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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불교 다양성 확보 문두루 의식복원 의미 있다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18.06.04 11:03
  • 수정 2018.06.07 17:20
  • 호수 1442
  • 댓글 0

밀교기도법의 하나인 문두루법(文豆婁法)을 연구해 온 진각종이 창교 71주년을 맞아 그간의 연구결과를 공개한다고 한다.

명랑 스님은 낭산 신유림에 문두루법에 의한 밀단을 만들고 사천왕사를 창건했다. ‘삼국유사'에는 ‘풀을 엮어 오방신상을 만들었다. 문두루 비밀지법(秘密之法)을 만들게 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사천왕사 창건 당시 문두루 의식이 치러졌음을 시사한다. 문두루 의식을 위한 밀단이 어떻게 설치되는지는 명랑이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오며 갖고 온 ‘불설관정복마봉인대신주경(佛設灌頂伏魔封印大神呪經)’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향즙을 둥글게 바르고, 7개의 등불을 밝힌다’ ‘청동거울을 다섯 방향에 비추게 한다’ ‘5방신의 형상을 만들도록 했다’ 등이 문두루법 의식을 위한 작법이다. ‘풀을 엮어 오방신을 만든’ 이유도 ‘관정경'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 명랑 스님이 시행한 의식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됐는지가 궁금하다.

고려 때까지 이어지다 조선의 숭유억불 시대에 끊긴 의식을 복원하는 의미 못지않게 명랑 스님의 문두루법 자체가 갖는 의미도 크다. ‘관정경'에는 ‘모든 위험한 액난과 무량한 중병을 떠나게 하며 삼계의 고통을 벗어나 열반에 오르게 해주옵소서’라는 구절에서 액난극복뿐 아니라 중생 모두 열반에 오르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착안하면 문두루법이 주술에 가깝기는 하지만 여래장 사상과도 일맥상하는 부분이 있으니 연구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신라 문무왕 시대의 불교 연구는 아직까지 유식과 화엄에 치중돼 있다. 그 중심에 원효와 의상 스님이 있었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 반해 명랑 스님은 주목받지 못해 신라 중대의 밀교 연구는 미흡하다.

진각종의 연구 결과는 신라시대 불교의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1442호 / 2018년 6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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