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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수단은 근본을 해친다

기자명 성태용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고, 그러한 신념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 이야기에는 과장이 있고,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의 폐해도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근본 원리가 ‘법치’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고, 그 점에서 법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한 소크라테스의 말이 무겁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사회를 유지하는 근본이라 할 수 있는 법이 이토록 무시될 수 있는지? 그 법을 담당하는 주체인 사법부가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진 일이 있는지? 이러고도 법치국가라는 우리나라가 제대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사법부의 최고 수장이었다는 사람이 사법의 독립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정권에 영합한 자취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무슨 중요한 쟁점이 걸리거나 재판만 있으면 시위대가 법원을 에워싸고, 그 결과가 드러나도 똑같은 양상이 벌어진다. 법관이 양심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다. 또 이렇게 대중의 목소리가 법원을 에워싸게 되면 법관의 양심이라는 것이 지켜지기 어려운 상황이 될 것도 같다.

이렇게까지 법질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게 된 데는 긴 유래가 있다. ‘준법투쟁’, 즉 법을 지키는 것을 투쟁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구호가 심심찮게 들렸던 시절도 있다. 오죽 법이 이상한 게 많았으면 법을 지키는 것이 투쟁이 되었겠는가? “무전유죄, 유전무죄”, 즉 “돈이 없으면 죄가 있고 돈이 있으면 죄가 없다”는 말이 여전히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는 않은가? 법 집행의 형평성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땅에 떨어졌는지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오랜 동안 이런 많은 요인들이 누적되어 총체적으로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근본적인 불신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국가 존립의 기본 요소가 이렇게 무너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세력들이 잠시 이런 사태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 모두의 불행으로 끝날 것이 불을 보듯 분명하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 국가 사회가 마주한 가장 큰 과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렇게 총체적으로 문제가 드러났을 때야말로 그 근본을 다시 세우는 노력이 큰 결실을 거둘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한 노력 가운데 사법부의 자성과 혁신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또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를 엄하게 지켜보고, 올바른 혁신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에 우리 모든 국민이 함께해야 한다.

그러나 재판이 있을 때마다 법원을 에워싸고 시위를 한다든지 하는 일이 사법부를 올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신의 신념과 다르다고 하여, 자신의 이익에 배치된다고 하여, 또는 여러 다른 이유로 재판의 과정에 압력을 넣고, 재판의 결과를 비난하는 일들은 결국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한 것에 재판의 과정과 결과가 달라진다면, 그 자체가 바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사법권의 행사에 대하여는 차분하면서도 합리적인 자세로 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법이 잘못되었다고 하여 자의적으로 그것을 어길 수 있다면 정말 더 큰 문제가 나올 수 있다. 좀 돌아가는 길이 되더라도 나쁜 법을 고치는 수순을 차분하게 밟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폐해는 행정적인 차원이라든가, 기타 가능한 여러 방법을 모색하여 큰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법 적용이나 집행이 잘못된 것 같은 경우에도 차분하면서도 근본적인 대응을 통해 해결하도록 해야 할 일이다. 대중적인 여론의 힘이나 정치적인 권력에 의해 그것을 뒤집으려는 시도 자체가 법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자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잘못된 수단은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결국 근본을 해치고 목적과 배치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tysung@hanmail.net

[1452호 / 2018년 8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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