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초한삼걸의 처세
74. 초한삼걸의 처세
  • 김정빈
  • 승인 2018.07.16 11:20
  • 호수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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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얻은 건 사람 적재적소 기용했기 때문”

초한삼걸은 유방이 뽑은 세신하
장량, 불교서 경계하는 탐심없어
한신, 반역으로 체포돼 최후맞아
소하, 유방 도와 역모자 제거주도
그림=근호
그림=근호

한고조 유방이 어느 날 큰 잔치를 벌이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경들은 짐이 천하를 얻은 이유와 항우가 나에게 진 까닭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여러 신하가 의견을 냈지만 고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대들은 하나만 알 뿐 둘은 모르오. 내가 천하를 얻은 것은 단지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기용하였기 때문이오. 장막 안에서 계책을 세워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거두게 하는 데 있어 나는 장량(張良)만 못하오.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군대의 양식을 대주는 데 있어 나는 소하(蕭何)만 못하오. 백만대군을 이끌고 나아가 싸우면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는데 있어 나는 한신(韓信)만 못하오. 이 세 사람은 일세에 한 번 나는 드문 인걸들이오. 나는 이들을 얻어 그들의 능력을 잘 발휘하도록 해 준 것뿐이오. 항우에게는 범증(范曾)이라는 뛰어난 인걸이 한 사람 있었지만 그는 범증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였고, 한신 또한 그의 수하에 있었지만 그는 한신에게 중책을 맡기지 않았소. 이것이 내가 천하를 얻은 이유이며, 항우가 천하를 잃은 이유인 것이오.”

한고조가 꼽은 세 사람을 초한삼걸(初漢三傑)이라 하는데, 이들은 역할도 달랐지만 처세법도 달랐다. 먼저 장량은 전국칠웅 중 한(韓)나라의 명문 집안 출신이다. 그는 자신의 나라가 진시황에게 멸망한 것을 애통하게 여겨 진시황을 암살하려 하기도 했었다. 그 후 그는 한의 유방과 초의 항우가 경쟁하는 판에서 유방 편을 들어 그를 성공시켰다.

한왕조가 창건되자 그는 지금부터 자신이 어떻게 처세해야 하는지를 숙고했다. 그는 이 세상에 나온 본래 목적을 다 달성했다고 판단했다. 또 한 가지, 그는 유방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유방이 비록 자신을 아낀다고는 하지만 그는 냉정할 때 냉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권력욕도 많았다. 그는 자신의 권력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할 경우 누구든 죽여 없앨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장량은 은퇴했다. 책에는 그가 적송자(赤松子)라는 선인(仙人)을 따라 노닐었다고 적혀 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그에게는 이런 유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많다. 그에게 비밀스러운 병법서를 주었다는 황석공이라는 노인부터가 신선, 또는 도인을 연상할 정도로 신비한 사람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장가계는 장량이 은퇴해서 은거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또한 사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민간 전설이다.

소하는 본래 패읍이라는, 지금으로 치면 면이나 군쯤 되는 작은 행정관청의 관리였었다. 그는 그런 낮은 신분으로 유방을 따라나섰고, 그 이후 그는 유방의 가장 유능한 행정 책임자로 일했다. 그러니 유방이 황제가 된 뒤 그가 재상이 된 것은 당연했다. 요즘으로 바꿔 말하면 그는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서 국무총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소하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자신을 발전시킬 줄 알았다. 그는 자신에게 딱 알맞은 지위가 어떤 것인지, 그때 그 순간에 자신이 어떤 자리에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만 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했다. 그는 자신이 모시는 사람의 마음을 거스르는 법이 없었다. 그 한도 내에서 주군이 자신에게 필요로 하는 역할을 백 퍼센트 해냈다.

건국 초기 그는 불안정한 왕조를 위협하는 실력자들을 제거하는 데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창업을 도와야 할 때는 장량을 비롯한 많은 인재들을 유방에게 추천했지만, 창업이 끝나고 수성을 해야 할 시기가 오자 높은 직위와 많은 군대, 그리고 넓은 땅을 하사받은 인재들은 경계 대상이었다. 그는 한고조를 도와 그들을 제거하는 일을 적극 주도하여 살아남았다.

한신은 처음에는 유방의 적수인 항우 밑에서 낮은 직위, 오늘날로 보면 영관급 군인으로 복무했었다. 항우의 책사인 범증이 여러 차례 한신을 추천했지만 항우는 그를 중용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신은 청년 시절 불량배들의 가랑이 밑으로 지나간 경력이 있었고, 항우는 그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한신에게는 사소한 부끄러움을 참으면서 큰 영광을 바라보는 눈이 있었지만 항우에게는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간파하는 눈이 없었다. 항우는 남의 가랑이 밑으로 지나가는 사람의 몸을 볼 줄은 알았어도 그 몸속에 들어 있는 천재적인 지략을 볼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한신은 장량의 권유를 받아들여 유방을 찾아갔다. 그러나 유방 또한 그가 가랑이 밑으로 지나간 것을 말하며 그를 중용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유방을 설득하여 한신을 대장군에 기용하도록 유도한 사람이 소하이다.

유방은 한신을 불러들여 그에게 병법에 대해 여러가지를 물어 보았다. 막히는 데 없는 한신의 답변을 듣고 나서야 유방은 그에게 군사에 대한 전권을 맡겼다. 이후 한신은 항우의 군대와 일흔두 번을 싸워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그는 전투의 신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탁월한 군사 천재였던 것이다.

배수진을 처음으로 선보인 이도 한신이었다. 그의 능력으로 항우군은 무너졌고, 그 과정에서 그는 제나라의 가왕(假王)이 되었다.

왕이 된다는 것은 재상이나 장군이 되는 것과는 다른 점이 많다. 한신에게는 반란을 부추기는 수하들이 있었고, 그에 더하여 그에게는 백만대군이 있었다. 유방은 그가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다. 마침내 유방은 그를 체포하여 연금한 다음 처형해버렸다. 한신은 자신에게 유방과 경쟁하여 창업하라고 조언했던 괴통을 생각하며 통탄해 마지않았다. 그는 토사구팽,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아 먹게 된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죽었다.

초한삼걸 가운데 결말이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한신이다. 불량배들의 가랑이 밑으로 지나가는 수모를 견디며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기다렸던 그였다. 그만큼 그의 시야는 넓고 멀었었다. 그러나, 항우에 비해서는 시야가 넓고 멀었던 그였지만, 소하와 장량에 비해서는 시야가 좁고 짧았다고 해야만 할 것이다.

가장 시야가 넓고 멀었던 사람은 장량이었다. 소하는 비록 재상 자리에 올랐지만 한때 여후(呂后)에게 체포되어 생사를 위협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권력 주변에서 멀리 떠나버린 장량에게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었다. 장가계를 관광하면서 많은 중국인들은 장량의 은퇴 후 삶이 이렇게 멋졌을 거라고 상상할 것이다. 욕심을 거두어들인 마음으로 맞는 삶의 끝. 일을 마친 장량에게는 불교가 힘주어 경계하는 탐심이 없었다. 적어도 권력이라는 분야에 대해서만은.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48호 / 2018년 7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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