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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낯 보여준 예멘 난민

기자명 이중남

올해 들어 500여 예멘인들이 무사증 입국을 통해 제주에 도착한 뒤 대거 난민지위를 신청하자, 정부는 황급히 출도(出島)제한 조치를 내려 그들의 발을 묶고 예멘을 무사증 대상국에서 제외했다. 예멘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집회가 6월30일과 7월14일 두 차례에 걸쳐 서울 도심에서 열렸고, 그에 대한 맞불 성격의 이주인권 단체들의 집회까지 열리는 바람에 난민 이슈는 단박에 초미의 사회적 관심사로 자리 잡았다.

난민수용 반대를 주장한 1차 집회는 ‘불법 난민 신청자 외국인 대책 국민연대’가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주관했고, 2차 집회는 ‘난민대책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이라는 온라인 카페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보통 이런 연대집회는 그 취지에 동참하고 지지하는 단체들이 연명해 가담하게 마련인데, 두 집회는 보도자료나 웹페이지 어디에도 동참 단체나 지지세력에 관한 정보를 밝히지 않고 있다.

반대의 논거는 조야(粗野)하다. 한 시사주간지가 난민 신청자들의 취업설명회가 열린 6월18일부터 5일간 보도된 인터넷 기사 가운데 댓글이 많은 것들을 대상으로 분석했듯, ‘난민’과 ‘이슬람’ ‘테러’ ‘범죄’ ‘강간’을 연상시키는 방법이 그 핵심이다. ‘국민행동’은 메인 페이지에서 ‘REFUGEES(난민)’라는 단어를 곡해해 숫제 ‘강간(RAPE)’이라는 단어를 붉은 색으로 표기한 ‘RAPEFUGEES’라는 악의적인 조어를 쓰고 있다.

그간 이슬람-무슬림 난민과 관련해 떠도는 소문이 터무니없음을 확인해 주는 ‘팩트체크’ 기사는 여러 차례 나왔다. 난민 신청자들이 매달 138만원씩 생활비를 지급받는다거나 스웨덴이 무슬림 난민을 무분별하게 수용한 결과로 성폭행이 14배 늘어났다는 주장, 우리 정부가 난민 심사에서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것 등은 사실무근이다. 특히 작년도 법무부의 자체심사를 통한 난민 인정률은 1.5%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난민 인정에 인색한 국가라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반드시 짚고 싶은 대목이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은 지난달에 비해 더욱 확산되고 있다(리얼미터 7월4일 조사 결과 반대 의견 53%). 응답자 가운데 여성(성별)-수도권(지역)-20대(연령대)가 부정 평가의 주축임을 감안하면, 아프리카 무슬림 흑인 청년들이 불러일으키는 공포나 혐오는 우리 사회에서 분명 허상만은 아닌 듯하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이처럼 부정적 인식이 확대되는 원인을 ‘자료의 편향’에서 찾고 있다. 무슬림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거의 없는 우리는 서방 세계, 특히 미국 언론의 시각을 통해 전달된 자료를 통해 태도를 정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9‧11 테러 이후 전달되어 온 대부분의 정보는 이슬람에 대한 혐오와 공포에 젖은 것들이어서, 이런 누적된 자료를 몇몇 팩트체크로써 뒤집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난민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 인식이 그렇게 확정적인 것만도 아니었다. 불과 3년 전 쿠르디라는 난민 어린이가 터키 해변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하며 난민 정책이 관대해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는 그 어린이가 이슬람권 출신이라는 점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 삼촌뻘 됨직한 사람들이 제주에 도착하니 그들의 종교가 새삼 문제되고, 그들을 수용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시기상조라는 취지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무려 70만이 서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일은 결국 현행 법질서 안에서 제도적인 수순을 밟아 처리될 것이다. 하지만 전에 없던 상황 속에서 목격하게 된 우리 사회 동시대인들의 민낯은 참 낯설었고, 곰곰이 생각해봐도 이해될 것 같지 않은 ‘시기상조론’이라는 논리는 묵직한 화두로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이중남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운영위원 dogak@daum.net

[1449호 / 2018년 7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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