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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조오현의 ‘나는 말을 잃어 버렸다’

기자명 김형중

일곱 살 천진불 감자 공양에 의미 둔
청정한 걸사의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

오현 스님 시는 쉽고 평범해도
담긴 뜻은 여운 멀리 퍼져 심오
입적 전 마을에 아이들 장학금
노인 용돈 주고 본래로 돌아가

내 나이 일흔둘에 반은 빈집뿐인 산마을을 지날 때

늙은 중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더니
예닐곱 아이가 감자 한 알 쥐여주고 꾸벅,
절을 하고 돌아갔다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산마을을 벗어나서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나 했더니
그 아이에게 감자 한 알 받을 일이 남아서였다

오늘은 그 생각 속으로 무작정 걷고 있다

마치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시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놉니다. 그들은 고기를 잡기 위한 그물질도 할 줄 모릅니다”는 시구가 떠오르는 천진하고 소박함이 드러난 시이다.

참 맑고 티 없이 깨끗한 천진을 노래한 시이다. 아무런 욕심도 작위(作爲)도 없다. 김상용 시인이 “왜 사느냐고 물으면 그냥 웃지요”라고 읊은 시가 있다. 또 옛 시인의 시에 “길을 가는 중에게 어디를 가냐고 물으면 산 너머 저기를 향해 지팡이를 가리키지요”라는 시구가 생각나게 하는 시이다.

불립문자 선종에서 말을 잃었다는 것은 깨달음을 완성했다는 뜻을 의미한다. 무위의 성자 아라한의 경지를 노래하고 있다. 수행을 완성한 아라한은 ‘더 이상 배우고 닦을 것이 없다는 무학(無學)’을 뜻하는 최고의 성자로서 ‘대중으로부터 공양을 받을 만 한분’이란 뜻으로 ‘응공(應供)’의 뜻을 가지고 있다.

스님은 임금에게 왕사의 금란가사와 공양을 받는 것보다 아무 조건이나 작위가 없는 산골 예일곱 살 난 천진아동으로부터 감자 한 알을 공양으로 받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참다운 수행자의 길을 걷는 구도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청정한 걸사(乞士) 비구승(比丘僧)의 모습이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다. 아무런 조건이 없는 무주상(無住相) 보시의 공덕이 최고의 공덕이다.

조오현(1932~2018) 시인의 시는 누구나 읽으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평범하나, 시 속에 담긴 뜻은 긴 여운이 멀리 퍼져 심오하다. 그것은 시인의 마음이 꾸밈이 없어 본래 마음인 천진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스님은 스스로 승려로서 자격이 없는 낙제승, 즉 낙승(落僧)이라고 자신의 마음을 밑바닥에다 내려놓았다.

세상의 우스운 꼴이 다 보인 것이다. 큰스님이라고 나라의 어른들이 찾아와 이번 선거에 누가 당선이 될 것인가? 점을 봐달라고 우기니 얼마나 우습냐고 반문하고 있다. 그러니 스님의 관심과 대상은 천진아동일 수밖에 없다. 어린이는 꾸밈이나 숨김이 없는 천진불(天眞佛) 그대로이다.

인과가 엄연하다. 처음 마음을 내서 출가 구도자가 된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초발심자경문’을 공부할 때의 청정한 모습을 유지해야 신도로부터 존경과 공양을 받는 중생의 복전이 된다.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복을 빌어주는 승보이다. 스스로의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고, 닦고 또 닦아야 한다. 더 채우고 가지려고 하면 자신은 물론 승가공동체 마저 파멸시키고 만다.

오현 큰스님이 원적에 든 지 벌써 49재(7월 13일)가 되었다. 법정 큰스님이나 오현 큰스님은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탈탈 털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입적을 준비하면서 인제 용대리 이장을 불러 아이들 장학금과 노인들 용돈을 내주었다고 한다. 이것이 청정한 비구의 행색이다. 만고에 칭찬받을 스님의 모범적인 모델이다. 벌써 큰스님이 그립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48호 / 2018년 7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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