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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씬한 보살에 곁눈질 사천왕...보경사 선묘불화 보물 된다

기자명 이재형
  • 성보
  • 입력 2018.06.26 16:37
  • 수정 2018.06.27 09:11
  • 호수 1446
  • 댓글 0

문화재청, 보경사 비로자나불도 보물 예고
삼베에 선묘 형태로 그린 조선불화 전형
유려하면서 머뭇거림 없는 흰색 선 사용
곁눈질하는 광목천왕의 표정도 흥미로워

문화재청이 6월26일 보물로 지정 예고한 포항 보경사 비로자나불도.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이 6월26일 보물로 지정 예고한 포항 보경사 비로자나불도. 문화재청 제공

삼베 바탕에 붉은 색을 칠한 뒤 하얀 선으로 그린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선묘불화가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6월26일 ‘포항 보경사 비로자나불도(浦項 寶鏡寺 毘盧遮那佛圖)’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보경사 비로자나불도는 적광전 후불탱으로 봉안돼 있는 불화다. 세로 278.0cm, 가로272.1cm 크기의 삼베 바탕에 붉은색을 칠한 뒤 하얀 선으로 도상을 그렸다. 삼베 선묘불화는 조선불화의 특징과 성격을 잘 보여준다. 비단 바탕에 금선으로 그린 금니선묘불화는 고려시대에도 있었다. 하지만 금니선묘불화는 왕과 귀족층의 전유물이었기에 백성들은 구경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불교가 민중 속으로 깊이 확산된 16세기 이후에는 삼베에 선묘 형태로 그리는 색다른 조선의 불화가 출현하기 시작했고 18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조성됐다.

문화재 위원 및 전문위원들에 따르면 보경사 비로자나불도는 조선후기 기년명 있는 비로자나불화 중에 가장 이른 시기의 사례로 꼽힌다. 고려불화의 화려함은 없지만 적색과 백색의 대비를 통해 선명하고 강렬한 회상의 장면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붉은 색 바탕색과 백색의 선묘, 그리고 불보살의 피부에 칠해진 살색과 백색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우수한 불화의 품격을 보여준다. 아래에서 위로 상승하면서 인물의 크기를 조금씩 줄여가는 구도를 통해 무한한 공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점도 특징이다. 선묘불화의 장점을 살려 등장인물들의 복식을 화려하고 섬세한 온갖 문양들로 채워 불법의 세계를 장엄하게 드러내고 있다.

불화의 중심에는 비로자나부처님이 자리 잡고 있다. 비로자나부처님은 왕실의 왕, 왕비, 세자의 수명을 축원하는 삼전패(三殿牌)가 놓인 수미단 위의 붉은 연꽃대좌에 결가부좌했다. 오른발 뒤꿈치를 도드라지게 그렸으며, 머리에는 뾰족이 솟구친 육계가 인상적이다. 갸름한 얼굴에 이목구비는 단정하게 표현했고, 이중의 콧방울은 이 시기 불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특징으로 꼽힌다. 피부와 신체의 윤곽은 굵은 색 선을 사용하고 있으며, 세부 주름과 문양에 사용되는 주름 선은 이보다 가는 선을 사용하여 입체감을 주었다. 선은 대체로 유려한 흐름을 보이며, 머뭇거림이 없는 점도 눈길을 끈다.

비로자나불의 좌우측에는 화려한 보관과 세밀한 문양의 천의를 걸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서있다. 문수보살은 ‘옴’자가 적힌 큼직한 목걸이를 착용한 채 두 손으로 연꽃가지를 잡았고, 보현보살은 ‘卍’자가 적힌 큼직한 목걸이를 착용하고 두 손으로 여의를 잡고 있다. 두 보살상은 풍성한 검푸른 보발을 어깨를 따라 허리춤까지 길게 늘어뜨렸고, 본존불의 어깨 높이까지의 늘씬한 신체비례를 보이며 굴곡진 유연한 자세를 드러내고 있다.

화면 하단 가장자리 좌측에는 비파를 연주하고 있는 동방 지국천왕과 보검을 쥐고 있는 남방 증장천왕이 위아래로 배치됐으며, 우측에는 용과 여의주를 쥐고 있는 서방 광목천왕과 보탑을 들고 있는 북방 다문천왕이 아래와 위에 각각 배치됐다. 사천왕상은 흰색피부에 수염을 호방하게 붓질하고, 위협적인 표정과 눈을 굴려가며 사방을 호위하는 자세이다.

화면 중단에는 보관에 화불을 가지고 있는 관음보살이 검정색 정병을 잡고 있으며, 그 옆에는 범천이 자리를 잡았다. 그 대칭되는 반대편에는 대세지보살과 제석천이 위치하고 있다. 화면의 좌측 상단에는 사자관을 쓴 건달바와 늙은 비구로 표현된 가섭존자, 그리고 두 갈래로 상투를 묶은 동자가 여의주를 들었고, 그 반대편에는 코끼리관을 쓴 야차와 젊은 비구모습으로 표현된 아난존자, 그리고 공양물을 받쳐 든 천녀가 대칭적 구도 속에 배치됐다. 하늘의 빈 공간에는 부처님의 계주에서 뻗어 나온 서광과 뭉게뭉게 흘러가는 구름으로 채웠다.

포항 보경사 적광전 비로자나불도 전체, 1742년. 문화재청 제공.
포항 보경사 적광전 비로자나불도 전체, 1742년. 문화재청 제공.
보탑을 들고 있는 북방 다문천왕(왼쪽)과 용과 여의주를 쥐고 있는 서방 광목천왕(오른쪽). 반쯤 잠긴 눈으로 슬며시 곁눈질하는 광목천왕의 익살스런 표정이 눈길을 끈다. 문화재청 제공.
보탑을 들고 있는 북방 다문천왕(왼쪽)과 용과 여의주를 쥐고 있는 서방 광목천왕(오른쪽). 반쯤 잠긴 눈으로 슬며시 곁눈질하는 사천왕의 호방한 수염과 익살스런 표정이 눈길을 끈다. 문화재청 제공.

이 불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자세와 표정에는 흥미로운 점도 많이 발견된다. 반쯤 잠긴 눈으로 슬며시 곁눈질 하는 서방 광목천왕의 익살스런 표정과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유연한 자태를 취한 협시보살상은 엄숙한 회상에 해학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불상과 보살상은 살색으로 차분하게 처리하고, 화면의 외연에서 도량을 옹호하는 사천왕상은 하얀 피부와 호방하게 터치한 검은 수염을 통해 입체적인 효과를 부여한 점이 특징이다.

이 불화는 18세기 인물인 뇌현(雷現) 스님을 비롯해 밀기(密機), 석잠(碩岑) 스님 등 3인이 참여해 제작했다. 뇌현 스님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대단히 뛰어났던 화사(畫師)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밀기 스님은 18세기 전반기 경북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친 이 시기의 대표적인 화사 중 한명이며, 석잠 스님은 금정암 지장보살도(1764), 불국사 대웅전 영산회상도(1768) 등에도 보조 화승으로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보경사 비로자나불도는 불교문화재일제조사를 진행한 (재)불교문화재연구소가 2014년 6월 보물 지정을 신청했으며, 관계 전문가 조사, 과학보완조사 등 과정을 거쳐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을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446호 / 2018년 7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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