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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종단의 명분과 가치

지난 1993년 겨울 성철 스님의 입적 소식은 한국사회에 큰 울림으로 다가섰다. 조계종 종정이라는 상징적 자리에 계셨던 한 수행자의 치열하면서도 검소했던 삶이 우리 국민 모두의 마음을 적실만큼 큰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국불교는 1994년 봄 최악의 분쟁사태를 겪고 말았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전개되었던 조계종 승려들의 난투극, 그리고 이 사태에 개입된 경찰과 조직폭력배들이 한데 어우러진 폭력사태는 결국 수많은 부상자의 속출로 이어지게 되었다.

1994년의 개혁종단은 이렇게 탄생하였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못했으며, 폭력사태로 인해 사회로부터 온갖 지탄을 받기도 하였지만 개혁종단 출범의 명분과 가치는 나름대로 충분한 역사적 의의를 지니는 것이었다. 개혁종단은 한국불교의 현대화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였다. 종단 행정과 교육, 문화, 포교, 대사회 활동 등 여러 분야에서 조계종은 1994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이다. 개혁회의에서 내걸었던 5대 활동 지표, 즉 ‘①정법종단의 구현, ②불교자주화 실현, ③종단운영의 민주화, ④청정교단의 구현, ⑤불교의 사회역할 확대’는 지금도 탄복할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겠다.

개혁종단 출범 이후 25년여의 세월이 지났다. 개혁회의를 이끌었던 주도세력은 어느덧 종단의 원로, 중진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 분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혁종단의 가치와 의의를 역설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분들이 ‘기득권 세력’으로 지칭되기 시작하였다. 머리가 깨지고 온몸에 피를 흘리면서 쟁취한 ‘개혁’의 기치를 외면하면서 이 분들은 어느덧 자신들이 구축한 종권에 안주하는 세력으로 분류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는 지나치게 일방적이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조계종 집행부가 개혁종단에서 내걸었던 5대 활동 지표를 얼마만큼 실천해가고 있는가를 돌이켜보면 그 답은 명료하게 얻을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얼마 전 의현 스님이 대종사의 법계를 받고 종정 예하로부터 가사와 장삼을 받는 교계 매체의 보도사진을 보았다. 의현 스님은 개혁종단 출범 과정에서 승적을 박탈당한 그 장본인이다. 여기에서 의현 스님 개인에 대한 언급을 하고 싶지는 않다. 종단에 끼친 그의 공과는 분명 병존할 것이며, 노스님의 풍모가 완연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동정론 또한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조계종 집행부에 반드시 묻고 싶은 사항이 하나 있다. 이제 대한불교조계종은 1994년의 개혁종단 출범이 지니는 정당성, 그리고 그 역사적 명분과 가치를 버리기로 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종정예하가 참석하신 자리라고 해서 모든 것이 해명될 수는 없다. 종단은 이번 일에 대해 반드시 공식적인 견해 표명을 하고 가야 할 것이다. 종단 집행부 뿐 아니라 개혁종단 출범을 주도했던 그 분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다. 25년 전 내걸었던 개혁종단의 이념과 가치는 구시대의 산물이 되었는가?

‘시대구분’이라고 하는 주제는 역사학자들에게 있어 매우 어려운 과제에 속한다. 시대구분은 역사 전체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관을 전제로 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1994년의 처절했던 종단 상황, 그리고 개혁회의에서 내걸었던 여러 가치와 명분을 돌이켜 볼 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조계종은 ‘개혁종단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싶다. 개혁종단 출범 과정에 참여했던 사부대중 대다수는 아직까지 개혁종단시대와 이별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혹시 개혁종단시대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시대를 구상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있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인지, 종단 집행부와 개혁종단을 주도했던 분들의 진솔한 답을 듣고 싶다.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 kimsea98@hanmail.net

[1446호 / 2018년 7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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