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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게 쓸어내는 하안거 정진

기자명 금해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8.07.09 11:06
  • 수정 2018.08.07 10:57
  • 호수 1447
  • 댓글 0

신행과제로 풀뽑기 선택한 신도
장마 후 쑥쑥 자라난 풀 뽑으며
일상서 자란 마음 속 번뇌 뽑아
수행으로 일하면 도처가 수행처

스님들이 선방에서 수행 정진하는 하안거는 언제나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절에서도 하안거 수행 정진에 동참해서 벌써 한 달을 훌쩍 넘겼습니다. 다라니 독송과 참선 정진, 그리고 도량 청소를 하는 것으로 신행 숙제를 정했습니다.

어느덧 장마가 시작되고 비가 올 때마다 풀이 쑥쑥 자라납니다. 그런데 템플스테이 준비와 뜻밖의 공사 등으로 안팎의 일이 바빠 풀 뽑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마침 보살님 한 분이 하안거 신행 숙제로 하루씩 날을 정해 풀을 뽑아 주었습니다. 며칠 전부터는 무더위가 시작되고 햇빛이 뜨거워졌습니다. 걱정되어 찾아보니 보살님은 그야말로 풀과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스님! 풀이 참 대단합니다. 얼마 전에 분명히 뿌리까지 다 뽑았는데, 돌아보니 또 돋아납니다. 벽돌 틈 사이에서도 끝도 없이 나와요. 숙제가 영원히 끝이 안 날 것 같아요.”

얼굴을 보니 빨갛게 달아올라 안쓰럽기까지 했습니다.

“오늘은 햇볕이 뜨거우니, 그만하고 일어나세요.”

여러 번 이야기해도, 보살님은 고집을 부리며 일을 계속했습니다. 보아하니 풀이 아니라 다른 것을 뽑는 것 같았습니다. 호미를 들고 같이 앉아서 풀을 메기 시작했습니다.

“보살님, 뽑아도 뽑아도 다시 자라는 풀이 우리 마음 같지 않나요? 풀 하나 뽑는데도 이렇게 숱한 생각이 일어나니, 마음이란게 이 풀보다 더한 것 같지요?”

그제야 보살님은 손을 멈추었습니다.

“휴~~그러네요! 사실은 아침에도 아들하고 한바탕 싸웠어요. 직장도 안 나가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데,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얼굴만 보면 화가 나요. 저도 갈피를 못 잡겠어요. 정말 이 마음이 지독한 풀 같네요. 얘들을 다 어떻게 한답니까?”

땅이 꺼지듯 탄식하는 말에 저는 웃으며 보살님의 어깨를 안았습니다.

“그러게요. 어떻게 할까요?”

제 말에 보살님도 같이 웃습니다.

며칠 지나자 부지런한 보살님과 도와주시는 분들 덕분에 마당이 훤해졌습니다. 보살님은 마당을 둘러보며 뿌듯해했습니다.

“이제는 풀 한 두 개 보일 때마다 뽑기만 하면 되니 일이 없네요. 스님, 번뇌도 수행하다 보면 이렇게 줄어들겠지요.”

온통 흙투성이지만, 한결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 보살님이 저의 선지식이 되었습니다.

금해 스님

주리반특가 존자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부처님 제자인 주리반특가는 글귀 한 구절도 외우지 못해서 절에서 쫓겨날 정도로 바보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부처님께서는 청소 숙제를 주셨습니다. 주리반특가는 빗자루질을 할 때마다 “깨끗하게 쓸어라”라고 말하면서, 마침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쓸어내고 아라한이 되었지요. 이 이야기를 처음 듣고 얼마나 신심이 났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이 수행이 된다면, 이 무더운 하안거 동안 내가 있는 모든 곳이 가람이 되고 수행처가 될 것입니다. 저도 보살님처럼 누군가의 신심을 일으키는 기쁨이 되길 바랍니다.

[1447호 / 2018년 7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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