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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예멘 난민, 무외시의 마음으로

기자명 최원형

예멘 난민들은 정말 테러리스트이고 범법자일까?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 논란
교환가치로 환원되는 세태 연관
살다보면 누구나 곤경에 빠져
형편껏 고통 덜어주고 함께해야

요새 먼 나라 얘기만 같던 ‘난민’이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난민협약에 따르면 난민이란 ‘인종, 종교, 정치적 의견 등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어 자기 나라 밖에 있으며 자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 받을 것을 원치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1985년 당시 공산화된 베트남을 탈출해 망망대해를 떠돌던 수많은 보트피플이 있었다. 많은 배들은 보트피플이 의지한 목선을 그저 지나쳐갈 뿐 구원의 손길은 아쉽기만 했다. 참치 잡이를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던 광명호는 남중국해상에서 보트피플을 태운 배 한척을 발견했다. 전제용 선장은 그냥 지나치라는 회사의 명을 어기고 96명 전원을 구조했다. 부족한 식량을 나눠먹으며 견뎌낸 끝에 부산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전제용 선장은 회사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았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한반도에 살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피난민 신세가 됐다.

예멘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땅 가운데 하나다. 1990년부터 통일과 전쟁을 반복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오랜 시간 지속되는 내전과 불안한 정치상황에 인구의 2/3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지만 내전이 끝날 기미는 좀체 보이질 않는다. 사진출처=옥스팜
예멘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땅 가운데 하나다. 1990년부터 통일과 전쟁을 반복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오랜 시간 지속되는 내전과 불안한 정치상황에 인구의 2/3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지만 내전이 끝날 기미는 좀체 보이질 않는다. 사진출처=옥스팜

최빈국으로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68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제주도 예멘 난민문제로 타인의 고통을 다룰 시험대 위에 오르게 됐다. 살다보면 누구나 곤경에 빠질 때가 있다. 곤경에 처한 이들에게 마음이나 물질을 나누는 것을 보시라고 한다. 내 능력으로 나눌만한 물질적인 게 없다면 따뜻한 말 한 마디, 밝은 미소, 진심어린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 보시바라밀 가운데 무외시가 바로 이러한 행위를 일컫는다. 히타이트, 바빌로니아 등 고대 문명이 번성하던 3500년 전 기록에도 사례가 있듯 박해를 피해 이주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돌보는 관행은 문명의 오랜 특징 가운데 하나다.

2015년 터키 해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3살 바기 알란 쿠르디는 시리아 난민 가족의 막내였다. 2017년 생후 16개월 된 로힝야 난민 출신 아가 모하메드 쇼하옛은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국경에 위치한 나프 강가에서 역시 주검으로 발견됐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6850만명의 사람들이 집을 잃었다. 이 중 1620만명은 2017년 한 해 동안 집을 잃었다. 그렇게 해서 난민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난민이라는 말에서 받는 어감이 꽤나 부정적인 것 같다. 특히 범죄자나 테러리스트라는 낱말과 한데 엮여 마치 난민은 모두가 잠재적 범죄자인 듯 다루는 게 아닐까 싶다. 이번 제주에 당도한 예멘 난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가운데에는 이러한 편견도 있는 것 같다.

예멘 난민들은 정말 테러리스트이고 범법자들일까? 예멘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땅 가운데 하나다. 1990년부터 통일과 전쟁을 반복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오랜 시간 지속되는 내전과 불안한 정치상황에 인구의 2/3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지만 내전이 끝날 기미는 좀체 보이질 않는다. 내전을 치르는 세력 가운데 어느 곳도 압도적으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때문이기도 하고 원유 보유국이 아니기 때문에 내전 발발 초기부터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거기에다 미국, 영국, 러시아 등이 예멘에 무기판매로 수익을 얻고 있는 것도 종전이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에 힘을 실어준다. 전쟁과 굶주림 속에서 죽거나 혹은 목숨을 걸고 그곳을 탈출하는 두 가지 선택지 말고 무엇이 더 있을 수 있을까?

예멘 난민을 받지 말라는 난민거부 청원에 참여한 인원이 6월 27일 오전 11시 기준으로 48만 8000명을 넘어섰다. 길손에게 시장기를 덜어줄 한 끼 밥과 하룻밤 쉬어갈 처마를 내어주는 일조차 흔쾌히 하던 환대문화가 우리에게 있지 않았던가? 어쩌다 우리가 이토록 삭막해졌을까? 몇 가지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이번 청원에는 특정 종교인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난민들이 이교도여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들이 믿는 종교의 가르침과는 매우 상이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는 모든 게 교환가치로 환원되는 세태와도 맞물린 현상이 아닐까 싶다.

최근 심심찮게 뉴스가 되던 젠트리피케이션이 떠오른다. 세를 얻어 시작한 가게가 잘 되고 그 일대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소위 핫 플레이스가 되자 느닷없이 집주인은 상상조차 어려운 액수의 월세를 요구한다. 심할 경우 멀쩡히 장사를 하던 세입자를 쫓아내는 일이 부지기수로 벌어진다. 약자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닌 이런 세태가 궁지에 몰린 난민을 바라보는 시각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이라는 생각만큼 무지로 가득 찬 생각이 또 있을까?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다. 전쟁과 이별 그리고 막막한 미래에 대한 두려운 마음, 그 고통을 우리 형편껏 덜어주고 위로해주고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46호 / 2018년 7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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