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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상황에서 불교가 갈 길

기자명 이병두

마성 스님의 ‘미얀마 불교의 역사와 현황’에 따르면 기원전 1세기 후반, 인도 남부에서 바다를 건너온 타밀족이 스리랑카에 침입해 왕을 쫓아내고 통치권을 행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기근이 들어 먹을 것이 바닥나서,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고 심지어 존경하는 스님들의 시신까지 먹는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자칫하면 부처님 가르침인 삼장(三藏)을 구전으로 전해주는 전통이 끊어질 상황이었다. 이 비극을 맞아 스리랑카 불교의 대장로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어떻게 보존할까?”를 고민·숙의하였고, 그 결과 ‘진실한 교법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때까지 구전으로 전승되던 삼장을 문자로 기록하기로 결정하여 실천에 옮겼다. 오늘날 우리가 읽는 팔리 삼장은 그렇게 해서 보전되어 내려왔다.

한편 세계 전역을 침탈하여 식민 지배 영역을 넓혀가던 영국이 19세기 후반 미얀마 중·하부를 장악하고 북쪽에서 어렵게 버티고 있던 민돈 왕 정부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 어려운 상황을 맞아 왕은 영국의 침략과 위협에 흐트러진 민심을 불법(佛法)으로 수습하고자 경전 결집 불사를 추진하였고, 왕실의 지원을 받은 승려 2400명이 그때까지 전해오던 패엽경(貝葉經)을 합송하며 오탈자를 바로 잡고 그 내용을 ‘영구 보존하기 위해서’ 대리석에 새기는 석경 불사에 착수하여 3년 만에 마쳤다. 불교 역사에서는 이 석경 조성 불사의 의미를 높이 평가하여 ‘제5차 결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13세기 초반 중국의 만리장성 북쪽 초원에서 일어난 몽골족의 말발굽에 동아시아를 넘어 서아시아 전역과 유럽까지 짓밟혀 신음하던 때, 고려도 그 폭풍을 피하기 어려웠다. 강화도로 서울을 옮기고 전국 각지에서 게릴라 전술로 버티던 수십 년 동안 불교계와 무신 정권이 힘을 합쳐 “불보살의 가피로 국난을 극복하자”며 ‘대장경’ 조성을 발원하여 실천에 옮겼고, 그 ‘고려대장경’은 “가장 완벽한 한역 대장경”이라는 찬사를 현재까지 받고 있다.

기원전 1세기 스리랑카·13세기 고려와 19세기 미얀마, 시공간은 다르지만 ‘비극적인 상황을 타개하고자 부처님 가르침인 삼장을 완벽하게 보전하기 위한 불사’를 발원하고 그 불사 추진 과정에서 민심을 수습하는 길을 갔다는 점에선 일치한다.

오늘 우리나라의 상황이 위기인지 호시절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평가가 엇갈릴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불교계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데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고 답을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어려움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할 것이고, 그러므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매우 다를 것이다. ‘중아함경’ ‘전유경(箭喩經)’의 비유에서처럼
“이 독화살을 누가 무엇으로 만들었고, 어디서 왜 쏘았으며…” 등을 따지면서 세월을 보내느라 수십 년이 지나도 해법을 찾아낼 수 없을지 모른다.

이쯤에서 ‘기원전 1세기 스리랑카·13세기 고려와 19세기 미얀마’의 비극적 상황에서 불교가 어떤 고민을 하고 세상을 위해 무슨 역할을 했는지 짚어보면, 현재 우리 불교 집안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헤치고 나갈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갈등과 분열, 투쟁에 소모되는 ‘부정적 에너지’를 ‘긍정적 에너지’로 바꾸어 불교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며 인류를 구하는 구세대비(救世大悲)의 원력을 발휘할 때가 아닌가.

물론 이런 상황일수록 불자 대중의 원력을 한곳으로 모으고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춘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할 터인데, 현재 불교 집안 사정상 이 문제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처럼 특정 인맥이나 세력이 독점하지 못하는 때가 오히려 전체 대중의 논의[衆議]를 거쳐 대중들의 뜻[衆意]를 모으기에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노력과 시도가 어디에선가 일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43호 / 2018년 6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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