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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비 오는 밤 사라진 서산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상

기자명 이숙희

어느날 사찰서 불상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산 25번지에 위치한 문수사 극락보전의 금동아미타불상은 1993년 7월24일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한밤중에 감쪽같이 사라졌다.(사진 1) 문화재 전문절도범들이 극락보전의 뒷벽을 뚫고 들어와 불상을 절취해 갔는데 지금까지 불상 소재지를 알 수 없다. 이 불상은 1974년 8월31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문화재였다.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좌상은 대좌와 광배를 모두 결실하였지만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불상 내부에서 복장이 발견되어 조성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발원문에 의하면, 고려 충목왕 2년인 1346년 9월8일에 승려, 문무관, 일반대중, 노비에 이르는 300여명이 발원하여 조성하였다고 한다. 많은 불교신도들에 의해 고려 후기에 아미타불상이 조성되었다는 것은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아미타신앙이 널리 확산되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좌상, 고려(1346년), 높이 70㎝. ‘도난문화재도록Ⅲ’ 지정편. 문화재청, 2010.
[사진1]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좌상, 고려(1346년), 높이 70㎝. ‘도난문화재도록Ⅲ’ 지정편. 문화재청, 2010.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상은 높이 70㎝, 폭 50㎝의 크기로 머리가 신체에 비해 작고 결가부좌한 다리의 폭이 넓어 균형 잡힌 모습이다. 머리 위에는 큼직한 반원형의 계주가 장식되었으며 얼굴은 표정이 없지만 인간적인 모습으로 부드럽고 착한 인상이다. 두 손은 아미타불의 상징인 설법인을 하고 있는데 오른손은 가슴 위로 올리고 왼손은 배 앞에 두고 각각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법의는 두꺼운 통견으로 양쪽 어깨를 덮었으며 옷주름은 몇 개의 선으로 표현되어 간략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다.

특히 왼쪽 가슴 앞에 표현된 마름모꼴의 금구 장식과 수평으로 입은 내의, 내의를 묶은 띠매듭 등은 고려 후기 불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앉아 있는 자세는 오른발만 위로 드러난 길상좌(吉祥坐)를 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단정하면서도 부드러운 조형감과 조각기법 등에서 고려 후기를 대표하는 불상이라 할만하다.

문수사 아미타불좌상은 인근 지역에 있는 충청남도 청양 장곡사 하대웅전 금동약사불좌상(보물 제337호)보다 2개월 뒤에 조성된 것이다.(사진 2) 장곡사 금동약사불상에서도 복장물이 발견되었는데 발원문에 백운 승려와 그의 제자들이 발원하고 낙랑군 부인 최씨를 비롯한 다양한 계층의 불교신도들이 시주하여 1346년 7월8일에 제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두 불상은 같은 시기에 승려와 불교신도들에 의해서 조성된 것으로 손모양만 다를 뿐, 불상의 형식이나 특징에서 매우 유사하다.
 

서산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상
1993년 7월 비 오는 날 밤에
극락보전의 뒷벽 뚫고서 절도
복장에서 발원문과 다라니 등
17종에 504개의 전적류 발견
전적류에 각필·석독구결 있어
국어사 연구 귀중한 자료 평가
불상은 사라져 볼 수 없으나
복장물은 수덕사성보관 보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금동아미타불좌상 또한 얼굴이나 신체비례, 법의의 착의법과 옷주름 등에서 문수사 불상과 유사하여 같은 유파의 조각가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스타일의 고려 후기 불상은 충청남도 당진 신암사 금동불좌상(보물 제987호)을 비롯하여 국립부여박물관 소장의 금동아미타불좌상, 국립전주박물관 소장의 금동아미타불좌상 등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어 당시 지역적인 특성이 반영된 듯하다.

장곡사 금동약사불좌상, 고려(1346년), 높이 90㎝.
[사진 2] 장곡사 금동약사불좌상, 고려(1346년), 높이 90㎝.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상의 복장에서는 발원문 외에 경전, 다라니, 물목을 기재한 필사 자료 등 17종 504개에 이르는 다양한 전적류와 고려 말에 제작된 복식 1점을 비롯하여 각종 직물류와 팔엽통, 방울, 구슬류 등도 발견되었다. 특히 전적류 중 ‘묘법연화경’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 ‘의천속장경판기’는 각각 각필과 석독구결(釋讀口訣)이 있어 국어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불상은 도난돼 볼 수 없으나 복장물은 현재 수덕사근역성보관에 보관되어 있다.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상과 같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불상들이 다수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두정동 양림사 극락보전에 봉안된 조선시대의 아미타불좌상 역시 2005년 11월11일에 홀연히 사라졌다.(사진 3). 이 불상은 높이 50㎝로 크기가 작은 편이며 도금된 상태라 재료가 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둥근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표현되었으나 개성 없는 모습이며 양쪽 어깨를 덮고 있는 통견의 법의는 가슴을 많이 드러낸 채 배 부분까지 내려와 있다. 두 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서로 겹쳐 놓고 엄지와 두 번째 손가락을 맞대어 둥근 형태를 하고 있어 특이하다. 형태상으로 볼 때 아미타불이 주로 취하는 구품왕생인의 하나인 상품상생인(上品上生印)과 매우 유사하다.

또 어떤 지역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연쇄적으로 도난당하기도 했다. 1988년 4월부터 몇 달 사이에 금산사, 심곡사, 흥복사, 운주사, 천은사, 도갑사, 내소사, 금당사, 위봉사, 귀신사 등 전라도 지역에 있는 불상·불화들이 도난당한 것이다. 1991년 10월부터 12월 사이에는 충청도 일대의 광덕사, 영국사, 향천사, 봉곡사 등의 불교문화재들이 도난되었으며 1997년 2월부터 5월까지는 경상도 일대의 신흥사, 상주포교당, 수정사, 기림사, 김룡사 등에서 불교문화재들이 차례로 도난되었다. 계절상으로는 태풍이나 장마로 비가 몹시 내리는 여름이나 눈이 많이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겨울에 도난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대별로는 저녁 예불 이후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예불을 드리는 4시 전까지 도난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하였다.

불교문화재를 훔치는 수법 또한 단순한 절도 행위에서부터 전문가의 솜씨, 기상천외한 방법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였다. 문화재를 잘 모르는 초짜 절도범들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훔쳤으며 범죄수법 또한 무식하리만큼 대담했다. 그러나 지능적인 문화재 전문절도범은 유통이 어려운 국보나 보물급 등 지정문화재에는 손대지 않았다. 이들은 주로 행동대원, 장물아비(나까마), 유통업자로 구성된 점조직 단위로 활동하며 도난 행위도 아주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양림사 아미타불좌상, 조선, 높이 50㎝. ‘도난문화재도록Ⅱ’. 문화재청, 2006.
[사진 3] 양림사 아미타불좌상, 조선, 높이 50㎝. ‘도난문화재도록Ⅱ’. 문화재청, 2006.

조직의 핵심인 장물아비는 전국에 있는 사찰과 고택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행동대원에게 지시를 내린다. 그러면 행동대원은 목표대상물을 훔친 다음 장물아비에게 물건에 대한 감정을 받은 후 돈을 받게 된다. 물건의 전달과 금전 거래는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이다. 장물아비는 물건에 관심을 보일만 한 개인 수집가 또는 골동상 등을 찾아가 팔아넘기고 남은 물건은 전국의 골동상에서 유통되며 문화재 세탁과정을 거치게 된다. 도난 문화재는 여러 단계를 거치다 보면 출처가 모호해져서 설령 찾았다고 하더라도 돌려받기가 상당히 어렵다.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상은 고려 후기의 불상으로 한때 사찰의 중심이 되어 많은 신앙을 받았지만 도난된 이후 지금까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잊혀진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되길 기대해 본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442호 / 2018년 6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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