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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마음으로 구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어”

중국 정공 스님의 '무량수경청화' 법문 ⑪

널리 배우면서 많이 듣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일문으로 들어가는 것
한 경전 통하면 일체 경전 통하니
정진 두 글자 파악할때 성취 가능

정공 스님은 “진성청정평등(眞誠淸淨平等) 정각자비간파(正覺慈悲看破)하면서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는 삶을 살 것“을 강조한다.
정공 스님은 “진성청정평등(眞誠淸淨平等) 정각자비간파(正覺慈悲看破)하면서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는 삶을 살 것“을 강조한다.

“누구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도를 구하기를 정진해 그치지 않으면 마땅히 불과를 증득할 수 있나니, 어떤 서원인들 이루지 못하겠는가!(人有至心求道 精進不止 會當克果 何願不得)”

“도(道)”는 매우 얻기 어렵습니다. 매우 얻기 어려운 것을 이미 얻었으니, 하물며 그 나머지 것이겠습니까? 단지 이론과 방법을 잘 알고 구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는 바로 “지극한 마음(至心)”입니다. 지극한 마음은 바로 참정성(真誠)의 마음이자 진심(真心)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을 써서 구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간과 출세간의 일체법은 모두 진심이 변하여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법계(十法界) 의정장엄(依正莊嚴)도 모두 진심이 변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서방극락세계의 사람은 옷을 생각하면 옷을 얻고, 음식을 생각하면 음식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청정심이 바로 진심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망상번뇌와 근심걱정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 진심이 나오겠습니까! 그래서 “지극한 마음”이 중요합니다. 단지 망상·분별·집착을 내려놓기만 하면 진심이 현전합니다.

“정진해 그치지 않으면(精進不止)” 이것이 구하는 방법입니다. 목표도 하나이고 방향도 하나이면 불법이든 세간법이든 반드시 성취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불자들이 날마다 진보하길 구해도 효과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너무 많이 배우고 여러 가지 법문을 뒤섞으면 정진이 아니므로 노력해도 효과가 없습니다.

불교 경전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치(理) 상으로 말하면 경전마다 제일이고, 평등하며, 위아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事) 상으로 말하면 개인마다 그 근성(根性)이 다르고, 총명지혜가 다르며, 생활환경이 달라서 어떤 법문은 수학하기가 쉽다고 느끼고, 어떤 법문은 수학하기가 곤란하다고 느낍니다.

염불법문은 하근기부터 상상근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수학할 수 있습니다. 참선과 밀교수행은 수학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염불법문은 간단하고 편리하여 집에 불상이나 향과 꽃이 없어도 수학할 수 있습니다. 형식이나 수학환경은 중요하지 않고 진심이 제일방편입니다.

개인마다 그 근성이 달라서 억지로 수학하면 어렵지만, 자신의 취향에 따라 수학하면 쉽습니다. ‘무량수경’에서는 똑똑히 말합니다. 다른 법문을 닦아도 단지 정토에 회향하기만 하면 모두 왕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법문을 수학하든 반드시 번뇌를 조복하고 극락세계에 태어나길 발원하여 구하면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진’ 이 두 글자를 파악하면 결정코 성취할 수 있습니다. 옛날 대덕께서 말씀하시길, “한 경전에 통하면 일체경전에 통한다” 하셨습니다. 자고이래로 일문에 깊이 들어가 성취한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이에 반해 널리 배우고 많이 들음으로부터 성취한 사람은 적습니다. 그래서 “일문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눈앞에 맞닥뜨리고 있는 학업이나 사업, 나아가 불자의 도업에 이르기까지 이 방법을 사용하면 모두 원만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세간 출세간의 일체 법은 참정성의 심행으로 정진하면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우리들에게 삿된 마음, 삿된 생각이 있으면 이러한 장애가 저절로 조성됩니다.

“그대는 어떤 방편을 닦아야 불국토의 장엄을 이룰 수 있는지 스스로 사유해보고, 그대가 수행하고자 하는 방법을 스스로 알아야 하며, 청정한 불국토를 스스로 섭수해야 하느니라(汝自思惟 修何方便 而能成就佛刹莊嚴 如所修行 汝自當知 清淨佛國 汝應自攝).”

이 단락은 자재왕불께서 법장비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경문에는 세 개의 스스로(自)가 있습니다. “스스로 사유해보고” “스스로 알아야 하며” “스스로 섭수해야 한다.” 이 경전은 경문이 비록 길지 않을지라도 대승불법의 일체 종(宗)·교(教)의 의취(意趣)가 모두 그 가운데 포괄되어 있습니다. 이 안에는 교종도 있고 밀종도 있으며, 선종도 있습니다. 이 세 개의 스스로는 바로 직지인심(直指人心)으로 자신의 진심자성(真心自性)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일체법은 자성을 여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토종에서는 “이 마음 그대로 부처이고, 이 마음 그대로 부처가 된다(是心是佛 是心作佛)”고 말합니다.

우리가 불문에 들어가면 삼귀(三歸)를 받길 구합니다. 삼귀는 삼자귀(三自歸)로 스스로 부처님께 귀의하고, 스스로 법에 귀의하며, 스스로 승가에 귀의함을 뜻합니다. 여기에 담긴 뜻은 매우 깊습니다. 참정성의 마음을 발하면 반드시 제불 진실의 과지(果地)를 포함하여 인과가 동시입니다. 불교에서 연꽃은 인과동시를 대표합니다. 연꽃은 인(因)입니다. 연꽃이 피면 연꽃 봉우리에 연밥이 열리는데, 연밥은 과(果)입니다. 그래서 보살이 발원하면 그 가운데 과를 은밀히 머금고 있습니다.

청량국사의 ‘화엄경소’에 이르길, “인은 과의 바다를 갖추었고, 과는 인의 근원에 사무친다(因該果海 果徹因源)” 하였습니다. 기꺼이 정진하기만 하면 발원은 결코 허사가 되지 않고 불과를 증득할 수 있습니다. 자재왕불께서는 법장비구에게 전수하여 대자대비를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여기에는 매우 깊은 뜻이 있습니다. 고덕께서는 세 가지 뜻이 있다고 풀이하셨습니다.

첫째 법장비구가 과거에 심은 인(因)은 대단히 깊습니다. 말법시기에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무량수경’이나 정토오경을 만나 신원행을 가질 수 있음은 과거 무량겁이래 심은 선근 복덕이 눈앞에 무르익은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깊은 인이 아니라면 이번 일생 동안 비록 정토법문을 만날지라도 신수봉행할 수 없습니다.

둘째 제불의 국토를 섭취(攝取)함을 말합니다. 이것은 모두 개인의 원심에 따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정토에 머물길 발원하고, 어떤 사람은 석가모니부처님처럼 예토에 머물길 발원합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중생을 제도하겠다고 발원합니다. 이처럼 개인의 원심은 다릅니다. 그래서 “청정한 불국토를 스스로 섭수해야 한다” 말씀하십니다.

셋째 무릇 정토에는 화토(化土)가 있고 보토(報土)가 있습니다. 화토와 보토는 높고 미묘하여 보살이 섭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여래과지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섭취는 여전히 자신에게 기대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모두 선종에서 이른바 향상(向上)의 일입니다. 여기서 상(上)은 여래과지의 상으로 확실히 보통 보살이 스스로 헤아릴 수 있는 경지가 아니고, 당연히 범부는 추측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매우 깊은 뜻이 이 경문에 들어 있습니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451호 / 2018년 8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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