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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시리마 ③

기자명 김규보

“미혹하여 무상한 육신을 탐했다”

시리마에게 연정을 품은 스님
썩어가는 시신에 충격을 받고
연정에서 벗어나 깨달음 얻어

붓다에게 귀의한 시리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설법을 듣고 수행했다. 어느 날부터는 욕망에 젖어 흥청망청했던 지난날도, 추악한 악행을 저질렀던 순간도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붓다의 법을 알게 해 준 소중한 인연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난생 처음 찾아온 평화에 한없는 행복을 느끼며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한 가지 서원을 세웠다. 죽는 날까지 매일 8명의 스님에게 공양을 올리겠다는 서원이었다. 시리마는 유녀로 생활하며 모은 막대한 재산을 공양을 준비하는 데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산과 바다에서 나는 진귀한 음식 재료가 시리마의 집으로 모여들었고, 누구에게 시키는 일 없이 하나하나 직접 요리를 했다. 모든 이가 만족스럽게 공양을 마치고 집을 나섰다.

본 적 없는 귀한 음식을 먹고 왕이 된 듯한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리마에게 초청받으려는 스님이 줄을 설 정도로 많아졌다. 왕사성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수행하고 있던 한 스님도 이러한 소문을 관심 있게 전해 듣고 있었다. 하루는 시리마에게 공양을 받은 어떤 스님에게 당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음식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시리마의 공손함과 아름다움은 두말할 필요가 없답니다. 일일이 음식을 하여 스님에게 손수 내어주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아…. 비단처럼 출렁이는 머릿결하며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하며….”

단지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지만 스님은 시리마에게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지독한 상사병이었다. 몸에서 열이 나고 정신도 혼미해져 수행은커녕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웠다. 연정이 더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지자 스님은 얼굴이 울긋불긋한 채로 박차고 일어나 왕사성으로 달려갔다. 수소문 끝에 당장 오늘 저녁에 공양하기로 한 사람을 찾고는 간절히 애원하여 겨우겨우 양보 받을 수 있었다.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몸이 부들부들 떨려오는 것을 느끼며 시리마의 집에 도착했다.

당시 시리마는 중병에 걸린 상태였다. 탐욕과 분노와 함께, 몸을 지탱하던 기운이 빠져나가 건강이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고 있었다. 스님이 방문했던 그날엔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 부축을 받으며 공양을 올려야 했다. 스님에겐 시리마의 그런 모습조차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병중에도 저리 어여쁘니 평상시엔 어떠했을까.’ 공양을 마치고 집을 나선 이후엔 단 한 순간도 시리마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시리마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붓다는 시리마의 시신을 화장하지 말고 그대로 둘 것을 왕에게 요청했다. 왕실 소속 유녀였기에 직접 화장을 명령했던 왕은 붓다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신을 무덤가에 안치하기만 했다. 시신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기 시작했다. 아홉 구멍에서 더러운 물이 흘러내리더니 구더기가 몰려와 시신을 덮었다. 붓다는 사람들을 무덤가로 모으도록 했다. 상사병을 앓던 스님도 시리마의 모습이 보고 싶어 무덤가를 찾았다. 붓다는 구름 같이 몰려든 인파 앞에서 말했다. “시리마라고 불린 여인이 여기에 있다. 황금 천 냥을 내고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이가 있느냐?” 허물어진 육신이 끔찍하고 냄새가 역하여 하룻밤이 아니라 잠시 보는 것만도 고역이었다.

“이 여인이 살아 있을 땐 천 냥도 아까워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돈을 준다고 하여도 마다하는구나. 몸이란 이와 같다. 늙고 병들어 죽게 되는 것이니, 숨을 거두면 누구라도 시리마의 지금 모습이 되고야 만다. 그러할진대 이 무상한 육체를 탐하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미혹에 휩싸여 마음이 만든 허상에 집착하는 것과 마찬가지니라.”

스님은 붓다의 설법을 듣고 시리마에 연정을 품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아름다움은 영원하지 않는구나. 육신은 똥주머니에 불과한 것을 어째서 그렇게 집착해왔단 말인가.’ 스님은 마침내 연정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끝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53호 / 2018년 8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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