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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중도에 그만두지 않은 유치원생 나리

기자명 김정빈

서툴다는 건 이상할 일도 부끄러울 일도 아니다

발표회에서 최선 다한 5세 나리
서툴긴 했지만 중도에 포기 안해
도전과 노력 뒤엔 능숙함 따라와

지혜로운 관점은 잘했는지 보다
끝까지 해내려는 자세에 있으니
삶의 문제, 지혜로 풀어나가야

그림=근호
그림=근호

유치원생인 다섯 살 여자아이 나리가 학습 발표회를 맞아 학부모 앞에서 학생 대표로 첫인사를 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나리는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일주일 동안 열심히 연습했다.

그러나 발표회가 있던 날, 무대에 올라간 나리에게는 선생님의 처방이 별 소용이 없었다. 극도로 긴장한 나머지 나리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학부모들은 숨을 죽인 채 맨 처음으로 무대에 등장한 어린이 대표의 첫마디 말을 기다렸지만 상황은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더듬거리며, 나리는 일곱 문장으로 된 인사말을 모두 해 마치기는 했다. 하지만 나리의 인사말이 성공적이지 않았음은 명백했다. 인사말이 끝나자 박수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예의상 나온 그 박수는 이내 그쳤다. 무대에서 도망을 치듯이 물러나온 나리는 흐느껴 울며 선생님의 품 안에 쓰러졌다.

잠시 후, 선생님은 천천히 무대로 걸어 나갔다. 그러나 조금 전 나리가 섰던 그 자리에서 선생님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5초가 지나고, 10초가 지났다. 다시 20초가 더 지났다. 그러고 나서야 선생님은 입을 떼 말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우리는 나리 어린이가 여러분 앞에 나와서 하는 인사말을 들었습니다. 그에 대해 나리의 인사말이 매우 서툴렀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기는 합니다. 저는 그 진실을 애써 왜곡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그렇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며, 그 점을 기억하면서 저는 여러분께 나리의 인사말을 또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합니다. 나리의 인사말은 능숙했는가 서툴렀는가가 아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으며, 반드시 그렇게 바라보아야만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삶을 수십 년 동안 살아온 어른으로서, 우리는 어떤 일이든 처음에는 어렵게 마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일을 시작할 때와 무엇을 처음 배울 때 우리는 서툴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아기로서 처음 일어서는 것을 배우던 때 매우 서툴렀습니다. 처음 걸음걸이를 배울 때도 서툴렀고, 처음 말을 배울 때도 서툴렀습니다. 그러므로 서툴다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은 서툰 것 자체가 아닙니다. 정말로 부끄러운 것은 서툰 것을 부끄럽게 여겨 일을 시작하지 않거나 중도에서 배우기를 그만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능숙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일어서는 것, 걷는 것, 말하는 것에 능숙해져 있는 것은 서툰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다시 도전하고, 많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조금 전에 제가 여러분 앞에 나와 한참 동안이나 말을 하지 못하고 쩔쩔매며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어른이고, 말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인데도 많은 사람 앞에 서고 보니 두려움 때문에 첫마디 말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아직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리인들 오죽했겠습니까?

그런데 어떻습니까. 보십시오! 나리 어린이는 비록 서툴기는 했지만 중도에서 인사말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어른도 당황하게 되는 상황에서 나리 어린이는 두려움에게 지지 않았습니다. 인사말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 나약한 마음에게도 지지 않았습니다. 나리에게는 중도에서 일을 그만두는 것이 서툰 모습을 보이며 끝까지 해내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지만 나리는 어려운 쪽을 선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학부모들을 향해 물었다.

“학부모님들, 여러분은 오늘 발표회에서 여러분의 자녀가 서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시기를 바라십니까, 아니면 비록 서툴더라도 용기 있게 자기가 맡은 역할을 끝까지 해내기를 바라십니까?”
“서툰 것은 상관없어요.”
하고 한 학부모가 대답했습니다. “끝까지 해내기만 하면 우리는 만족할 겁니다.”

모든 학부모들이 대답을 한 학부모의 말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려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나리 어린이는 큰 칭찬을 받아야만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선생님이 말을 마치자 학부모들은 나리를 위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박수는 한참 동안 계속되었는데, 선생님은 그 박수가 자기 몫이 아니라는 의미로 옆으로 돌아서며 무대 뒤에 서 있는 나리 쪽을 향해 팔을 뻗어 손바닥을 펴 보였다.

나리의 눈에서는 아까와는 다른 의미를 담은 눈물이 펑펑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리는 선생님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야무지게 중얼거렸다.

“나는 커서 저런 선생님이 될 거야!”

부처님께서는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생로병사와 우비고뇌로 보시었다. 그런 다음 그것들의 원인을 욕심 많음과 어리석음에서 찾으셨다. 십이연기의 여덟 번째 항목인 갈애는 욕심 많음을, 첫 번째인 무명은 어리석음을 의미한다.

나리의 경우도 그럴까. 나리가 인사말에 실패한 것이 욕심이 많았거나 어리석었기 때문일까. 그런 것은 아니다. 나리는 인사말을 잘하려는 의욕을 갖고 있었는데, 불교는 이런 긍정적인 욕심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어리석음 또한 근본적인 어리석음이 아니라면 나리에게서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본 다음 우리는 나리와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상황을 바라보는 게 지혜롭지 못했음을, 즉 어리석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리는 인사말을 잘하는데 실패했다. 그러나 선생님 말씀 그대로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나리의 인사말을 바라보는 지혜로운 관점은 잘했느냐 잘하지 못했느냐가 아니라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내려고 했느냐 그렇지 않느냐라는 관점인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문제를 한 번 더 생각해보자. 혹 어리석은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를 헤아려보자. 그것을 지혜로운 관점으로 바라보자. 지혜를 통해 삶의 문제를 풀어나가 보자. 그럼으로써 한 걸음 한 걸음 온전한 행복을 향해 나아가보자.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49호 / 2018년 7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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