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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암바팔리 ②

기자명 김규보

“거짓 웃음은 이제 끝이다”

매일매일 찾아오는 왕자들
남편처럼 대하는 기구한 삶
돈을 모아 빈민 구제했지만
고통스런 마음 여의치 않아

왕궁 안에 암바팔리의 거처가 마련됐다. 왕자들은 앞다투어 진귀한 장식품을 들고 찾아와 거처를 꾸몄다.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한 암바팔리의 방은 눈이 부셔 시선을 제대로 두기 힘들 지경이었다. 모든 준비가 마무리되자 왕자들이 차례로 암바팔리를 방문했다. 암바팔리를 독차지하겠다며 전쟁마저 불사할 기세로 으르렁거렸던 왕자들은 어느덧 이 상황을 군말 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바이살리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한편,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매일 찾아오는 다른 왕자를 남편처럼 대해야 하는 기이한 상황 속에서도 암바팔리는 꿋꿋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방 곳곳에 박힌 눈부신 보석과 끊임없이 식탁에 오르는 산해진미는 어떠한 위로도 되지 못했다. 다만, 왕자들 간의 다툼이 내전으로 이어졌다면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위안으로 삼아볼 뿐이었다. 그러나 고통은 암바팔리의 마음에 수시로 들이닥쳤다.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고통이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어 숱한 밤을 잠 못 들게 만들었다. 이러한 고통에 시달리는 이가 세상에 얼마나 많을지를 헤아려 볼 때 느끼는 암담함도 견디기 힘들었다.

‘왜 나는 고통스러운 것일까.’

정원사에게 자신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들었던 의문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졌고, 답을 얻겠다는 마음 역시 간절해졌다. 고통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고민을 거듭해 보았어도 답은 보이지 않았다. ‘당장은 고통의 원인을 모른다 하여도 사람들의 고통을 덜 수는 있을 것이다.’ 암바팔리는 왕자들에게 돈을 요구했다. 아무리 왕자라도 깜짝 놀랄 만큼의 큰돈이었다.

“당신이 부족함을 느끼지 않도록 얼마나 많이 신경을 썼는지 아시오. 주위를 둘러보시오. 이게 다 당신만을 위한 것들이오. 어떤 이유로 그렇게 큰돈이 필요하다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구려.”

왕자들은 하나같이 놀라며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얼굴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암바팔리의 말에 또 한 번 놀라 순순히 막대한 돈을 안겨주었다. 암바팔리는 왕자에게 받은 돈을 바이살리의 빈민촌에 풀었다.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고, 집을 지어 보시했다. 나아가 농장과 상점을 사들여 그들에게 일을 하도록 했다. 거리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며 먹고 자던 많은 이들이 돈을 벌고 쓰기 시작하자 바이살리는 활기를 띠었다. 왕자에게 받은 돈을 모두 빈민을 구제하는 일에 쏟아부었기에 암바팔리가 부유해질수록 바이살리도 부유해졌다. 가난에 고통 받던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지만 자신의 고통은 조금도 덜어지지 않았다. 부모에게 버려지고, 사랑하지 않는 남자들에게 거짓 웃음을 지어 보여야 하는 비참한 삶이 하루 빨리 마무리되길 바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음식을 나르던 하인이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붓다가 안거를 위해 제자들을 이끌고 바이살리를 방문했다는 것이다. 그분의 설법을 들으면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져 행복에 이르게 된다는 소문을 여기저기서 들어오던 터였다. 내심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이살리를 방문했다니 붓다의 설법을 직접 들을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암바팔리는 사람을 보내 자신이 소유한 망고나무숲에서 붓다와 제자들이 안거를 하도록 요청했다. 승낙의 뜻이 담긴 전갈이 돌아오자 암바팔리는 가장 먼저, 늘 자신의 얼굴을 덮고 있던 화장을 지워 버렸다. 왕자들을 희롱하기 위해, 거짓 웃음을 감추기 위해 덕지덕지 붙였던 화장이었다. 보석으로 치장한 화려한 옷도 벗어 던지고 무늬 없는 소박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잠시 기다리자 멀리서 붓다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암바팔리는 보석이 가득한 방을 뒤로한 채 망고나무숲으로 들어갔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붓다가 눈을 뜨고 암바팔리를 바라보았다.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46호 / 2018년 7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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