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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김홍도의 ‘염불서승도(念佛西昇圖)’

기자명 김영욱

연화대 올라 서방정토로 향하다

흐르는 구름 같은 유연한 필선
세속에 연연않는 마음 담은 듯
노승 주변 파동은 염불 상징해

김홍도 作 ‘염불서승도(念佛西昇圖)’, 조선 후기, 모시에 먹과 엷은 채색, 20.8×28.7㎝, 간송미술관 소장.
김홍도 作 ‘염불서승도(念佛西昇圖)’, 조선 후기, 모시에 먹과 엷은 채색, 20.8×28.7㎝, 간송미술관 소장.

獨坐觀心海(독좌관심해)
茫茫水接天(망망수접천)
浮雲無起滅(부운무기멸)
孤月照三千(고월조삼천)

‘홀로 앉아 마음 바다 바라보니 한없이 아득한 물결이 하늘과 닿아있네. 뜬구름 일어나 다함이 없고 외로운 달 삼천세계 비추는구나.’ 취여(取如, 1720~1789)의 ‘마음을 보다(觀心)’.

노승이 앉아 있다. 그의 뒷모습은 단정하고 말쑥하다. 마음은 회색빛 장삼처럼 흔들림 없이 침착하다. 불가의 극락에 있다고 전하는 연화대(蓮花臺)처럼 노승이 앉아 있는 자리에는 연꽃과 연잎이 만개해있다. 노승은 마치 연꽃 무리에서 피어난 듯 차분하고 단아하다.

조선 후기 천재 화가로 알려진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가 그린 ‘염불서승도’이다. 화면에 ‘단로(檀老)’라고 적힌 관서(款書)를 통해 그의 만년에 그려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소재의 그림을 즐겨 그렸던 김홍도는 만년에 이르러 특히 불교 소재의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이 작품도 그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짐작된다.

화면에 구사한 마치 흐르는 구름 같은 필선인 유운선법(流雲線法)은 김홍도가 노경(老境)에 이룬 정수를 보여준다. 그의 만년에 그려진 불교 소재의 인물들은 주로 뒷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아마도 만년에 이르러 세속에 연연하지 않고 초탈한 그의 심회가 투영된 듯하다.

제목인 ‘염불서승(念佛西昇)’은 염불하며 서방정토로 올라간다는 뜻으로, 이는 후대에 부여된 이름이다. 약 200년 전의 김홍도가 그와 같은 의도로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없으나, 구름 위로 놓인 연화대에 앉은 승려의 모습을 보면 매우 적절한 이름으로 생각된다. 신라 경덕왕 때 양산 포천산에서 아미타불을 염송(念誦)하던 다섯 명의 비구가 연화대에 앉아 서쪽을 향해 떠나갔고, 9세기 초 강주 미타사의 여종인 욱면(郁面) 또한 염불하여 연화대에 앉아 서방세계로 떠나지 않았던가.

노승은 홀로 저 먼 세계를 바라본다. 그가 보는 것은 곧 그의 마음이자, 그가 염원하는 서방의 정토이다. 그의 염불 소리는 들을 수 없으나, 염불의 울림은 흰 구름 따라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며 저 먼 정토로 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 말하기를, “나의 마음인 일심(一心)은 자신과 타인을 피안(彼岸)에 이르게 하는 큰 수레[大乘]이다”라고 했다. 화면 속 노승이 만년의 김홍도 자신일지, 아니면 그가 본 어느 노승일지 알 수 없다. 다만 피안에 오르기 위한 자신의 일심을 바라보는 노승의 시선과 그를 바라보는 김홍도의 시선은 함께한다.

어쩌면 그림 속 노승의 존재는 김홍도가 만년의 심회를 떨치고 피안으로 오르기 위해 염불을 통해 불러낸 큰 수레인 것은 아닐까. 노승 위로 드러난 두광(頭光)만이 마치 둥근 달처럼 고요히 하늘을 밝혀 그 길을 안내하고 있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44호 / 2018년 6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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