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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수행 하형임-상

기자명 법보

아내·엄마 삶에 찾아온 방황
무기력·화 견딜 수 없어 고통
불교대학 다니며 공부 시작
매일 ‘천수경’ 독송 중 눈물

47, 환희승<br>
47, 환희승

소리 없이 계절이 흐른다. 눈처럼 내려앉은 뽀얀 봄이 화사하더니 장맛비가 도량을 촉촉이 적신다. 겨울에서 봄으로 그리고 이제는 여름을 향하며 계절은 끊임없이 바뀌지만 다시 봄이 돌아옴을 알면 이 장맛비도 결코 지루하지 않다.

계절의 순환조차 견디기 힘든 때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일상생활이 무료하게만 느껴지고, 무의미하다는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점점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퇴근해서 오는 남편도 반갑지 않았고 아이들도 각자의 목소리를 내면서 감정을 자극시키는 말들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빈번해졌다. 아내, 엄마로 부족함 없이 나름 자리를 잘 지켜왔다고 생각했었다. 주도적인 성향이 강한 탓에 가정에서 리더는 내 몫이었고 또 그렇게 잘 따라주는 가족들이었기에 그것이 최선인줄 알고 행복인줄 알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 때부터 번뇌망상이 시작되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보니 점점 조울증 같은 증세들이 올라오면서 남 탓을 하기 시작했다. 마냥 잘해 주는 신랑 얼굴만 봐도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부족한 행동인지 헛웃음만 나오지만 그냥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올라오면서 괜히 가족들한테 불똥이 튀었던 것 같다.

완벽을 추구하는 나의 성향으로는 종잡을 수 없는 감정, 무기력함, 화를 견딜 수 없었다. 지인들도 만나기 싫어지면서 점점 혼자만의 감옥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런 어지럼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지 괴로웠다. 이 상황을 넘어서고 싶었다.

우연히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오래 전 어머니와 함께 참배했던 남해의 한 사찰에서 스님으로부터 받은 책이었다. 당시에는 관심도 없었고 내용도 몰랐다. 꺼내어 보니 ‘천수경’이었다. 어렴풋하게 당시 스님께서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을 열심히 하라”고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그날 앉은 자리에서 ‘천수경’을 읽으며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을 시작했다. 하루에 3독씩 읽다가 점점 횟수가 늘어났고 하루 21독을 독송하게 되었다. 그리고도 갈증을 느껴 사경을 시작했다. 하루에 7독씩 다라니 사경에 몰입하면서 어느 순간 다라니가 외워지고 입에서 줄줄 나왔다.

평소엔 꾸지도 않던 꿈도 꿨다. 귀가 갑자기 길어지는 꿈, 스님들이 법당에 앉아 공부하는 꿈, 빈 나뭇가지에 오색찬란한 꽃들이 만발하는 꿈, 기이하게 생긴 절벽에 우뚝 솟은 절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꿈, 법륜을 타고 굴리는 꿈 등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희귀한 꿈들이었다.

이렇게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불교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에 관련된 책과 불경을 가리지 않고 읽고 또 읽었다. 유튜브에 올라온 스님들의 법문을 하루 종일 들었던 것 같다.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집 주변의 사찰을 찾던 중 부산 당리동 관음사를 발견했다.

무작정 절을 향했다. 불교대학이라도 있으면 다닐 요량으로 법당에서 삼배를 올리고 종무소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만난 한 보살이 “매주 수요일마다 하는 정토반 수업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도량을 찾아간 그날이 수요일이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보살은 내 손을 잡고 정토반 수업이 진행되는 곳으로 안내해 주셨다. 가자마자 수업을 듣고 생애 처음 ‘환희승’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40년 이상 불러오던 나의 이름보다 법명을 받는 순간 그 떨림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정토반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이었지만 매일 절에 올라가 관음전 오후 2시 기도에 참석해 ‘천수경’을 독송했다. 특히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을 할 때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도 모르는 눈물이었다. 주위의 보살들이 의식되어서 애써 눈물을 참아보려고 해도 의지와는 상관없이 흐르고 또 흘렀다. 기도를 마친 후 옆에 계시던 한 보살이 “젊은 보살 그게 업장을 녹이는 눈물인거야”라며 다독여 주시기도 했다.

[1446호 / 2018년 7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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