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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언 스님 기고 “화합승가는 요원한 것인가”

기자명 법보
  • 기고
  • 입력 2018.08.28 15:09
  • 수정 2018.08.29 10:11
  • 호수 1454
  • 댓글 26

남해 화방사 주지 승언 스님 기고

허정 스님은 승가에 순수한 열정 지녀
사부대중 모두 평등하다는 입장 견지
자비 문중에서 징계를 너무 쉽게 남발
다양한 목소리·다른 목소리 경청해야

화방사 주지 승언 스님
화방사 주지 승언 스님

남해 화방사 주지 승언 스님이 8월28일 법보신문에 ‘화합승가는 요원한 것인가?-허정 스님의 징계를 접하며’를 보내왔다. 스님은 “(허정 스님은)주체적이고 자유로운 기질이라 특정 진영에 매몰될 수 없는 성품이기에 종권에 관심이 있거나 다른 정치적 목적이나 사적 이해관계로 움직일 스님도 아니다”라며 “곧 새로운 총무원장이 탄생할 것이다. 다양한 목소리 다른 목소리도 겸허히 듣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편집자

허정 스님은 나보다 승랍은 선배이지만 약30년 전 통도사 강원 치문반에서 잠시 함께 수학했던 동학이다. 강원 하판인 치문반의 생활이란 빡빡하고 긴장된 생활이어서 다들 날카롭고 예민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타고난 유머 감각으로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고 여유롭게 만들었다. 그때 그는 선원을 다니다 강원을 왔지만 나이는 20살을 갓 넘긴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나이임에도 그는 열린 사고와 주체적 사고로 자신의 의견을 정직하게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었으나, 부드럽고 여유로웠다. 특히 자유를 갈망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에 나는 그런 그의 내공이 선원에서 정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많은 세월이 흘러 그가 천장사 주지로 있을 때 천장사선원에서 함께 정진하는 인연을 가졌다. 천장사는 선원을 운영할 형편이 안 되는 가난한 절이었기에 그는 가난을 미덕으로 여기고 수용의 부족함과 가난의 불편함을 수용하는 것을 방부 조건으로 하였다. 따라서 수용은 조금 불편해도 대신 대중공양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하게 정진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그는 주지였지만 오후정진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선원대중과 똑같이 정진했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사부대중과 함께하는 새로운 형태의 일요법회를 개설하고 지역 스님들과 공부모임을 만들고 지역에서 불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나는 그때 산행이나 산책을 함께 하면서 종단에 대한 그의 생각과 불교관 등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사부대중이 주인이 되는 종단, 승가는 부자여도 수행자는 청빈해서 의식주 걱정 없이 누구나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수행풍토와 화합된 승가공동체,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승가가 되기를 누구보다 열망했었다.

그런 그의 승가공동체에 대한 애종심과 순수한 열정은 당시 구체적 사안을 대하는 그의 행동에서도 드러난다. 법인법 제정으로 선학원과의 충돌이 있을 때 누구보다도 자발적으로 종단의 입장에서 분원장을 찾아다니며 설득하였다. 조계종 승려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재산을 선택하는 분원장을 목도하면서 그는 종단의 현실을 많이 생각했다고 했다.

그리고 ‘100인 대중공사’에 임하는 그의 자세는 마치 돌산에서 금광을 캐는 심정으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그의 정성과 절박함은 안쓰럽기까지 하였다. 당시 나는 100인 대중공사에 대단히 부정적이었고 스님을 대중공사 대중으로 참여하게 한 것도 구색 맞추기용 요식 행위에 불과한 것이라고 평가절하 했었다. 그러나 그는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며 승가가 진일보할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100인 대중공사에 대한 준비와 공부를 신바람이 나서 열심히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교관 차이와는 별개로 도법스님에 대한 믿음이 컸다. 실상사 화엄학림에서의 토론식 수업과 이어진 인도유학 모두 도법스님의 은혜임을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승가대중이 주인이 되는 직선제, 특히 절대다수 승가대중이 원하고 있기에 직선제를 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사부대중으로부터 신망 받는 인물이 총무원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중 그는 교육원장 현응스님을 꼽았다. 현응 스님 밑에서 소임을 본 경험 때문인지 현응 스님에 대한 신뢰도가 굉장히 강했다. 지혜와 지식을 겸비한 열린 사고와 통찰력, 개혁성향, 그리고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현응 스님이 총무원장이 되면 종단에 구조적인 일대 변화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점점 갈수록 대중공사에 참여하고 오는 날엔 얼굴이 어두워졌다. 또한 당시에 불교신문 논설위원으로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자신의 글이 자꾸 수정과 편집을 요구 받는다고 했다. 할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종단의 현실에 답답해하며 종단의 부조리와 승가의 구조적인 병폐를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그즈음 천장사를 떠났고 그때나 지금이나 연락 없이 지내면서 언론을 통해 그의 소식을 알 뿐이었다. 나에게 각인된 허정 스님에 대한 이미지는 한마디로 유머와 자유다. 가난한 수행자이지만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은 참자유인으로서 부처님의 제자됨을 너무나 자랑스러워했던 스님이었다.

그토록 사랑하는 승가가 사부대중이 주인으로 평등하게 참여하며 의식주 걱정 없이 수행할 수 있는 화합 승가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그 누구보다 순수하게 꿈을 꾸고 실천했던 것이 오늘 여기까지 허정 스님을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가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성품에 징계는 어울리지 않는다.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기질이라 특정 진영에 매몰될 수 없는 성품이기에 종권에 관심이 있거나 다른 정치적 목적이나 사적 이해관계로 움직일 스님도 아니다. 다만 당파화 되고 사당화 된 승가가 아니라 모두가 주인으로 참여하는 화합승가를 이루고자하는 순수한 열정과 자신의 양심에 정직하게 대답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오인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징계해야 할 사안일까?

한 징계자(?)에 대해서 장황하게 꺼내는 이유는, 자비문중 일불제자의 화합승가가 징계를 너무도 쉽게 남발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자성이다. 그리고 그 잣대는 공정한가? 공정하고 화합에 기여해야 할 징계가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무기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 승가에 근본적으로 내편 네편이 어디에 있는가? 승가는 화합중이라 했는데 화합승가를 추구하고 있는가? 라는 성찰을 함께 해보자는 것이다.

사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우리 모두는 출가수행자로서 부처님의 일불제자로서 사형사제 도반이라는 의식이 과잉된 교단 정치로 인하여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승가 분위기를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린다. 진정 화합승가는 요원한 것인가? 설사 승가의식을 떠나서도 세상은 인권과 자유를 신장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 종단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 종단은 언젠가부터 다른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다른 목소리를 내면 화합을 깨뜨리는 행위, 종단을 음해하는 세력으로 규정되었다. 오늘날 한국 승가는 중앙종단차원 뿐만 아니라 본사도 선원도 강원도 다른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가 된지 오래다. 이러고는 건강한 조직이 될 수 없고 화합승가가 될 수 없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 견제 받지 않는 조직은 반드시 부패하고 망한다는 경험칙도 있다. 그래서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자자와 포살이라는 문화와 제도를 승가 속에 안착시키고 당신도 직접 예외 없이 평등한 승가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포살은 개인적 성찰과 참회라고 할 수 있고 자자는 서로 적극적으로 잘못을 지적하고 참회하는 공동체의 자정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포살과 자자로 승가의 청정성을 확인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모든 대중이 평등하게 참여하도록 한 것이 화합승가다.

승가는 첫째도 둘째도 자자와 포살의 정신에 입각한 화합에 있다. 오늘 우리에게 직면한 이 위기도 화합정신을 망각하고 교단을 당파화, 사당화한 것에서 비롯되었다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정치화된 종단, 진영논리에 따라 이전투구하는 종단, 당파화된 종단, 사당화된 종단, 각자도생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종단, 이대로 좋은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 누구 개인을 탓하고자 함이 아니다. 싫던 좋던 우리가 살아온 한국불교 역사 속에 만들어진 승가문화이고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대로는 승가의 미래를 담을 수 없고, 역사의 후퇴일 뿐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변화해야 되지 않겠는가? 얼마든지 의지만 있으면 화합승가를 구현할 수 있는 좋은 제도들이 많은데도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다. 허정 스님을 포함한 승려결의대회 측에서 주장하는 안도 좋은 안이다. 물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시간을 두면서 해야 될 것도 있다.

곧 새로운 총무원장이 탄생할 것이다. 다양한 목소리 다른 목소리도 겸허히 듣기를 바란다. 특히 말없는 일반 대중의 마음의 소리까지 들으려는 정성과 자비심이 있으면 참 좋겠다. 그래서 획기적인 개혁을 이루기 바란다. 기득권세력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은 역사는 거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출가수행자이기에 다를 것이라는 순진한 희망을 이어가고자 한다.

무엇보다 징계광풍이 불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는 일불제자 한식구이다.

화방사 주지 승언 합장

[1454호 / 2018년 9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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