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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과 승단의 폐단

  • 데스크칼럼
  • 입력 2018.07.02 11:02
  • 수정 2018.07.02 11:03
  • 호수 1446
  • 댓글 0

병역거부 문제에 불교는 소극적
임진왜란 때도 승병 후유증 지적
스님들도 총 안 잡는 시대 열려

이제 총기를 잡는 대신 종교적·철학적 신념에 따라 대체복무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헌법재판소가 6월28일 종교나 비폭력 신념 등에 따라 입영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병역의 한 종류로 명시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한 것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양심적 병역거부로 매년 600~800명이 형사처벌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처벌 받은 국내 병역거부자도 2만여명에 이른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많은 이들이 더 이상 범법자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방부도 그간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없고 병역 의무의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체복무 방안을 검토해 왔다고 밝혔다. 그런 만큼 머지않아 구체적인 대체복무 운영 방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병역 거부로 투옥된 것은 1939년이 처음이다. 그때도 38명의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이후 여호와의 증인이 집총을 거부했지만 병역 거부에 대한 처벌은 당연시 여겨졌다. 이런 풍토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오태양이라는 재가불자에 의해서였다. 불교 NGO단체 활동가였던 그는 불교의 비폭력과 평화정신을 내세워 병역 거부를 선언했다. 이는 양심적 병역 거부가 특정 종교단체만의 문제라는 고정관념을 넘어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후 불교계에서 양심적 병역 문제에 대한 논의의 장이 마련되고 대체복무제 목소리도 나왔지만 그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비둘기 한 마리를 살리려 자신의 목숨까지 내줬다는 부처님 전생담이 아니더라도 인류 역사에서 불교처럼 평화적인 종교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병역 문제에 있어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국불교계는 스님들이 총을 쏘고 총검술을 익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그것이 율장에 의거해 운영되는 승단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논의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스님들의 병역으로 인한 승단의 폐해는 임진왜란 때 살았던 정관 스님의 문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십만 명이 전란으로 목숨을 잃는 살육의 시대를 맞아 스님들도 목탁과 죽비 대신 칼과 창을 쥐었다. 비록 불교가 ‘불살생’을 첫째 계율로 내세우지만 무고한 백성들이 억울하게 죽어가는 상황을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서산대사의 상수제자인 정관 스님도 무고한 생명이 죽어가는 상황이 더 없이 비통했다. 그렇지만 정관 스님은 계율을 생명처럼 여겨야할 스님들이 직접 칼을 들고 적과 싸우는 것이 본분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정관 스님은 승병을 이끌었던 사명대사 유정 스님에게 서신을 보내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후유증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싸움터로 나간 승군들이 환속하는 일이 속출했고, 그나마 산사로 돌아온 스님들도 지계의식이 희박해져 부처님의 정법이 사라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그리고는 유정 스님에게 이제 왜적이 물러갔으니 시냇물을 마시고 산나물을 먹는 출가자의 본분으로 돌아올 것을 간곡히 당부하고 있다.

이재형 국장

물론 정관 스님은 “환속한다면 100리를 다스릴 책임을 맡길 것이요, 3군을 통솔할 장수가 되게 해주겠다”는 선조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유정 스님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사명당 같은 고승이 산중으로 돌아온다면 무너진 승풍을 되살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컸을 것임이 분명하다.

두려워하면 갇히고, 갇히면 경직될 수밖에 없다. 불교는 자기를 둘러싼 억압과 관념의 틀을 깨는 일을 수행의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대체복무제 도입이 우려스러운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며, 병역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확장시켜줬다는 점에서도 의미는 크다.

mitra@beopbo.com

[1446호 / 2018년 7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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