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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천양희의 자화상

기자명 김형중

어리석은 중생 상징 문조·낙타 통해
진리의 눈 뜨기 전 허망한 삶 일깨워

인생 돌아보면 실수·오류 가득
참회하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
실체도 없는 무지개 좇지 말고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깨야

조롱 속에 거울 하나 넣어놓았더니
거울에 비친 제 모양을 제 짝인 양
생이 다하도록 잘 살았다는 문조(文鳥)

사막 속에 오아시스 놓여 있었더니
물에 비친 모랫길을 제 길인 양
생이 다하도록 잘 걸었다는 낙타

그게 혹
내가 아니었을까

천양희(1942~현재)는 시인으로 단련되기 위하여 인생을 하루하루 뼈에 사무치도록 읊조리며 살아온 사람이다. 범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은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삶이 아니다.
얼마 전에 92세로 별세한 한국 영화계의 산증인인 최승희 선생이 장례식장에서 ‘나는 바보처럼 살았구먼’이란 노래를 틀어달라고 유언한 것을 보면 모든 사람이 100점짜리 인생은 없는 것인가 보다.

주어진 운명, 내던져진 운명, 그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인 줄 알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 소녀가 내가 평생 사랑해야 할 여인인 줄 알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새어머니가 나의 어머니인 줄 알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허공에 핀 꽃에 취해 평생을 그것을 바라보고 살아왔다. 본래 없는 신을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평생을 믿으며 의지하고 예배하며 살아왔다. 아무리 힘들어도 여자는 평생을 참고 견디며 살아야 그것이 진정한 여자의 길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고정관념에 빠져 무명에 덮여서 캄캄한 밤길을 살아왔다. 문조와 낙타는 어리석은 중생을 상징하는 말이다. 문조(文鳥)는 동남이시아가 원산지로 암컷과 수컷의 몸의 크기가 비슷하고 몸집이 작은 조류이다. 문조(文鳥)란 이름은 옛날 학문이 높은 문인들이 관상용으로 키우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성질은 사납지만 선비에 의해 새장 속에서 평생을 잘 길들여진 새이다. 낙타도 평생을 사막 모랫길에서 상인의 짐을 나르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오아시스에 비친 자기 모습이 자신인 양 살아간다. 문조나 낙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새장과 사막이 우주의 전부인 것으로 알고 살아간다.

평생을 삭은 동아줄에 의지해서 살아가다가 막상 도움이 될 줄 알았던 줄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허상인 줄 알았을 때 절망과 허망함을 느낀다. 보통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아간다. 환상과 그림자만을 좇다가 살아간다. 깨달음을 얻어 진리의 눈을 뜨기 전까지는 허망한 삶을 되풀이 하며 살아간다.

사람은 앞에서 간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가게 된다. 부모나 선생님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다. 허공에 핀 꽃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따스한 봄날 아지랑이에 취해 길을 따라간다. 인생은 뒤돌아보면 실수와 오류투성이다. 잘못 살아온 지난날을 후회하고 참회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면서 인생을 하나하나 배우고 깨닫는다.

내가 걸어왔던 길이 일직선 길만 걸어 왔다면, 고속도로만 달려왔다면 얼마나 인생이 단조로울까. 오솔길, 흙탕길, 시골 신작로길, 올레길, 어두운 골목길, 불길, 밤길 등을 걸어왔으니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다. 꽃길만 걸어온 삶은 아름답거나 행복하지 않다.

인생은 허깨비 인생이다. 실체가 없는 무지개를 좇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이 인생이다. 꼭두각시처럼 내 인생은 하루도 살아보지 못하고 남이 하는 일을 따라서 흉내만 내며 살다 가는 인생이다.

이것이 ‘금강경’에서 말하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다. 그것을 깨부수면 부처가 된다. 중생은 자기 상(相)에 마취되어 있어 자신이 잘못 걸어 온 길을 인식하지 못하다가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비로소 깨닫는다고 한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46호 / 2018년 7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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