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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을 닦지 않는데 어떻게 과보를 얻겠습니까

중국 정곡 스님의 '무량수경청화' 법문 ④

인과는 삼세 관통한다 했으니
과거의 인연 알고자 한다면
금생에 받는 과를 보면 알아
인연과보 추호의 어긋남 없어

호주 정종(淨宗)학회에서 법문하는 정공 스님.
호주 정종(淨宗)학회에서 법문하는 정공 스님.

“마음의 더러운 때를 씻어주시고 청정·순백한 자성을 드러내 밝혀주신다(洗濯垢污 顯明清白)”

이 문구는 비유로 우리들이 경전을 독송하고 염불하는 목적을 가리킵니다. 즉 그것은 마음(심지·사상·견해)의 더러운 때를 씻어 청정·순백한 자성(청정심)을 드러내 밝힘(회복)에 있습니다. ‘무량수경’의 경제목은 ‘불세대승무량수장엄청정평등각경’입니다. ‘청정·평등·각’이 바로 수학의 강령입니다. 불자는 무엇을 배웁니까? 바로 청정심과 평등심을 닦는 것입니다. 수학하면 미혹되지 않습니다. ‘청정·평등·각’은 하나이되 셋이고, 셋이되 하나입니다. 그래서 정토종에서는 청정심을 중시합니다. 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과 감응하는 것은 바로 청정심에 있습니다.
현재 이 시대는 오염이 너무나 심각합니다. 일체 환경보호운동은 모두 현상만 해결하지 근본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근본’은 인성의 오염으로 이른바 심리와 사상의 오염, 견해와 정신의 오염입니다.

‘세탁구오(洗濯垢污)’, 오욕 번뇌를 떼어놓아야 마음이 청정합니다. 이것들이 자신의 청정심을 오염시킬 때 떼어놓을 수 있으면 미혹을 깨뜨려 깨달음이 열립니다. 선종대덕께서는 늘 말씀하십니다. “근(根)과 진(塵)을 멀리 벗어나니, 신령스런 광명이 홀로 찬란하도다.” 근(根)은 안·이·비·설·신·의 육근이고, 진(塵)은 색·성·향·미·촉·법의 바깥 경계입니다. 육진에도 물들지 말고 육근도 쓰지 않아야 합니다. 근 가운데 성을 사용해야 높고 밝아서 모든 보살과 같습니다. 봄은 안식(眼識)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성품으로 보는 것입니다. 식은 오염이고, 성은 광명입니다. 들음도 이식(耳識)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듣는 성품으로 듣습니다. 육근의 근성(根性)을 쓰는 것입니다. 근성은 진심(真心)입니다. 이를 진여본성이라 합니다. 이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중생은 업장이 깊고 무거워 이를 사용할 줄 모르고, 하루 종일 육식(六識)을 사용합니다. 육식을 사용하여도 왕생할 수 있으니, 이를 ‘업을 지닌 채 왕생함’이라 합니다. 근의 성품을 사용하면 업을 지닌 채가 아니라 업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이런 사람은 염불하여 왕생하면 그 품위가 높고 극락세계에서 범성동거토가 아닌 실보장엄토에 태어납니다.

‘현명청백(顯明清白)’, 이는 신령스런 광명이 홀로 찬란함이고 심지가 청정하고 밝음입니다. 이는 대세지보살께서 말씀하신 “육근을 모두 거두어 정념을 이어감(都攝六根 淨念相繼)”입니다. 이러한 공부가 무르익으면 자성본연에서 마음이 열립니다(自得心開). 이는 바로 “자득심개(自得心開)”의 경계로 선종에서 말하는 “명심견성(明心見性)”입니다. 우리는 오늘 왜 깨닫지 못합니까? 업장이 있고 번뇌가 있고 욕망이 있어 우리의 심성광명이 장애에 머물러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들을 버리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지혜광명이 저절로 꿰뚫고 나옵니다. 이를 개오(開悟)라 합니다.

‘중생을 훈육시키시나니, 미묘한 이치를 펼쳐 보이시고, 공덕을 쌓고 복전을 가리켜 보이신다(調衆生 宣妙理 貯功德 示福田)’

이는 전법륜(轉法輪) 중에서 두 번째 단락입니다. 앞 문구는 첫째 단락으로 미혹을 깨뜨리고 깨달음을 여는 것으로 지혜에 편중되어 있습니다. 지혜가 있어도 복이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을 이족존(二足尊)이라 합니다. 족(足)은 만족으로 원만함이고, 이(二)는 지혜와 복보, 두 가지가 원만함을 뜻합니다. 복보는 어떻게 닦습니까?

“조중생(調衆生)”, 조(調)는 훈육시킴으로 중생은 망상·잡념의 번뇌가 매우 많아 그를 법성(法性)에 따르도록 다스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점차 망상·분별·집착을 멀리 여읠 수 있습니다. 먼저 그가 수순하도록 훈육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제불보살께서 일체중생을 인도하시는 선교방편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다스립니까?

“선묘리(宣妙理)”, 선(宣)은 펼쳐 보임으로 우주인생의 진상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부처님께서는 자기 생활환경의 진상을 일러주십니다. 사실 진상을 잘 이해하면 일을 잘 처리합니다. 어떤 것을 내려놓을지 알고 저절로 내려놓습니다. 취해야 할 것을 취하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립니다. 이 문구는 ‘법화경’에서 말하는 “개시오입(開示悟入)”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부처님의 지견을 열어 보여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깨달아 들어가야 합니다.

“저공덕(貯功德)”, 공(功)은 공부로 이른바 논밭을 갈고 맨 만큼 곡식을 수확합니다. 공덕은 닦아서 쌓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계율을 지님이 공(功)이고, 선정을 얻음이 덕(德)입니다. 선정을 닦음이 공이고, 지혜가 열림이 덕입니다. 같은 이치로 보시가 공이고, 인색함과 탐욕을 깨뜨림은 덕입니다. 인욕이 공이고, 원망함과 성냄을 끊음이 덕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공이고, 무엇이 덕인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공덕과 복덕은 다릅니다. 공덕은 선정으로 번뇌를 끊을 수 있고, 지혜로 무명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생사를 마치고 삼계를 벗어나서 불도를 원만하게 이루기 위해서는 공덕에 기대어야 합니다. 복덕도 매우 중요합니다. 복덕은 중생을 제도하도록 돕습니다. 왜냐하면 복덕이 없으면 중생을 제도하기가 곤란합니다. 중생은 어리석어서 복덕이 큰 사람은 가깝게 지내려고 하지만, 복이 없는 사람은 싫어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제왕의 집안에 태어나셔서 모두 그를 우러러 사모하고, 그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부처님께서 빌어먹는 집안에 태어났다면 누가 의지하겠습니까? 아무리 학문이 뛰어나고 아무리 도덕이 높아도 아무도 그와 가까이 지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은 신분 지위에 미혹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늘 중생에 수순합니다. 그래서 선교방편이 있어 복을 닦을 줄 알아야 합니다.

“시복전(示福田)”, 세상 사람들은 복보를 매우 중시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복을 닦아야 합니까? 복보의 많은 부분은 이전 세상에서 닦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점을 마음속에 확실히 새겨두어야 합니다. 불경에서 늘 “인과는 삼세에 통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과거의 인(因)을 알고자 하면 금생에 받는 과를 보고, 내생의 과를 알고자 하면 금생에 지은 인을 보라”고 말합니다. 이번 생에 지은 것이 선인이면 내생에 반드시 선과를 얻고 악인을 지으면 악한 과보를 받습니다. 인연과보는 추호의 어긋남도 없습니다.

예를 들면 재물은 과보이고, 재물보시가 인(因)입니다. 또한 총명지혜는 과보이고, 법보시가 인입니다. 건강장수는 과보이고, 무외보시(無畏布施)가 인입니다. 인을 닦지 않는데 어떻게 과보를 얻겠습니까? 지금 내가 잘 지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목숨을 걸고 닦으면 됩니다. 지금 닦으면 만년에 누려도 여전히 넉넉하지만, 지금 닦지 않으면 다 누려서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진상을 알면 우리는 스스로 어떻게 할 것인지 알아서 많은 복을 구할 것입니다. 이것이 불법이 베푸는 진실의 이익입니다.

이 문구는 우리에게 복전을 가리켜 보여줍니다. 이것은 바로 재보시·법보시·무외보시입니다. 보현보살께서는 일체보시 중에서 법보시가 가장 수승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법보시를 닦을 수 있다면 가장 총명합니다. 얻는 과보 또한 가장 빠르고, 가장 분명합니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444호 / 2018년 6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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