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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재를 시작하며

기자명 장은화

서양문화 흔들었던 ‘Zen Boom’은 왜 꺾였을까?

선은 권위·우상·고정관념 배격
선사는 마음 일깨우는 혁명가

미국, 19세기 말에 일본선 수용
철학·과학·정치 전반에 큰 영향
1980년대 들어 선의 위상 하락

불교단체 지도자들 성추문과
상업화로 인해 본래 정신 퇴색
일본선의 전쟁 부역도 큰 원인
한국선도 존재감이 크게 약화

캐나다 펜틱턴 선센타에서 수행하는 서양인들. 이곳은 일본 조동종 계열에서 건립한 선센터이다. 출처=펜틱턴 선센터 홈페이지
캐나다 펜틱턴 선센타에서 수행하는 서양인들. 이곳은 일본 조동종 계열에서 건립한 선센터이다. 출처=펜틱턴 선센터 홈페이지

폭넓은 시야로 선을 조명함으로써 현대 선의 향방을 모색하게 될 ‘장은화의 한국의 선 세계의 선’이 격주로 연재된다. 동국대 강사인 그는 경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를, 동국대 대학원에서 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여러 권의 영문 저술과 번역서들을 펴냈으며, 최근 ‘선문수경’ ‘선문사변만어’ 등 한국불교 고전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편집자

 

종교학과 사회학에서 자주 쓰이는 피자효과(pizza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1970년에 인도의 인류학자 바라티(Agehananda Bharati)가 처음 사용했다는 이 말은 요컨대 이런 의미다. 즉 이탈리아에서 피자는 원래 단순한 빵, 스낵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미국으로 건너간 이탈리아 이민자들에 의해 이 피자가 주 요리로 변신하여 다양한 크기, 맛, 모양의 한 끼 식사가 되었고, 이렇게 변한 피자가 이탈리아인 자신들에 의해 재수입되어 이탈리아의 대표적 요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피자라는 음식이 외국에서 변형을 거친 후 본국으로 회귀하여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갖게 된 것처럼 선불교도 아시아로부터 서양으로 갔다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여 아시아로 회귀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우선 선(禪)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범어의 ‘디야나’(dhyāna)에서 유래했으며 그 뜻은 ‘고요한 성찰 혹은 명상’이다. 중국으로 전래되어 음사되는 과정에서 ‘디야나’는 ‘찬’(Chan)이라는 용어로 정착되었으며, 이후 중국문화와 습합되면서 그 뜻이 점차 변하였다. 이를테면 명상을 통해 마음이 고요해지는 상태, 즉 삼매(定)를 닦을 수 있기 때문에 디야나(禪)와 삼매(定)는 선정(禪定)이라는 복합어로도 사용된다.

더 나아가 중국에서 선은 인도식의 명상 전통을 점차 벗어나서 마침내 중국화 된 새로운 선으로 변모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인도불교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돈오(頓悟) 사상의 정착이다. 이로써 불교수행의 최종목표인 열반은 범인들이 꿈꿀 수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종교적 영역이 아니라 이제는 선 수행을 통해 누구라도 도달할 수 있는 일상적 삶의 영역이 되었다. ‘중생이 바로 부처’라는 혁신적인 선불교의 메시지는 고통스런 현실에서 해탈을 꿈꾸던 민중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

중국선은 이후 동아시아의 여러 문화권으로 전파됐으며 현지 문화와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각기 독특한 선 문화를 형성해나갔다. 한반도에 정착한 선불교는 송대의 간화선으로서, 독자적 종파로서 전개된 게 아니고 한국적 통불교의 전통 속에서 전승되어 왔다. 일본의 선불교는 임제종, 조동종 등의 독립 종파를 이뤄 전승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데, 종교적 수행뿐 아니라 하이쿠(정형시), 정원술, 서예, 검도, 궁도, 꽃꽂이 등의 문화와 융화되었으며 정치와 결탁해 전쟁을 독려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베트남에서는 특히 베트남전이라는 참혹한 상황 속에서 불교수행과 사회참여를 결합하여 참여불교, 참여선이라는 새로운 조류가 창안됐고, 이것은 실용을 중시하는 서양문화에도 수용되어 정착돼 가고 있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아시아의 선불교는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었는데, 이 시기에 미국에선 선의 대유행(zen boom)이 일어나기도 했다.

선불교는 이처럼 여러 문화권으로 전파되었고, 각 문화 속에서 일정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발전해왔지만, 오늘날 미국 선불교의 발전상은 특기할 만하다. 미국은 19세기 말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선(Zen)을 받아들였으며, 1960년 이래로 선불교는 미국 대중 속으로 스며들어 큰 사회운동이 되었고 특히 선불교의 통찰은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서양의 종교, 민주주의, 철학, 심리, 과학, 의학, 스포츠 등 다방면에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서양 대중문화와 결합한 새로운 선 문화가 이제 아시아로 회귀하고 있다. 명상이라는 이름으로 재포장되어 밀려드는 이 새로운 추세는 이미 우리의 삶속에도 침투해 있다. 이른바 피자효과다. 초기불교의 사띠(sati) 명상이 서양으로 가서 불교의 색채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 명상으로 재탄생하여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오늘날 서양사회에서 선불교는 평판이 좋지 않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우선 1980년대 미국에서는 아시아에서 온 거의 모든 불교단체의 지도자들이 성(性) 추문에 휘말리면서 불교의 위신이 크게 떨어졌다. 주로 일본선의 선사들이 많이 연루되었던 이러한 성 추문으로 인하여 그 이전까지 급격하게 발전해왔던 미국의 선불교는 기세가 크게 꺾이고 말았다. 다음으로 1997년에는 브라이언 빅토리아(Brian Victoria)의 ‘Zen at War’(국내에서는 ‘전쟁과 선’으로 번역됨)가 서양세계에서 출간되면서 일본선이 전쟁에 부역한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이로써 선불교는 그 윤리와 도덕성에 또 한 번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서양의 선불교는 대중화, 상업화되면서 본래의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가 서양에 선을 왜곡되게 전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대중들의 뇌리에 박힌 현대 서양선의 부정적 단면들은 이처럼 일본 선불교의 영향이 크다. 사실상 선불교를 내세워 성적 욕망추구, 정치참여, 상업화에 나선다는 것은 선불교의 본류에서 크게 벗어났다. 선의 본령이란 우리에게 내재된 청정한 마음을 깨달아 삶에 구현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선불교는 다행히도 위와 같은 비판에 노출되어 있지 않으나, 선불교 자체에 대한 대중들의 실망감이 상승하고 또 일본선의 부정적 측면들이 한국선에도 그대로 투사됨으로써 한국선의 존재감도 크게 약화되고 있는 듯하다.

역사적으로 선은 욕망, 고정관념, 권위, 우상, 부정과 불의를 마음의 오염이라고 보고 배격하면서, 각자가 선(善)한 본성을 닦아 삶에 구현하라고 촉구해왔다. 선은 민중들에게 해방의 메시지였고 선사는 마음의 혁명가였다. 올바른 마음을 일깨우는 선의 메시지야말로 시대정신과 맞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도 부합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기독교에 대한 환멸이 서양사회를 휩쓸고 있을 때, 그리고 전후 냉전시대가 전개되면서 핵전쟁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던 때, 서양의 젊은이들은 위축되고 획일화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재즈에 빠져들었으며 재즈 속에서 그들은 마음의 자유를 꿈꾸었다. 그때 선불교는 그들에게 구세주로 다가왔다. 선은 그들이 무력한 개체적 존재가 아니라 마음속에 우주를 품고 있는 ‘빅마인드(big mind)’임을 일깨워주었으며 그들을 사회변혁의 주도자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오늘날 한국의 선불교는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 이른바 삼포세대(三抛世代)의 청년층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장은화 선학박사·전문번역가 ehj001@naver.com

[1446호 / 2018년 7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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