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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의 공존

기자명 백승권
  • 법보시론
  • 입력 2018.08.20 13:14
  • 수정 2018.08.20 13:16
  • 호수 1452
  • 댓글 0

3년 전까지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았다. 재작년 결국 에어컨을 쓰기 시작했다. 아주 더운 날, 가장 뜨거운 낮 한때 잠깐 틀고 껐다. 작년엔 아주 더운 며칠 간, 늦은 밤 시간을 빼고 하루 종일 틀었다. 올해엔 무더위가 시작된 한 달 전부터 거의 매일, 늦은 밤 시간을 빼고 하루 종일 틀고 있다. 그동안 나는 내 몸이 에어컨 바람을 극도로 싫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올해 새롭게 깨닫게 됐다. 내 몸이 얼마나 에어컨 바람을 사랑하는지.

3년 전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혹은 나의 가족이 견뎌야 할 열기를 에어컨이란 깔때기로 걸러내 집 밖으로, 건물 밖으로 버리는 행위가 과연 온당한가? 쓰레기 무단투기와 무엇이 다른가? 재작년과 작년엔 이렇게 생각했다. 문만 열면 앞마당과 뒷마당의 온도 차이로 시원한 바람이 통과하는 시골의 농가주택이 아닌 아파트에 살면서 에어컨을 배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올해는 그런 생각의 과정을 간단히 생략하며 에어컨 리모컨을 누르고 있다. 나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행위를 하고 있으리라 여긴다. 에어컨을 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 여러 개의 생각이 서성거리고 있을 것이다. 아마 그것을 모아보면 수백 개, 아니 수천 개가 넘을지 모른다.

글쓰기의 세계, 담론의 세계에선 어떤 문제에 대해 일도양단을 내리는 것이 영리한 전략인지 모른다. 어떤 사람, 사물, 사태에 대해 명징하게 단정하고 자신의 판단과 잣대를 그 단정 위에 깃발처럼 꽂거나 물감처럼 칠해버린다. 거기에 사람들은 환호한다. 이것과 저것 사이에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해 힘들었는데 이런 어정쩡한 고통을 더 이상 지속시키지 않아도 좋으니 말이다. 일도양단의 논객이 팬덤(광신자)을 형성하는 것은 논리의 탁월함 때문이라기보다 그 단순성과 단호함 때문이다. 이들은 언어의 한계 따위는 고민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한계를 탁월하게 활용하기까지 한다.

최근 그래핀(Graphene)이란 신소재를 알게 됐다. 자연상태의 흑연은 수천 개의 분자층이 결합한 형태인데 여기서 한 층을 떼어낸 것이 그래핀이다. 2004년 영국 맨체스터 연구팀이 발견했고 이들은 그 공로로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분자 한 층을 떼어낸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래핀의 놀라운 물성을 알게 되면 수상의 이유를 납득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의 특성은 이렇다. 가벼우면 약하다. 강하면 유연하지 못하다. 그래핀은 이 상식을 전복한다. 가벼운데 강하다. 강한데 유연하다. 전기전도율은 구리의 100배다. 나노(Nano)의 세계로 들어가자 서로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성질이 하나의 물질에 공존하는 것이다.

‘모순의 공존’은 불교사상의 정수다. 불일불이(不一不異)가 그렇다.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 사물, 사태는 ‘일(같음)’과 ‘이(다름)’로 단정할 수 없다. 단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귀류(歸謬)함으로써 그 실상을 드러낸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은 이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우리가 살려면, 행동하려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에어컨을 켜거나 꺼야 한다.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선택지는 없다. 선택하지 못하고 서성거리기만 한다면 이 세상은 결코 굴러갈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느 국면에서 ‘단정’하되 그 불완전성과 임시성의 조건을 망각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그것을 배제하고 단정하고 선택해서 행동하는 것은 엄청난 비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신문과 SNS를 들여다보면 물을 얻기 위해 이웃 부족을 도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오늘도 에어컨을 켠다. 에어컨을 켜지 않는 판단을 배척하지 않는다. 에어컨을 켜지 않을 가능성을 지우지 않는다. 그때 그때 다르다는 것을 일관성으로 삼는다.

백승권 글쓰기연구소 대표 daeyasan66@naver.com

[1452호 / 2018년 8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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