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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담마딘나 ①

기자명 김규보

“나는 이제 재물에 관심이 없소”

최고의 부자와 만나 결혼해
사랑받으며 행복한 날 보내
붓다 설법 듣고 달라진 남편
모든 재산 포기한다고 선언

“위대한 스승들이 붓다라는 분께 귀의하셨다고 하는구려. 새파랗게 젊은 모양인데 어찌된 연유인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구려. 오늘밤 왕이 주관해 그분 법회를 여신다고 하는데, 내 가서 얼굴이나 보고 오겠소.”

아침식사를 하던 남편이 갑작스럽게 건넨 말에 담마딘나는 적잖이 놀랐다. 재물을 모으는 재주가 남달랐던 남편 위사카는 어렸을 때부터 시장바닥에 뛰어들어 돈을 긁어모으다시피 했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재물은 짧은 시간 만에 남편을 나라 최고의 거부로 만들었다. 왕궁 못지않은 호화로운 집을 올리고 수백 명의 하인을 부릴 정도로 돈이 넘쳐났다.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인색하거나 모진 성품은 아니었지만, 돈 버는 일만큼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겼고 철두철미했다. 그런 남편이 느닷없이 법회에 참석한다고 하니 담마딘나가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저도 붓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았답니다. 그분 설법을 들으면 고통이 없어진다는 이야기요. 마법이라도 부리는 모양이네요. 하여간 너무 늦게 오지만 마세요.”

담마딘나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느 때처럼 온화하면서도 다정한 표정에 눈빛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안도감이 들었다. 사실 담마딘나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행복을 따라갈 순 없다고 믿었다. 애초에 결혼은 부모 간의 혼담으로 시작되었고 결국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됐다. 다들 그러기에 불만은 없었다.

다행히 결혼생활은 그러한 기대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남편은 돈을 귀하게 여겼다. 하지만 다른 거부들이 그러하듯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는데, 그건 설령 가난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천성이었다. 돈에 큰 관심이 없고, 오히려 재물을 멀리하려는 마음까지 가지고 있던 담마딘나는 남편의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재물의 유혹에 빠지는 대신 자신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해 준다는 점도 담마딘나를 행복하게 했다. 남편은 아무리 바빠도 아침과 저녁식사를 함께했는데, 외박을 하거나 여자와 정을 통하는 일은 일절 없었다. 다른 부인을 들이지도 않았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담마딘나의 하루하루는 행복 그 자체였다.

돈 굴리는 일과 자신과 함께하는 일에만 시간을 보내던 남편이 어떤 마음으로 붓다의 법회에 참석해보겠다고 한 건지, 처음에는 의아했다. 하지만 생각 없이 계획을 세우는 법이 없거니와, 허튼 행동도 할 사람이 아니어서 쾌히 승낙을 했다. 그날 밤, 남편은 담마딘나의 말대로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이상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편의 얼굴이 예전과 달랐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차분해 보였고 행동거지는 조심스러웠다.

“오늘 아침에도 그러더니 지금도 놀란 표정이구려. 별일 없었으니 걱정 말고 저녁을 먹읍시다.”

남편이 내민 손을 잡고 식당으로 간 담마딘나는 얼굴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쳐다보았다. 무언가에 정신이 팔린 듯 초점 없는 눈으로 입을 대충 오물거리는 모습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남편은 집에 있을 때면 수시로 방에 틀어박히곤 했다. 문을 잠가 무엇을 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어떤 때는 일도 나가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방에만 머물기도 했다. 그나마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눈빛만은 변하지 않아 다행스럽게 여겼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이끌었다. 뭘 하는지 묻진 않았어도 궁금해 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따라 들어갔다.

“나는 이제 재물에 아무런 관심이 없소. 호화로운 집도, 산과 바다에서 올라온 음식도 어떠한 흥미를 끌지 못하오. 그동안 모은 재산을 모두 당신에게 주려 하오. 어떻게 한다고 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니 마음대로 하시오.”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48호 / 2018년 7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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