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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한국불교, 이 시대·사회 책임지라 ⑨ 휴암스님, 1987년 ‘한국불교의 새얼굴’

기자명 법보

굶어죽어도 권력에 기대지 말자

불법은 국왕에 의해서가 아니라
참된 신심에서 보존됨을 자각해
문명 구제의 불교 운동 펼치자

복법문으로 어떻게 천만인의 심장을 뒤흔들 수 있으며, 그런 것으로 어떻게 민족의 성격을 개조하고, 인류의 도덕적 심성을 변혁시키고, 중생의 업행을 개혁시킬 감화력을 발동시킬 수 있겠는가? 같은 복이라 해도 개의 복과 사람의 복이 같을 수 없으며, 스님이 복으로 여기는 것과 세속인이 복으로 여기는 것에는 다른 차원이 있어야 한다. 스님네와 불교가 개척한 차원 다른 복사상에 의해 세속적인 낮은 복사상을 끌어 올려 그 수준을 높여가는 범인류적인 진리의 일대항쟁이 불교의 저력 속에서 일어나야 할 것이다. 이것이 무량중생을 일체적으로 제도하는 길일 것이다. 그리하여 복의 뜻이 물질적 모양적인 데서 지극히 정신적인 것으로 복사상의 새 전망이 열리고, 그에 따라 세속적인 물질의 질서도 가치의 새 전망에 부응하여 대단히 인격화될 수 있는 문명 구제의 불교적 진리운동의 일대 열정이 기대될 것이다.

불교가 인류 문명사에 크게 등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물질의 질서를 인격화시키고, 개인과 사회와 인류 전체의 운명을 한 덩어리로 추진시킬 수 있는 범우주적인 불교의 실천상징을 제시해야 한다. 그럼에도 소위 세계의 양대 고등 종교의 하나인 불교가 걸핏하면 ‘호국불교’ 운운이나 하는 것은 얼마나 우리의 무사상성과 무지, 무식을 폭로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경 많이 읽은 분, 또 소위 지견 나신 분이라면 마땅히 이 시대 불교의 일대 전진을 위한 저 과제를 능히 감당해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인연 따라 출세한다 했는데, 이 시대처럼 인류가 사상적으로 방황과 새 길을 모색한 때가 없었고, 서구의 합리주의와 그의 신의 종교가 이 시대처럼 도전을 받은 때가 없었고, 동양사상과 인간주의에 이 시대처럼 범세계적인 관심을 기울인 때가 없었다. 그럼에도 동양의 대표 종교요 인간주의적 종교이며 소위 마음의 종교라 하는 심오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는 불교가 역사의 이 절호의 인연을 자기 것으로 휘어잡아볼 기백을 한 번 보여주지 못함은 어인 일일까. 대체 그럴 능력이 있는 종교인가, 없는 종교인가? 지금까지의 우리의 싸움과 고민의 내용은 너무 시시하지 않았는가? 한국불교는 저러한 과제를 영영 저버리고 말 것인가? 정말 깨어 볼 줄 모르는 영원히 잠 들어 버릴 종단이란 말인가?

학인이여! 선객이여! 강사여! 율사여! 대장부여! 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밤하늘에 박혀있는 별빛 줄기는 멋이 있다는데 이 조계종의 밤은 어찌 이리도 암울하기만 한가. 우리는 하루 속히 교육을 통해 이 나라 방방곡곡에 불음을 떨칠 역군을 벌떼 같이 배출시켜 전 국민을 불자화 할, 일대 민족적 포교운동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휴암 스님

그리하여 부처님이 국왕 앞에 서류 보고나 하는 이런 식의 불교를 철폐하고, 오백년을 천대받은 서러움을 우리 자신의 과오에 돌리는 범종단적 참회식을 올리고, 나라의 돈과는 세세생생 인연을 끊어야 한다. 불법은 국왕에 의해서라는 따위의 저열함이 아니라 ‘오로지 불자의 참되고, 올바른 신심에 의해서만’ 보존된다는 자각을 확립하고, 굶어 죽어도 짓눌려 죽어도 권력에 기댈 생각은 말아야 한다. 민중 속에 뿌리 내리는 백성의 영원한 불교로서 불교 관련 법령도 하루 속히 철폐하고, 부처님 중심, 스님 중심, 신도 중심으로 우리끼리 믿고 도우며 사는 자립종단, 바깥 세계를 향해서는 불교 진리의 탁월한 실현으로 호령하는 권위 있고 위엄있는 종단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의욕 높은 젊은 스님네들아, 마땅히 우리는 그렇게 해야 될 게 아닌가.

우리 불교계는 그때 그때 잘못된 점을 민감하게 시정하지 못하고 매사를 무심에 붙인다면서, 오랜 동안 폐습을 쌓아 왔다. 이에 하나 하나가 전체적인 폐습과 얽혀 있어 종단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자고 입을 여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다.

[1449호 / 2018년 7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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