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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암바팔리 ①

기자명 김규보

“왜 나만 고통스러운 건가요?”

망고 숲에 버려진 ‘암바팔리’
정원사 보살핌에 예쁘게 성장
그녀 향한 왕자들 다툼 커지자
결혼 거부하고 유녀로 왕궁에

“아저씨. 나는 어디서 태어났어? 엄마랑 아빠는 어디에 있는 거야?”

망고가 탐스럽게 영근 여름의 어느 날, 정원사의 어깨에 매달린 암바팔리가 머뭇대며 물었다. 이제 겨우 다섯 살 된 아이의 질문이었지만 말투는 자못 진지했다. 놀란 정원사가 고개를 돌려보니 얼굴엔 아이답지 않은 슬픔이 가득했다. 언젠가 오늘 같은 날이 반드시 올 것을 알았기에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지 고민해오던 터였다.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자리에 선채로 하늘만 바라보았다. 영원히 숨길 순 없는 노릇이겠지….

“암바팔리야. 여기가 네가 태어난 곳이란다. 태어난 지 하루도 안 됐던 너는 여기, 망고나무 사이에서 울고 있었어. 그대로 두면 얼마 살지 못할 거 같아서 너를 안고 젖동냥하러 시내 곳곳을 뛰어다녔지. 그게 시작이었어. 네 부모는 분명 있었겠지만 지금껏 연락해오지 않아 누구인지 모른단다.”

정원사의 말을 들은 아이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바이살리에는 왕이 사는 궁궐이 있었는데 궁궐 주변으로 광활한 망고나무숲이 자리 잡았다. 암바팔리는 망고나무숲을 집 삼아, 놀이터 삼아 뛰어놀았다. 왕이 소유한 숲이었기 때문에 드나드는 이는 없었다. 대신에 종종 또래 아이들이 놀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친구들로부터 부모라는 존재를 알게 된 암바팔리는 몇날며칠을 망설이다가 늘 부모처럼 대해 주던 정원사에게 질문했던 것이다.

“얘야. 비록 부모가 누구고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해도, 너는 왕실이 소유한 정원에서 발견돼 모자람 없이 자라고있지 않니. 슬퍼 말거라.”

그러나 버려진 아이라는 사실은 암바팔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정원사의 따뜻한 보살핌도 더는 행복하지 않았다. 슬프다가도 화가 났고, 화를 낸 뒤에는 왜인지 모르게 울적해져 하루 종일 멍하니 방에 앉아있기만 했다.

“나처럼 고통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 걸까? 왜 나는 고통스러운 것이고 왜 세상은 고통스러운 걸까?”

진실을 알게 되었던 그날부터 머릿속에 들어와 떠나지 않은 의문이었다. 암바팔리의 이런 고민과는 상관없이, 그녀의 외모는 들판을 향기로 물들이는 봄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났다. 두툼한 이마, 반짝이는 눈망울, 오뚝한 콧날, 풍만한 몸매는 바이살리는 물론 갠지스강을 둘러싼 모든 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아름다움이었다. 배운적 없어도 노래에 능했고, 타고난 품성이 고울뿐더러 말까지 조리가 있어 그녀를 한 번이라도 본 남자라면 애가 타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아무리 많은 남자가 관심을 보였어도 암바팔리는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이 자신을 더욱 힘겹게 만드는 것 같아서, 세상을 등진 채 망고나무숲에서만 생활해야 했다. 그렇게 다른 남자들의 관심이야 숨은 채 외면하면 됐지만, 왕자들이 암바팔리에게 마음을 두자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어렸을 때 가끔씩 암바팔리와 놀곤 했던 왕자들은 성숙한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서로 자신이 결혼하겠다고 싸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엔 장난인 듯 시작한 싸움이 결국엔 커지고 커져 자칫하면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 그때까지 암바팔리를 보살펴 온 정원사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 시간은 하릴없이 흘렀다. 왕자 사이의 다툼이 더는 방관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자 정원사는 암바팔리를 불렀다.

“왕자님들이 병사를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 도는구나. 이러다간 나라가 망해버리고 말겠어. 얘야. 어떡하겠느냐.”

만약 전쟁이 난다면 죄 없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될 텐데…. 그런 일은 있어선 안 된다.

“사람들이 저 때문에 죽는 걸 원치 않아요. 왕자들의 요구를 들어주겠어요. 하지만 나는 한 명이니 그들 모두와 결혼할 순 없겠죠. 결혼은 않고 그들 모두와 함께 살겠어요.”

얼마 뒤, 암바팔리는 유녀(遊女)가 되어 왕궁에 들어갔다.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45호 / 2018년 6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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