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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선택한 젊은 네팔 불자노동자의 비애

기자명 조장희
  • 사회
  • 입력 2018.06.26 21:44
  • 수정 2018.06.27 10:59
  • 호수 1446
  • 댓글 1

근무하던 공장서 일방적 해고
‘제조업’ 이외 분야 취업 불가능
네팔 가족에 송금 못해서 우울
바하두르씨 6월13일 죽음 선택
“이주노동자 겪는 한국의 민낯”
불교계도 ‘노동허가제’에 관심을

6월1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바하두르씨와 그의 아들.

지난 6월13일 자정, 32살의 네팔인 노동자 바하두르씨가 자살이라는 극단을 선택했다. 그에게 한국은 희망이 아닌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절망의 땅이었다. 하루아침에 남편과 아빠를 잃은 그의 가족들도 깊은 절망에 휩싸였다.

독실한 불자였던 바하두르씨는 성실하고 정이 많았던 가장이었다. 생계를 위해 한국으로 온 것이 2014년. 첫째 딸이 막 아내의 뱃속에 생겼을 때였다. 논산 용접공장에 취업해 매달 생활비를 고향집에 부쳤다. 최소한의 생계비를 제외하곤 월급의 전부를 보내다시피 했다. 낯선 환경에서 말도 통하지 않아 답답했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견뎌냈다.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늘 가족과 통화했다. 그것이 바하두르씨의 반복되는 일과였다.

그렇게 4년이 지났다. 그 사이 둘째가 태어났다. 한국에서 열심히 일한 덕분에 소중한 가족이 늘어났다는 생각에 그저 기뻤다. 네팔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안정된 생활을 위해선 한국에서 돈을 더 벌어야했다. 체류연장을 신청할 무렵 다니던 공장에서 일거리가 없다며 일방적으로 해고를 당했다. 외국인 근로자가 체류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취업확인서가 필수적이다. 취업한 상태에서만 확인서를 받을 수 있기에 바하두르씨는 하루라도 빨리 직장을 구해야했다. 백방으로 뛰었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에 들어올 때 허가된 분야가 ‘제조업’으로 고정돼 있어 다른 분야로는 취업이 불가능했다. 네팔에서 생활비를 기다리고 있을 가족을 생각하며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서 보내기도 했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바하두르씨는 체류기간 연장신청기한을 놓쳤고 졸지에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한다는 중압감과 언제 단속에 걸릴지 모른다는 부담감이 그를 점점 압박해 오기 시작했다. 이런 처지를 알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지도 못한 채 그는 죽음을 선택했다. 서울 중랑구 월릉교에서 몸을 던진 것이다.

네팔에서 남편의 죽음을 접한 27살의 아내는 곧바로 한국으로 달려왔다. 믿을 수 없는 소식에 한 달음에 입국한 것이다. 아내는 오열했다.

“아! 믿을 수 없어요! 아이들을 그토록 예뻐하고 저에게도 늘 사랑한다 표현하는 사람이었어요. 남은 우리들은 어떻하라고. 제발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바하두르씨의 죽음은 그저 개인의 죽음이 아니다.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 역시 같은 어려움을 겪으며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 적지 않다. 정부가 국내 취업을 희망하는 외국인들에게 취업비자를 발급해 주는 고용허가제는 2004년 8월 처음 시행됐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회사 폐업 등 특별한 사유가 있거나 사업주 허락이 없으면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다. 설사 변경 가능한 사유가 있더라도 3개월 이내 허가된 분야로 취업하지 못하면 본국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같은 고용허가제의 폐해로 매년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으며, 2017년 8월에는 네팔노동자 3명이 연달아 목숨을 끊었다. 이때 한 네팔 청년의 유서에는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다른 공장에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고 고향에 가서 치료 받고 싶었지만 그것도 안됐다”며 “더 이상 고용허가제가 외국인 노동자를 구속하는 제도가 아니길 바란다”고 적혀 있었다.

네팔 이주노동자 바하두르씨의 생전 모습. 가족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서선영 박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이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고립감과 외로움에서 시작되는 우울증이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가 지정해준 숙소에서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된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직업·사업장 변경이 제한된 열악한 노동조건과 생활환경을 받아들이면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에 있는 가족들을 책임져야 하는 경제적 부담이 있는 상태에서 고용허가제로 인한 열악한 노동조건들을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될 때 우울증은 더 심화된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법무부는 2018년까지 불법체류율을 10%미만으로 줄이기 위해 정부 합동단속을 연간 20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고용허가제의 미비점은 보완하지 않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강압적인 정책을 답습할 경우 이들을 더 깊은 나락으로 떨러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다이 라야 민주노총 이주노동조합 위원장은 “바하두르씨의 죽음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자 한국 사회의 비극적인 단면”이라며 “한국정부와 국민이 이주노동자를 한국 사회의 소중한 구성원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사업주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하는 고용허가제 대신 자유로운 사업장 변경 등 노동자들에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노동허가제로의 변경이 시급하다”며 “소외계층의 아픔에 함께해 온 불교계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조장희 기자 banya@beopbo.com

[1446호 / 2018년 7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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