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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복원 원칙 지킨 ‘미륵사지 석탑’ 의미 크다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18.06.26 11:14
  • 호수 1445
  • 댓글 0

국보 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전면 해체를 결정한 지 20년, 해체·보수 불사 17년 만에 그 위용을 드러냈다. 9층탑이냐 6층탑이냐를 놓고 학계의 의견이 양분됐지만 6층 이상의 탑 재료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점을 감안해 6층으로 복원했다. 전반적으로 문화재 복원의 원칙을 최대한 지킨 복원이었다고 평가한다.

문화재 복원에 일가견이 있는 유럽에서도 19세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국토와 비견되는 중대성을 함의한 문화재 개념이 등장한 건 산업혁명이 본격화할 즈음이었는데 그때까지도 보존이론과 방법은 전무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나폴레옹 3세와 친분이 두터웠던 프랑스 건축가 외젠 비올레르뒤크는 건축 분야에서 상당한 지위를 갖고 있었기에 주요 문화재 보수작업을 조직적이면서도 규모 있게 추진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뜻에 따라 임의대로 형태를 바꾸거나 없앴다. 이런 형태의 공사는 복원이 아니라 사실상 파괴나 다름없다. 원래의 문화재가 갖고 있던 본질을 훼손시켜 놓고도 후대에게 진실인 것처럼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지할 법도 없었다. 그의 행태를 지켜본 영국의 시인이자 예술가였던 윌리엄 모리스가 날린 “제대로 할 수 없다면 풍우로부터만 보호하라”는 비판은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미륵사지 석탑의 파손된 부분을 일본이 콘크리트로 덮어씌운 건 외젠 비올레르뒤크의 작태와 다름없었던 행태였다. 석탑의 구조를 정확히 알 수 없다면 차라리 그대로 놔두는 게 옳기 때문이다. 따라서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파손된 원형을 그대로 둔 건, 이제 우리도 문화재 복원에 관한 한 선진국에 한 발짝 들어섰음을 시사한 대목이라고 본다.

“문화재 보존에 있어서 잘못된 결과는 무지의 연습이었다고 변명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문화재를 보존해야 할 사람들이 윤리강령처럼 지켜야 할 일언이 아닐 수 없다. 일부 학자의 개인적 주관이나 기호에 따라 복원하는 일이 앞으로는 없기를 바란다.

[1445호 / 2018년 6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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