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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그의 시대와 생애-상

기자명 장은화

세계대전 격랑 속 서양에 전파된 동양 불교문화

불교학자 스즈키 다이세츠 통해
아시아 선불교 20세기 서양 전파

임제종 선찰서 수행 후 법명 받아
불교개혁파 소엔 스님 가르침으로
보편주의적인 불교사상 영향 받아

일본 불교학자 스즈키 다이세츠는 서양에 선을 전파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간주된다.
일본 불교학자 스즈키 다이세츠는 서양에 선을 전파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간주된다.

아시아의 선불교가 서양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이르러 주로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를 통해서였다. 스즈키는 일본의 불교학자이자 수많은 선서를 펴낸 저술가이기도 했다. 승려도 선사도 아니었고 재가 불교학자였던 스즈키는 빨리어, 산스크리트어, 중국어, 일본어로 된 불교 텍스트를 연구했으며,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를 구사하고 서양사상에도 박식했다. ‘이야기 미국불교사’(How the Swans Came to the Lake, 1981)에서 저자 릭 필즈는 스즈키를 중국선의 초조(初祖) 보리달마와 비교하여 미국선의 초조라고 평가하였고, 종교학자 로버트 샤프(Robert Sharf)는 스즈키를 서양에 선을 전파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간주하였다. 그런가 하면 스즈키의 업적을 역사적으로 플라톤 저서의 라틴어 번역, 페리제독의 미일통상개방, 아인슈타인과 간디의 업적, 핵에너지의 발견이 가져다 준 충격 등의 문명사적 사건과 비교하여 강조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스즈키의 중요성은 서양의 많은 사상가들이 그의 독특한 선불교 해석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입증되기도 한다. 스즈키의 영향을 받은 사상가들은 종교학, 심리학, 철학 등의 분야에서 앨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로버트 블리스(Robert Blyth), 드와이트 고다드(Dwight Goddard), 에릭 프롬(Erich Fromm), 칼 융(Carl Jung),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은 스즈키의 선이 북미와 유럽 전역으로 널리 전파되는 데 기여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96년의 긴 삶을 살다간 스즈키를 필자는 그 시대정신에 충실했던 사상가요 저술가라고 본다. 그는 일본 근대화의 과정과 청일·러일전쟁, 그리고 양차 세계대전의 격랑을 겪으면서 일본의 불교문화를 서양에 성공적으로 전파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앞으로 필자가 제시하게 될 스즈키의 삶과 그의 선사상에 대한 평가는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에 의한 것이며 반대의견도 충분히 있음을 밝힌다. 다만 이 글을 통해서 필자는 스즈키의 시대상황과 삶의 궤적을 일별함으로써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선불교의 향방에 대한 모종의 안목 형성에 기여하고자 한다.

스즈키의 생애는 편의상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1870년 출생부터 1908년까지로, 그가 도미하여 오픈코트 출판사에서 폴 캐러스의 조수로 지내며(1897-1908) 영어와 서양사상을 숙달하던 시기이다. 두 번째는 1909년부터 1949년까지로 주로 일본에 머물면서 가르치고 왕성하게 저술활동을 하던 시기이다. 세 번째는 1950년에서 1966년까지는 주로 서양에서 활동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시기이다.

스즈키는 일본 근대화의 상징인 메이지유신이 시작되고 3년이 지난 1870년에 태어났다. 그 무렵 일본은 국제사회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불교는 타락하고, 퇴폐적이고, 반사회적이고, 기생충 같고, 미신적 종교라고 낙인찍혔을 뿐 아니라 일본이 필요로 하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저해된다고 하여 박해를 받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불교가 외래종교로서 민족적·이념적 단결에 필요한 정서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불교를 없애고자 했다. 게다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수백 년 동안 사찰을 후원해왔던 교구제도도 붕괴되었다. 그러나 일단의 불교지도자들이 정부의 부정적인 불교인식에 수긍하면서 타락한 불교에 새로운 활력이 필요로 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대응에 나섰다.

이처럼 불교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센 시대상황에서 스즈키는 동경제국대학에 다니면서 가마쿠라의 임제종 선찰 엔가쿠지(円覚寺)를 정기적으로 찾아가 수행했다. 그의 선 수행 이력을 보면 주로 1890년대에 주말과 방학을 이용하여 엔가쿠지를 찾았는데, 처음에는 주지였던 이마키타 코센(今北洪川)에게, 1892년 코센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는 코센의 후계자 샤쿠 소엔(釈宗演)에게 선을 배웠다. 그러다 스즈키는 1897년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스승 소엔으로부터 ‘다이세츠’(大拙)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일본선은 메이지 유신에 의해 크게 바뀌기도 했지만 승가에 의해 전승되는 선의 전통은 여전히 건재하다. 선승들은 수년에 걸쳐서 집중적으로 교리를 배우고 경전을 암송하고 나서 사찰에 들
어가 참선하면서 공안 수행에 전념한다. 코센과 소엔은 일본의 근대화와 정부의 불교박해에 대한 방어수단으로서 신불교(新佛敎) 운동을 주창하고 나섰던 당시의 엘리트 불교지도자 부류에 속해 있었다. 그들은 신불교를 통해서 일본이 경쟁력 있는 문화국가로서 근대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고 주창하고 나섰는데, 이들 개혁파들은 불교에 대한 호감을 높이고자 재가자에게 사찰의 문호를 개방하고 타 종파에 대해서도 통합적인 태도를 진척시켰으며, 보다 보편적이고도 과학적인 방법론을 강조했다. 소엔은 이처럼 신불교의 창안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소엔의 제자로서 스즈키는 엔가쿠지 선방의 이러한 개방적인 분위기 그리고 소엔이 지니고 있던 범세계적이고 보편주의적인 불교사상에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스즈키 자신이 재가자로서 참선하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주로 신불교 주창자들에 의해 일본선의 분위기가 바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의 서양인에게 스즈키는 선불교의 권위 있는 해설가로 간주되고 있지만, 비평가들은 스즈키의 일천한 수행경력을 문제 삼기도 하고, 그의 선 해석이 임제종에 편향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어쨌든 스즈키는 항상 재가불자였으며 선승이 되기 위한 정식 선 수행을 받은 적이 없다.

마틴 버호벤(Martin Verhoeven)과 로버트 샤프 등의 불교학자들에 의하면 코센과 소엔 같은 신불교 이론가들에 의해 보급된 일본선의 형태는 그 당시에도 일반적인 일본선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현재도 역시 아니라고 한다. 물론 신불교의 기치 아래 변화된 모습들은 서양선에서는 중시된다. 스즈키와 히사마츠의 저서들이 메이지 이전의 일본 전통선의 해석을 대표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양인에게 친숙한 선 수행의 방식은 비교적 근세에 생겨난 그리고 사회적으로 볼 때 주변적인, 다시 말해서 근대 임제종이나 조동종의 승가단체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 일본 재가불교운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실상 서양선의 보급에 나섰던 거의 모든 인물들은 일본선 단체 내에서는 비교적 주변적인 지위에 머물렀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스즈키, 니시다, 그리고 그들의 계승자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선을 서양에 전파했지만, 일본선 단체에서 이 지식인들은 그 영향력이 보잘 것 없었다.

이즈음 미국에서는 스즈키의 삶을 극적으로 바꾸게 될 사건이 전개되었다. 1893년 시카고에서 개최된 세계종교의회가 그것이다. 소엔은 그 모임에 초청받아 ‘붓다에 의해 설해진 인과법’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으며, 청중 가운데 감명을 받은 독일계 미국인 철학자이자 오픈 코트 출판사(Open Court)의 편집자인 폴 캐러스(Paul Carus)와 만나 둘은 친구가 되었다.

장은화 선학박사·전문번역가 ehj001@naver.com

[1452호 / 2018년 8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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