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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시리마 ②

기자명 김규보

원망하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는다

분노한 시리마 펄펄끓는 기름
웃타라의 얼굴에 부으며 웃어
원망없으니 기름 차갑게 변해

뜨거운 기름을 웃타라의 얼굴에 쏟아부은 시리마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게 바로 네 죗값이다! 얼굴이 형편없이 망가졌으니 남편은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야! 하하!”

하지만 웃타라에게선 어떠한 인기척도 없었고, 오직 자신의 웃음소리만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시리마는 웃음을 멈추고 웃타라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방금 전까지 펄펄 끓고 있던 기름이 차갑게 식어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웃타라는 자신을 향해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형용하기 힘든 공포가 밀려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시리마여. 당신이 마음을 내 주었기 때문에 나는 붓다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당신은 나의 은인입니다. 나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요. 만약 원망하였다면 당신이 던진 기름에 내 얼굴은 심하게 상처받았을 것입니다. 원망하지 않았기에 상처받지 않았습니다.”

웃타라의 말을 듣는 짧은 시간이 시리마에겐 마치 영겁의 세월처럼 느껴졌다. 원망하지 않으면 상처도 받지 않는다는 말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사이 몰려온 하인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시리마를 구타하며 끌어내려 했다. 웃타라는 그런 하인들마저 물리쳤다. 그 모습을 보며 시리마는 마침내 자신이 어떤 짓을 벌였는지 처절히 깨달았다. 웃타라의 남편을 자신의 소유라고 여긴 것도 모자라 질투에 눈이 멀어 잔혹한 방법으로 해하려 했다니. 폐부를 찌르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시리마의 마음을 휘감았다. 용서가 어려운 일을 저질렀으나 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마음만은 간절했다.

“제가 끔찍한 행동을 했습니다. 어떤 말을 해도 부족할 테지만 부디 저를 용서해 주세요.”

“용서는 제가 하는 것이 아니에요. 위대한 자, 붓다가 당신을 법의 길로 이끌 것입니다. 그분이 용서하신다면 당신은 자유로워집니다. 저와 함께 붓다에게 가서 설법을 듣도록 해요.”

자신이 벌인 부끄러운 행동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붓다에게 용서를 받아야 한다니 어떻게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겠노라 말을 하고 웃타라와 함께 공양을 준비했다. 다음날, 시리마는 웃타라의 손에 이끌려 붓다가 계시는 곳에 당도했다. 멀리서 붓다의 모습이 보이자 다시 한 번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붓다가 공양을 끝낸 뒤에야 용기를 내어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붓다는 시리마 대신 웃타라에게 질문을 던졌다.

“웃타라여. 끓는 기름이 얼굴에 날아왔을 때 마음은 어땠는가.”
“붓다시여. 시리마는 은인입니다. 시리마가 마음을 내 주었기 때문에 저는 위대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망하는 대신 감사한 마음을 가졌고 시리마가 던진 기름에 상처받지 않았습니다.”
“들었는가, 시리마여. 분노하는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 이와 같다. 분노는 분노하지 않는 것으로 이겨내고, 악은 선으로 이겨내야 한다. 인색한 마음은 보시로 이겨내고, 거짓은 진실한 말로 이겨내야 한다.”

시리마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쏟아냈다. 환락에 취해 비틀거리며 원하는 것을 손에 넣어야 비로소 만족했던 탐욕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욕망하면 욕망하는 대로 몸과 마음을 굴렸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는 그렇게 살 수 없었다. 분노를 분출하여 차마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악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분노는 분노하지 않는 것으로 다스리니, 이 사실을 알도록 해 준 웃타라는 은인이요 붓다는 스승이었다. 시리마가 붓다의 발등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붓다시여. 당신께 귀의합니다.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여 분노를 완전히 여의겠습니다.”

왕사성 최고의 유녀가 붓다에게 귀의했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나라 곳곳으로 번져 갔다. 왕사성에서 먼 지방에서 수행하고 있던 한 스님도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52호 / 2018년 8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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