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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윤동주의 ‘나무’

기자명 김형중

나무는 백성·바람은 일제 강압 상징
식민지 지식인의 자기성찰 담긴 시

하늘·바람·별 등 서정적 표현
많았던 시인의 고뇌 가득 차
참담·우울한 시대 아니었다면
연기를 노래한 게송 같은 시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보통사람 같으면 “바람이 불면 나무가 춤을 추고/ 바람이 잠잠하면 나무가 자오”라고 읊었을텐데, 윤동주(1917~1945) 시인은 거꾸로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라고 하였다. 인과가 거꾸로 나타난 역인과의 관계이다. 물론 좋은 원인이 좋은 결과를 만들고, 또 좋은 결과가 새롭게 좋은 원인을 만들기도 한다.

보통 인과관계가 하늘이 꾸물꾸물하여 먹구름이 끼면 비가 온다. 그러나 가랑비가 내리면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기도 한다. 이렇게 시인이나 깨달음을 얻은 선사는 고정관념이 타파되어 생각의 관점이 다르다. 중국 당나라 육조 혜능선사의 ‘바람이 흔들리는가 깃발이 흔들리는가’ 공안 화두는 윤동주의 ‘나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무꾼 출신 혜능이 오조 홍인을 찾아가 가사와 발우를 전해 받고, 황매산을 떠나 남쪽 광동성 광주의 법성사에 이르게 되었다. 그곳에서 인종(印宗) 법사가 ‘열반경’을 설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바람이 불어서 당간(幢竿)의 깃발이 날리고 있었다. 한 스님이 “깃발이 움직인다”고 말하자 다른 스님이 “바람이 움직인다”며 서로 다투었다. 이 모습을 보고 혜능 스님이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라고 말하자, 인종법사는 예절을 갖추어 혜능 스님을 맞은 일화가 있다.

마음은 인식의 주체이기 때문에 마음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 따라서 윤동주 시인은 자신의 마음이 보고 느낀 대로 “나무가 흔들리면 바람이 분다”고 하였고, 혜능선사는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인 것도 아니고, 다만 내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나무와 바람은 연기 관계이다. 나무는 움직일 수 없는 식물로서 평생을 자신의 뿌리를 땅에 묻고 서서 살아간다. 다만 바람이 다가와서 흔들어 주고 생명의 호흡을 할 수 있게 해 줘서 춤을 추기도 한다.

나무가 자라서 거대한 숲을 이루고 홍수도 막아주고, 사막화 되는 미세먼지도 걸러준다. 미당 서정주는 ‘자화상’에서 “자신을 키워준 것은 8할이 바람이다”고 노래하였다.

1940년대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시집 서문을 대신하여 쓴 시 ‘서시’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하는 바람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 바람은 괴로움이고, 별은 사랑과 희망을 나타내고 있다.

‘나무’의 “바람이 잠잠하면 나무가 자오”에서 일제의 탄압이 잠잠해지면 조선의 백성은 비로소 편안히 잠을 잔다고 하는, 그래서 ‘나무’는 우리 민족의 백성을 상징하고 ‘바람’은 일제의 매서운 강압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윤동주의 시는 자연의 서정적인 표현을 하면서도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자기 성찰의식이 담겨 있다. 시인이 일제의 참담하고 우울한 시대만 살지 않았다면 ‘나무’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과 나무의 순수한 연기(緣起)의 사랑을 노래한 24자의 간명(簡明)한 게송 같은 선시(禪詩)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운수자연을 노래한 운수시(雲水詩)이다.

윤동주는 조국의 광복을 눈앞에 두고 1945년 2월에 27세의 젊은 대학생 신분으로 일본 감옥에서 요절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인 그의 시를 마음에 새겨서 광복절을 맞아 다시 임에게 헌사한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52호 / 2018년 8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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