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솔론의 선견지명
77. 솔론의 선견지명
  • 김정빈
  • 승인 2018.08.13 17:50
  • 호수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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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으로 지내면 영광이나 다음날 구렁에 빠지리”

고대 그리스 7현인 중 한명 꼽혀
아테네의 최고 지위에 있을 당시
주변 사람들이 왕 추대하려 하자
전제 군주되면 떠날수 없다 거절
후회없는 것이 깨끗한 명예 강설
그림=근호
그림=근호

고대 그리스 7현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솔론(Solon, BC 630~560년경)은 시인이자 연설가였고, 세상의 평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혁 정치가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그는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했다. 또한 그는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쌓는 일에서 큰 기쁨을 얻곤 했다.

어느 때 솔론이 고국인 아테네를 떠나 밀레토스로 탈레스를 찾아갔다. 탈레스는 철학의 시조로 불리는 인물이며, 그 또한 고대 그리스 7현인 중 한 사람이다. 솔론이 탈레스에게 왜 결혼해서 아이를 갖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탈레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탈레스는 어떤 사람에게 은밀한 지시를 한 다음 그를 솔론에게 보냈다. 그가 솔론에게 자신은 금방 아테네에서 왔노라고 말하자 솔론은 그에게 아테네에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탈레스가 시킨 대로 대답했다.

“별다른 일은 없습니다만, 한 젊은이의 장례식을 구경한 적은 있습니다. 시민들의 말에 의하면 죽은 청년은 외국에 나가 계시는 아주 덕망 높은 분의 아드님이라더군요.”

궁금증을 못 이긴 솔론은 그 사람에게 꼬치꼬치 캐물어 죽은 젊은이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되었다. 솔론은 머리를 감싸 쥐고 통곡했다. 그때를 기다려 탈레스가 솔론 앞에 걸어와 말했다.

“선생처럼 침착한 분도 이렇게 고통스러워하지 않습니까? 이래서 제가 아내를 얻지 않는 것입니다.”

당시 서양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였다. 어느 때 솔론이 그를 방문했다. 하지만 솔론은 휘황찬란한 옷을 입고 갖가지 패물을 달고 있는 왕에게 아무런 찬사도 하지 않았다. 이에 크로이소스는 솔론에게 자신의 보물 창고를 보여주었다.

솔론이 돌아오자 왕은 그에게 자기만큼 행복한 사람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솔론은 자기 나라에 델루스라는 시민이 있는데, 그는 매우 정직하고, 착한 아들들과 넉넉한 재산이 있었으며,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용감하게 죽었다고 말했다.

왕은 델루스 말고 자기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솔론은 클레오비스와 비톤이라는 의좋은 형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두 사람은 소 대신 어머니가 탄 수레를 끌어 헤라 신전에 모셔다드린 다음 고통 없는 편안한 죽음을 맞았다고 솔론은 말했다. 크로이소스 왕은 화를 내며 “그러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오?”하고 소리쳤다. 솔론은 아첨도 하지 않고 왕의 비위도 거슬리지 않으며 조용히 말했다.

“리디아 국민들의 왕이시여, 저희 그리스 사람들은 왕답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민답게 살아가는 지혜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살이는 변화무쌍하고, 앞날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알기에 그리스 사람들은 오늘 하루의 행복을 자랑하지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시기하지도 않습니다.”

이때 우화 작가로 잘 알려진 이솝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는데,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본 다음 그가 솔론에게 말했다고 한다. “솔론 선생, 왕과 얘기할 때는 짧게 말하거나, 좋아할 만한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자 솔론이 말했다. “그것보다는 짧게 말하거나 도리에 맞는 말을 하는 편이 좋겠지요.”

오랜 시간이 지나 크로이소스는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과 대결하여 대패했다. 그는 포로가 되었고, 사형이 언도되었다. 크로이소스는 자신의 몸을 불태우게 될 장작더미 위에서 솔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통곡했다. 이에 키루스는 크로이소스에게 도대체 솔론이 누구인지, 신인지 사람인지를 물어보았다. 크로이소스가 말했다.

“솔론은 그리스의 현명한 철학자요. 나는 내 궁전의 화려함을 자랑하기 위해 그를 초대한 적이 있소. 그때 그는 나에게 행복이란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보다 그것을 잃을 때의 불행이 더 크다고 말했소. 그는 인간은 마지막을 보고 나서야 그가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도 말했소. 그러나 그때 나는 너무나도 어리석어서 그의 지혜로운 충고를 귀담아 경청하지 못하여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소.”

이 말을 들은 키루스는 솔론의 현명함에 감탄하여 크로이소스를 살려주었다.

솔론이 아테네 최고 지위에 있을 때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 그러나 솔론은 “전제 군주가 되면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게 된다”며 거절했다. 그의 친구들이 갖은 말로써 그를 설득하려 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그를 비난하자 그는 시로써 대답했다.

솔론은 현명하지도 똑똑하지도 않네.
지혜도 없고 용기도 없네.
왕으로 지내는 것은 영광이겠지만
다음날엔 구렁에 빠져 가문을 망치게 되리.
그는 다시 노래했다.
폭군의 권세를 휘두르지도 않았고,
내 이름을 더럽히지도 않았으니,
나는 후회할 것 없노라,
이것이 가장 깨끗한 명예.

지혜는 과거를 검토함으로써 현재가 왜 이러한지를 밝혀주고, 현재에 어떠하면 미래에 어떠할지까지도 알게 해준다. 시간은 모든 존재 위에 군림하지만, 지혜를 가진 사람은 오히려 시간을 이긴다. 선견지명을 가진 지혜로운 사람은 오늘을 살면서 미래의 일을 오늘 일처럼 명확히 예측한다.

불교는 지혜의 종교이며, 지혜는 여러 차원으로 나뉜다. 불교가 궁극지혜로 삼는 초세간적인 반야지혜는 아니더라도 세속적인 차원의 지혜를 가졌던 이는 역사상 매우 많다. 솔론이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자식 문제에 이르러서는 지혜로움의 한계를 보였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지혜의 한 극치를 보여주었다.

왕이 될 수 있는 기회, 그러나 그는 왕위를 사양했다. 싯다르타 태자 또한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지 않았던가. 역대의 모든 현자들은 권력보다는 지혜를 사랑했다. 그리하여 그분들은 권력자가 이르지 못한 지극한 행복, 고상한 경지를 성취하였다. 솔론은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지혜인이었고, 그래서 넓은 의미에서는 위대한 불제자라 할 만한 인물이었다.

불제자들 중에는 실제로는 구현하지 못한 상태에서 단지 이론적으로만 이해했을 뿐인 반야지혜를 앞세워 세속지혜를 무시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반야지혜는 물론 위대하다. 그러나 실제로 반야지혜를 구현하는 것은 불보살만이 가능한 일. 우리는 먼저 세속지혜부터 배워야만 한다. ‘가능한 최선’부터 이룬 다음 그를 기초삼아 궁극지혜를 ‘가능하도록’ 해야만 한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51호 / 2018년 8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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