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묘오앙 에이사이의 신통
72. 묘오앙 에이사이의 신통
  • 김정빈
  • 승인 2018.07.02 17:00
  • 호수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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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라면 팔다리라도 꺾어 주셨을 것”

불교 근본목적 번뇌 없애는 것
정말로 중요한 신통은 누진통뿐
에이사이 신통은 오신통·누진통
마른 하늘 비내리 게 한건 오신통
거지에게 광배 뜯어준 건 누진통
그림=근호
그림=근호

일본에 선(禪)이 전래된 것은 662년이지만 깊은 뿌리를 내린 것은 묘오앙 에이사이(明庵榮西, 1141~1215) 때부터이다. 에이사이의 어머니는 꿈에 새벽별을 보고 그를 잉태하였으며, 그가 태어날 때에도 새벽별이 환하게 빛을 발했다고 한다. 달이 다 차지 않아 여덟 달 만에 태어났기 때문인지 그의 어머니는 출산의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미숙아는 재앙을 가져온다는 미신을 믿었던 그의 부모는 젖을 주지 않은 채로 아기를 방치했는데, 한 스님이 찾아와 만류하는 바람에 아기는 목숨을 이을 수 있었다.

에이사이의 부모는 신도(神道)의 신관(神官)이면서도 불교에 조예가 깊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에이사이는 어려서부터 불교를 배울 수 있었으며, 여러 스님을 사사한 뒤에 마지막으로 천태학(天台學)과 밀교(密敎)에 심취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앞으로 큰일을 해낼 인물이라는 칭찬을 무수히 들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키가 작고 얼굴이 못생겼다는 약점이 있었다. 한쪽에서 그의 정신이 총명하고 노력이 가상한 것을 칭찬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저런 외모로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는가?”라며 비웃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에이사이는 “키가 작고 큰 것이 어찌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중국 오제(五帝)의 한 사람인 순(舜)임금도, 뛰어난 재상이었던 안영(晏嬰)도 키가 어린아이보다 작았었다”라며 반박했다. 그렇긴 하지만 내심은 키가 작은 게 마음에 걸렸던지 밀교의 ‘허공장구문지법(虛空藏求聞持法)’이라는 비법을 닦으며 백일 간 열심히 수행한 덕분으로 키를 네 치 가량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서의 공부로써는 미진함을 느낀 묘오앙 에이사이는 더 깊은 공부를 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그러나 막상 송(宋)나라에 들어가 보니 천태학은 약화되어 있었고, 밀교를 가르치는 사찰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 송나라를 휩쓸고 있는 것은 선이었다. 하지만 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그는 천태대사의 신장소(新章疏) 30여부 60권을 챙겨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 천태종의 좌주인 묘오운(明雲)에게 헌정했다.

이후 꾸준히 불교 포교에 힘쓴 결과 명성을 떨치게 된 그는 천황의 부름을 받아 기우제를 올리게 되었다. 그때 묘오앙 에이사이의 열 손가락에서 대광명이 흘러나왔고, 이내 큰 비가 내렸다고 한다. 더 놀라운 일은 배가 내린 풀잎 위의 이슬방울마다 에이사이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비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천황은 그에게 오죠오(葉上)라는 호와 함께 자주색 법의를 하사하였다.

1187년, 두 번째로 송나라에 들어간 묘오앙 에이사이는 임제의현(臨濟義玄)의 법맥을 이은 허암회창(虛菴懷敞)을 만나 5년간 수행하게 된다. 그가 비로소 선과 만난 것이다. 선 수행을 하던 때에도 그는 기우제를 올려 큰비를 내리는 기적을 선보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효종(孝宗) 황제는 그에게 ‘천광(千光)’이라는 호를 내렸다.

1192년, 묘오앙 에이사이는 임제종 황룡파의 법맥을 이어받아 일본에 돌아왔다. 그의 선은 처음에는 배척을 받았지만 시간이 흘러 무사 계급을 중심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는 기존의 불교와 경쟁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교오또에 창건한 건인사(建仁寺)에 선종 도량과 함께 천태, 진언 도량을 함께 세웠다. 그래야만 할 정도로 기존 불교의 선에 대한 저항이 심했던 것이다.

건인사가 창건된 지 3년 뒤에 교오또에 큰 바람이 불어 막대한 피해가 생기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자 선종에 반대하는 승려들이 이것이 선종 때문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 일로 조정의 조사를 받게 되자 그는 “바람은 천지 기운으로 일어나는 것이지 사람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에이사이는 풍신(風神)이 아니거늘 어떻게 큰바람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라고 답변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한 거지가 건인사를 찾아왔다. 그의 불쌍한 처지를 파악한 묘오앙 에이사이는 본당에 들어가 금으로 만들어 붙인 약사여래상의 광배(光背)를 떼어내 그에게 주었다. 제자들이 깜짝 놀라자 에이사이가 말했다.

“옛날 단하선사(丹霞禪師)는 목불을 불살랐는데, 이 정도가 뭐가 지나치단 말이냐? 나는 부처님의 자비심을 실천한 것뿐이다. 부처님께서 이 불쌍한 중생을 만나셨다면 당신의 팔다리라도 꺾어서 주셨을 것이다.”

일본 선종 천광파(千光派)와 밀교 엽상류(葉上流)의 조(祖)로 추앙받고 있는 묘오앙 에이사이는 1215년 7월 5일, 의자에 앉아 살아 있는 듯 조용한 모습으로 75년의 삶을 마감했다.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는 기적을 말하고, 불교 또한 신통을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과학 시대이다. 과학은 종교가 말하는 기적, 또는 신통을 인정하지 않는다. 과학은 그것들을 미신이거나 인지왜곡이거나 숨어 있는 과학적 진실을 간파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한 오해로 치부한다.

부처님 당시 많은 사람들이 신통을 믿었고, 그에 따라 불교는 천안통, 천이통, 숙명통, 타심통, 신족통, 누진통 등 여섯 가지 신통을 말해 왔다. 하지만 불교의 입장에서 누진통을 제한 나머지 다섯 가지 신통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불교의 목표는 번뇌를 없애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로 중요한 신통은 누진통뿐인 것이다.

오신통의 문제점은 그것을 가진다고 해서 번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돈과 권력을 많이 가진다고 해서 번뇌를 제거할 수는 없는 것처럼 오신통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으로 번뇌를 제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신통은 과학과 상식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기이한 점 때문에 주목을 끄는 것뿐이다.

묘오앙 에이사이에게 전해져오는 기적 내지 신통들은 오신통에 해당되는 것과 누진통에 해당되는 것으로 분별된다. 그가 정말로 기우제를 지냄으로써 마른하늘에서 비가 내리도록 했다면 이것이 첫 번째 종류의 신통이고, 가난한 거지를 위해 약사여래불의 광배를 뜯어 준 일은 두 번째 종류의 신통이다.

불교의 근본 입장에서 볼 때 진정한 신통은 얼핏 평범해 보이는 면조차 있는 두 번째 신통이다. 두 번째 신통을 행하기 위해서는 불교 수행자가 도달하고 싶어 마지않은 무지와 욕망을 파괴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곁의 많은 불제자들이 자신의 소유를 덜어내어 이웃을 도울 때, 그는 위대한 신통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46호 / 2018년 7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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