라는 편지를 작성했다. ' 귀의 삼보하옵고 '로 시작하는 편지에는 스님의 간절한 ' 천성사랑 '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오후 4시. 단식이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다. 지금의 배고픔과 고통이 하루가 아닌 한 달 이상 계속된다면 어떨까. 기운이 없다. 시간이 갈수록 스님의 원력이 한없이 커 보인다.


반나절 지나니 고통 밀려와

오후 5시, 이배수 모임의 회향 자리에 지율 스님을 걱정하고 격려하는 많은 불자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어느새 그 넓은 시청 앞마당엔 1000여명의 불자들로 가득 찼다. 예불이 시작되고 스님은 당당히 맨 앞자리에 섰다. 어느새 스님의 눈가에는 이슬이 하나둘씩 맺히고 있었다. 이날 모인 1000여명의 불자들은 아름다운 천성산을 지키자는 구호를 외치며 스님의 건강을 기원했다. 스님은 이날 모인 불자들을 위해 손수 매실차를 탔다. 자신의 몸 하나도 거동하기 힘들텐데….

'추운 날 한마음으로 모인 고마운 이들을 그냥 돌려보내서야 되겠냐'며 스님은 봉사자들과 함께 엄청난 양의 매실차를 탔다.

모임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끝났다. 이배수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마음속에 지율 스님과 천성산의 아름다움을 가득 담고 부산 시청 앞 기도장을 떠나갔으리라. 스님은 오늘 하루 고된 일정이 힘들었는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잠자리를 준비했다. 이제 예정된 36시간이 넘어간다.

스님과의 짧았던 만남을 뒤로하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눴다. 차가운 나무 바닥에서 스님은 앞으로 얼마나 더 있어야 하는 것일까. 앞으로 스님은 얼마나 더 많은 배고픔과 추위를 이겨내야 하는 것일까. 혹시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스님은 관세음보살 화신'

앙상한 얼굴, 움푹 들어간 눈, 갈비뼈, 쑥 들어간 배, 전신에 돌고 있는 세세한 핏줄. 스님을 뒤로하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런 생각을 하며 서울로 가는 발걸음과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소리 없이 죽어 가는 생명들,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에게 생명의 소리를 조용히 가르치는 지율 스님. 스님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수행자이자 선지식이었으며, 천성산의 뭇 생명들에게는 곧 관세음보살의 화신인지도 몰랐다.



부산=안문옥 기자
moonok@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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