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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 전 대법관

  • 데스크칼럼
  • 입력 2018.09.03 10:58
  • 수정 2018.09.17 18:07
  • 호수 1454
  • 댓글 4

‘시골판사’ 선택한 첫 대법관
남편은 출가 선택한 후 이혼
처한 곳 달라도 연꽃 같은 삶

박보영 전 대법관이 원로법관으로 재임용돼 여수시법원에서 일하게 됐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고 있다. 고위직 법관이 일선으로 복귀해 재판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특별할 게 있을까 여길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원은 1995년 법조경륜이 풍부한 원로 법조인들이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의미로 시·군판사로 근무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해 왔다.

그러나 이 제도의 실효성은 미미했다. 퇴임 대법관 출신이 원로법관에 지원한 사례도 없었다. 대법관 출신으로 대형 로펌에 들어가거나 변호사로 개업하면 수임료가 수백억 원에 이른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 때 국무총리 후보자로 나섰던 안대희 전 대법관은 5개월간 16억원을 번 사실이 알려져 낙마했고,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대법관 이후 5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며 60억원의 수임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대한민국에서 대법관은 최고의 명예직인 동시에 엄청난 소득이 보장된 꽃길인 셈이다.

박 전 대법관은 이러한 꽃길을 마다하고 시골판사의 길을 선택했다. 지난 1월 퇴임한 그는 사법연수원과 모교인 한양대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지난 6월 고향인 순천과 가까운 여수시법원 판사로 일하게 해달라고 대법원에 법관지원서를 제출했다. 시·군법원은 소송액 3000만원 이하의 소액 사건을 다루는 곳으로, 가난한 이들은 변호인 없이 홀로 소송하는 일들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그렇기에 박 전 대법관의 선택이 더욱 뜻깊을 수밖에 없다. 법조계에서는 그의 선택을 두고 “퇴임 대법관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사회활동 영역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최고 법원에서 법리를 선언해 온 퇴임 대법관이 1심 재판을 직접 담당함으로써 1심 재판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 것이다” 등등 평가와 기대들이 나오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이 ‘시골판사’를 선택한 배경에는 그의 남다른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도 있다. 1961년 순천서 버스회사를 운영하는 집안의 막내딸이었던 그는 학창시절 내내 우등생이었고, 무난히 한양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1984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1987년부터 법관의 길을 걷던 그는 가정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04년 경제적 이유로 법복을 내려놓았다. 남편이 세상일에 관심이 없어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한양대 법대 재학시절 만나 나중에 결혼하고 아이들까지 두었지만 남편은 세간법이 아니라 불법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 날 출가자의 길을 걷겠다고 입장을 정리한 남편이 이혼 동의서에 서명을 간곡히 부탁했고, 박 전 대법관도 더는 만류할 수 없었다.

이후 홀로된 박 전 대법관은 타인의 고통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고, 이혼을 하려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조정이나 합의를 권유했다. 돈 없는 사람들이 찾아올 때면 사건을 맡지 않고도 소장 작성을 돕기도 했다. 특히 의뢰인이 사무실에서 치료 상담을 받으며 객관적으로 자신을 성찰한 후 이혼 여부를 최종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개선에 선구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상한 성품에 탁월한 공감능력을 가졌던 그는 한국여성변호사회장을 맡아 다문화 가정과 성폭력 피해 여성을 위한 사업을 주도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김영란, 전수안 전 대법관에 이어 세 번째 여성으로 대법관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박 전 대법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2014년 11월13일 쌍용자동차 해직노동자 153명이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판결 등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높다.

이재형 국장

불교에서 법은 산스크리트의 다르마(dharma)의 역어로 질서를 유지하는 것, 법칙, 관습, 대상, 진리 등을 일컫는다. 불교에서는 이 같은 법을 통해 깨달음과 정토를 실현해나간다고 본다. 세간의 법과 불법은 둘이 아니다. 선업은 이어가고 허물은 돌이키며, 박 전 대법관도 전 남편도 법으로써 혼탁한 세상을 맑히는 연꽃으로 피어나기를 바란다.

mitra@beopbo.com

 

[1454호 / 2018년 9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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