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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케마 ①

기자명 김규보

아름다움, 위안인 동시에 경계대상

빼어난 외모 가진 왕비 케마
자만심으로 과시에만 몰두해
번뇌일기 시작한 빔비사라왕
붓다 친견위해 죽림정사 향해

아침이 밝아왔다. 부스스한 얼굴로 거울 앞에 달려가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훑어보았다. 파리조차 미끄러질 듯 반질반질한 윤기가 황금색 피부를 탐스럽게 덮었고, 잘록한 허리 위아래로 풍만한 가슴과 통통한 다리는 매끄러운 굴곡을 그렸다. 홍조를 띈 두 볼이 건드리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라 슬며시 지은 미소를 더욱 짙고 깊게 만들었다. 거울에 비친 아름다운 모습이 어제와 그대로인 것을 확인하곤 만족감에 실실 웃음이 나왔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정리하고 새하얀 목덜미에 향수를 뿌린 뒤 시녀에게 문을 열게 했다. 마가다국 빔비사라왕의 두 번째 왕비 케마는 여느 때처럼 자신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이들을 흡족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케마는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으나 고마운 마음은 전혀 없었다. ‘내가 이렇게 아름답고, 이토록 빼어난 외모인데 아무리 왕이라도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겠나.’ 생각이 이러하니 왕의 총애는 당연한 일이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행실이 나쁘진 않았어도 외모에 대한 자만심만은 하늘을 찔렀다. 시도 때도 없이 왕궁 밖으로 나가 백성에게 얼굴 보여주는 일을 즐겼다.

왕위를 이을 아들을 얻지 못해 노심초사하던 왕은 그러한 케마의 아름다움에 기대 위안을 얻었다. 케마가 품에 안겨 나긋나긋하게 속삭이고 있으면 온갖 고민과 걱정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케마의 지나친 자만심과 그에 푹 빠진 자신을 딱하게 생각했다. 마가다국을 방문한 붓다를 위해 죽림정사를 지어 보시할 만큼 가르침에 목말라했던 빔비사라였다. 처음 몇 해 동안은 케마에 흠뻑 빠져 있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번뇌가 시작되었다. 케마를 안으면 육신은 피고름과 똥이 들어찬 가죽 주머니에 불과하다는 붓다의 말씀이 떠올랐다. 케마의 아름다움은 커다란 위안인 동시에 경계해야 할 욕망의 독이었다.

“사랑하는 케마여. 나는 붓다를 존경하고 그의 가르침만이 진리라는 것을 믿고 있소. 그분의 가르침은 이런 것이오. 부질없는 육신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애욕의 근본이고, 육신의 부질없음을 깨우친다면 모든 애욕은 사라지는 것이오. 우리 붓다를 뵈러 가는 게 어떻소. 그분의 설법을 함께 들어봅시다.”

남편이 붓다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케마는 몸서리쳤다. 몸의 아름다움이 부질없다는 말 같지 않은 말이 소름끼치도록 싫었다. 예쁜 얼굴과 몸매가 그대로 행복이거늘, 이를 부정한 것으로 치부하는 붓다는 가식적인 사람이 분명했다. 심지어 그는 왕자로 태어나 공주까지 버리고 출가한 비겁한 사람이 아닌가. 애욕이고 집착이고 아무 상관없는데 왜 굳이 붓다의 설법을 들어야 하는가.

“왕이시여. 아름답게 태어나 아름다움을 누리며 사는 게 행복합니다. 붓다를 만날 이유를 알지 못하겠으니 왕께서는 제 마음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왕의 권유를 거절할 때마다 케마의 자만심은 더욱 커졌다. 몸을 가꾸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외모를 과시하기 위한 외출 빈도도 잦아졌다. 케마를 붓다에게 인도하겠다고 발원한 빔비사라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지 묘안이 떠올라 케마를 불러 앉혔다.

“내가 붓다를 위해 죽림정사를 지어 드린 것은 잘 알거라 믿소. 그곳은 대나무가 우거진 숲에 있소. 날마다 아름다운 새들이 날아와 지저귀는 곳이지. 새만 아름다운 게 아니오.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오솔길을 걷고 있노라면 천상을 걷는 기분이 따로 없다오. 붓다가 계시지 않은 시간에 방문하여 내가 정성껏 만든 죽림정사를 둘러만 보고 옵시다.”

아름답다는 말에 케마의 귀가 솔깃해졌다. 붓다만 보지 않는다면 한 번쯤 구경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했다. 이튿날, 케마는 왕과 함께 죽림정사로 향했다.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42호 / 2018년 6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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