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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먹는 스님

  • 데스크칼럼
  • 입력 2018.06.26 10:05
  • 수정 2019.02.13 16:18
  • 호수 1445
  • 댓글 0

자장·혜통·진표 스님 등
동물 연민 계기로 출가
‘육식불교’ 주장 말아야

얼마 전 양산에서는 이색적인 전시회가 열렸다. 양산시립박물관이 개관 5주년을 맞아 지난 4월부터 6월 중순까지 양산 지역 사찰벽화들을 소개하는 특별전이었다. 많은 이들이 전시회를 다녀왔고 평가도 좋다는 후문이다.

사실 사찰벽화에는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부처님과 보살님이 등장하고 선사들이 출연하는 전법 스토리, 동자가 소를 찾아 길들이는 과정으로 선을 설명한 그림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고 불교적인 그림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통도사 용화전에는 서유기 장면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명부전에는 별주부전과 호작도 등 민화풍 그림이 벽면에 가득하다. 이렇듯 사찰 벽화는 교리를 비롯해 역사와 전설, 민담과 소설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동물도 당당히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도 특징이다.

근래 반려동물이 1000만을 넘어서면서 동물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물보호법 개정 등 제도개선을 위한 노력들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당연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깊이 관련 있는 연기적 존재이며, 더욱이 동물은 발심을 돕고 깨침을 주는 도반이다.

대승을 지향하는 한국불교에서 동물의 존재는 더욱 각별하다. 동물의 죽음에 대한 연민과 외경이 인연이 되어 출가자의 길을 걸었던 고승들도 많다. 황룡사구층탑 찰주본기에 따르면 신라의 자장 스님은 꿩으로 인해 출가했다. 어려서부터 꿩 사냥을 즐겨하다가 어느 날 붙잡힌 꿩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산문에 들었다고 한다. 7세기 중반 활동했던 혜통 스님도 동물과 인연이 없었다면 속세의 삶을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하루는 집 근처 냇가에서 놀다가 수달을 잡아 죽인 뒤 뼈를 정원에 버렸다. 그런데 다음날 가보니 그 뼈가 사라졌다. 그가 핏자국을 따라갔더니 뼈가 예전에 살던 구멍에 돌아가 새끼 다섯 마리를 안고 앉아 있었다. 한참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명에 경외감을 느낀 그는 출가했고 이름을 혜통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율사 진표 스님도 동물과 깊이 얽혀있다. ‘송고승전’에 따르면 스님은 대대로 사냥을 해오던 집안 출신이었다. 어릴 때부터 민첩했고 활쏘기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던 그가 어느 날 짐승을 쫓다가 밭두렁에서 잠시 쉴 때였다. 그는 반찬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개구리 30여 마리를 잡아 버드나무가지로 꿰어 물속에 담가놓았다. 그는 산에서 사슴을 발견해 뒤쫓았고 돌아가던 길에 가져가려던 개구리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 다음해 봄, 그가 사냥을 나가 예전 밭두렁을 지날 때였다. 근처에서 구슬피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를 듣고 가서 살펴보니 자신이 잡아 꿰어두었던 개구리들이었다. 큰 충격을 받은 그는 탄식했다. “아, 괴롭구나, 입과 배가 꿰인 저들이 해를 지나도록 얼마나 고통을 받았을까.” 이날 출가한 스님은 만행과 처절한 수행을 지속했고 평생 민중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삶을 살았다.

이재형 국장

고승들의 출가인연에 유독 동물들의 고통과 죽음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동물이나 인간 모두 고통을 싫어하고 즐거움을 좇는다는 ‘이고득락’과 ‘자타불이’의 불교적 세계관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나약한 존재에 대한 자비심이 있어야 보리심을 낼 수 있으며 불교의 궁극적 이상에도 다가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수많은 대승경전에서 살생과 육식은 돌이킬 수 없는 악업을 낳아 윤회를 벗어날 수 없게 한다고 했다. 최근 한국불교는 육식에 ‘너그러워지면서’ 거리낌 없이 고기를 먹는 스님과 불자들도 크게 늘었다. 심지어 ‘불교는 육식을 마다않는 종교’라는 얘기도 공공연히 나온다. 고기를 먹는 것이야 오롯이 자신의 선택이다. 그렇더라도 불교를 애써 내 눈높이로 끌어내리는 일은 삼가야 할 일이다.

mitra@beopbo.com


[1445호 / 2018년 6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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