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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한국불교, 이 시대·사회 책임지라 ⑥ 휴암스님, 1987년 ‘한국불교의 새얼굴’

기자명 법보

패배주의적 자기변명부터 청산하자

종단 병들게 만든 무심주의
무원칙 활개치는 원인 제공
시비 명확해야 발전도 가능

우리는 이제 이 시대가 말세라는 그런 패배주의적인 무기력한 자기변명을 청산하고 세상이 이런 것은 중생 업이 두터워 과보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불교가 그만큼 세상 민심을 교화 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우리의 게으름과 무능과 무책임성 때문이었다고 해야 한다. 허망하다 해서 될 일인가. 허망이라 해도 불교로서 허망타 할 것과 허망타 하지 않은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허망한 짓은 절대 아니하고, 그 허망치 않은 것은 부지런히 하는 종단이 돼야 할 것이다. 우리 불교가 오늘날 이 모양으로 된 것도 이 종단이 병든 무심주의에 빠져 원칙이 무너지고 사상이 없는 종단으로 되어 버린 데 과거와 오늘의 비극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불교가 정화라는 깃발을 치켜들었을 때에도 이 종단의 어른들은 정화의 이념이나 행동원칙을 세울 줄 몰랐고, 정화라는 깃발 아래서는 무슨 짓을 해도 그것이 다 정화인양 했던 그런 무원칙·무사상주의가 ‘인(因)’이 되어서 오늘날 이 종단에 그 무원칙이 활개치는 ‘과(果)’를 거두게 된 것이다. 오늘날도 여전히 불교로서 무엇이 ‘호국’이라는 원칙도 없이 ‘호국’이란 깃발 아래서는 무슨 짓을 해도 그런 것들이 마치 모두 다 불교의 호국하는 길 인양 여기는 이런 반성 없는 풍조가 지배적이다.

이와 같은 무원칙·무사상의 현상은 비단 그런 한두가지 예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고, 이런 것이 다 알고 보면 시비하지 말라하면서 정작 밝혀야 할 문제는 회피하면서 얼버무리기만 했던 적당주의의 불교가 필연적으로 겪는 자기과보인 것이다. 스스로 적당주의의 인을 뿌려 적당주의가 판을 치는 결과를 거두고 있으니, 인과의 참 정신을 전혀 모르는 무지한 종단이라 할 것이다.

우리 불교가 예부터 사리를 분명히 밝히고, 원칙과 기준을 존중하고, 상벌이 뚜렷한 풍토를 쌓아왔다면 오늘날 우리는 원칙이 존중되는 종단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세상에 피해서 되는 일은 없다는 정신 속에, 모든 것은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는 사상으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면으로 그것에 맞서서 원인을 시정하려고는 하지 않고 시비하지 말라면서 꼭 필요한 시비조차 침묵시키고 은폐만하다가, 결과적으로 여우 피하다가 호랑이 만나는 격으로 도리어 무원칙 무기준이 활개치는 오늘의 비극을 초래시킨 것이다.

휴암 스님

 

밝혀보면 시비를 시비함이 실은 더 큰 시비요, 더 저열한 시비이다. 진정으로 시비 아니하는 사람이란 정당한 시비에는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도리어 지지해 주고 스스로는 공손히 받아들여 반성하고 고치는 사람이 정말 시비 아니하는 사람의 참뜻이라 할 것이다. 사실 지금껏 우리는 시비를 잘 할 줄 몰라서 이 모양으로 된 것이다. 맹목적으로 그저 시비하지 말라는 병든 무심주의가 옳고 그름의 판단조차 내팽개치는 종단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시비하지 말라’가 마침내 시비를 전혀 가릴 줄 모르는 종단으로 이끌었고, 조그마한 시비도 빨리 흑백을 가려 수습시키지 못하고 시비만 생기면 시비에 빠지는 시비에 무능한 종단이 된 것이다. 그 결과 도리어 시비가 가장 많은 불교가 되었으니 세상에 피해서 될 일은 하나도 없음을 알아야한다.

이제 우리 스님들도 ‘시비하지 말라’ 따위의 저열한 소리는 내던지고 시비를 잘 가려서 빨리 시비에서 해방되는 시비에 능한 불교를 만들자. 세상을 허망타 하지만 말고 능히 세상에 물 안 들고 세상을 진리적으로 잘 다스릴 줄 아는 세상에 능한 종교가 되어서 세상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초월하는 그런 불교가 되도록 하자.

[1446호 / 2018년 7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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