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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누진제 폐지, 과연 폭염의 대안일까?

기자명 최원형

누진제 완화보다 선행돼야 할 건 성찰과 실천

먹거리 직접 영향 미치는 폭염
오늘날 기후예측 점점 불가능
기후변화 일등공신은 전력소비
산업·가정요금 사이 형평 맞춰야

독일 남부 바이에른이 개마고원 정도 위도에 해당될 만큼 독일은 위도 상 우리나라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해 있다. 보통 7월 평균 기온이 18도 정도라고 하는데 그런 독일도 이번 폭염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한 달 넘게 폭염이 계속되면서 피해가 속출했다. 일단 농작물 수확량이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과 뜨뜻해진 수온으로 물고기 폐사소식이 들린다. 숲 역시 폭염에 고통을 겪고 있다. 헤센 주에서만 80군데 산불이 발생했고 독일에 살고 있는 지인에 따르면 숲의 상층부가 누렇게 말라버렸다고 한다. 비단 독일뿐만이 아니다. 독일보다 훨씬 고위도인 스웨덴도 연일 30도가 훌쩍 넘는 기온에다 산불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폭염으로 건조해진 유럽, 북아메리카 등에서 자연 발화해 불타는 숲을 보고 있자니 통계에 잡힌 적도 없었을 수많은 생명들이 떠오른다.

인명과 재산 피해 뒤에 가려져 존재조차 없었던 듯 그렇게 사라져갔을 수많은 생명들이. 가축들도 물고기들도 이번 폭염에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비는 내리지 않고 폭염이 이어지다보니 밭작물을 갈아엎는 일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먹거리와 폭염은 이렇듯 매우 가깝게 연결돼 있다. 먹거리는 곧 생존이다. 지구상 대부분의 경작지들은 오랜 세월 동안 계속된 경작으로 지력이 대부분 고갈된 상태다. 사라진 지력을 비료로 대신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과거 30~40년 전에 비해 이미 농산물 생산량 자체가 감소했다는 통계치는 전 세계적으로 예외가 없다. 그런데 지력상실보다 더 큰 문제는 기후변화다. 작물화된 식물들은 각기 생육하기 적절한 기후조건이 있다. 특정 기온과 강수량 등이 작물마다 다르고 이런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이상적인 소출이 나온다. 그런데 오늘 지구의 기후는 완전히 어긋나고 있다. 예측이 점점 불가능한 단계로 접어들었다.

올 여름만 해도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들이 열기에 신음 중이다. 그리고 이런 기후변화의 원인제공자가 우리라는 사실을 대면하고 보면 입이 다물어진다. 특히나 기후변화의 일등공신은 전력소비에 있다. 게다가 한국의 1인당 전력소비량 증가세는 OECD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르게 상승 중에 있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우리보다 월등히 잘 살고 있는 나라들은 2010년 이후 전력소비량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데 말이다. 한국이 잘하는 게 또 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탄소배출량이 OECD회원국 가운데 4위에 해당한다. 올해 폭염에 한국의 기여가 결코 적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 삶의 총체적인 성찰과 실천을 얘기하기보다는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를 요구하고 더울 때 에어컨 맘껏 켤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왜곡된 전기요금 체계는 분명 손봐야 한다. 나라 전체 전력소비 가운데 고작 14% 정도를 차지하는 가정용 전력요금에만 누진제가 있다는 건 확실히 문제다. 그렇다면 56%나 되는 산업용 전기의 요금체계를 먼저 손 봐야하지 않을까? 산업용과 가정용 전기요금 사이의 형평성을 맞추는 일이 급선무다. 그렇게 된다면 기업의 전력소비 구조는 절전과 효율화로 방향을 전환할 것이다. 주택의 에너지 효율화와 절약할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 돼야하지 않을까? 미세먼지며 핵폐기물이며 송전탑 건설에 따른 지역갈등 등 전기를 생산하느라 발생하는 갖가지 사회문제를 등한히 한 채 누진제 폐지만 외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일까?

폭염에 거리를 다니다보면 실내에 켜놓은 에어컨의 서늘한 기운이 바깥까지 흘러나온다. 문을 연 채 장사하기 때문이다. 만약 상업용 전기요금에 누진제가 적용된대도 그럴 수 있을까? 해마다 가장 뜨거운 북극의 여름은 가장 추운 혹한의 겨울을 선물하고 있다. 이 상태라면 앞으로 여름 기온 40도를 훌쩍 넘는 일을 일상적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전기요금이나 가스요금이 OECD회원국 가운데 가장 싼 그룹에 들어간다. 전기요금 누진제 폐기를 얘기하며 사회적 약자를 언급하는데 아무리 전기요금이 싸진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에어컨이 없다. 한 지자체에서 이번 폭염에 무더위 쉼터를 운영한 것 처럼 약자층이 폭염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실현가능한 얘기 아닐까?

독일 대부분의 가정에는 에어컨이 없다고 한다. 우리보다 전기요금도 3배나 비싸다. 그들이 올해 폭염에 어떻게 견뎠을지 자못 궁금하다. 그런데 독일은 전기요금이 비싸다보니 단열 등 주택 효율화를 일찍이 시작했다. 벽두께 10인치, 삼중창, 완전 차폐형 블라인드, 재순환 라디에이터 등 에너지를 절약하고 효율화하려는 노력을 실천했다. 영국은 올 4월부터 에너지효율 최하등급 건물의 부동산 거래자체가 안 된다. 폭염의 대비책으로 전기요금 깎는 사회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51호 / 2018년 8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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