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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 원전 번역으로 인도철학 연구 심화

  • 사람들
  • 입력 2018.09.03 11:59
  • 호수 1454
  • 댓글 3

이지수 전 동국대 교수 별세
향년 69세, 8월26일 지병으로
한문 중심 경전들 원전 번역
후학들에게 학문 토대 제공

‘우리나라 범어(산스크리트)학의 개척자’로 손꼽혀 온 이지수 전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가 8월26일 새벽 2시 지병으로 타계했다. 향년 69세.

1949년 서울에서 출생한 고인은 동국대 인도철학과에서 수학한 후 1978년 인도 푸나대학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범어 원전에 대한 이해 없이 영어와 일어, 한문 번역서만으로는 인도철학에 대한 학문적 깊이를 넓혀나갈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푸나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면서도 범어를 익히기 위한 노력은 각별했다. ‘판디트’라 불리는 인도 전통 범어학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단순한 언어의 구조와 해석법을 넘어 범어가 갖고 있는 어휘적 특성과 언어의 감수성까지 체화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후일 원전 번역에서 그 빛을 발휘했다. 하지만 1985년 진주 국립경상대 철학과 교수로 초빙되며 푸나대학에서의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귀국하게 됐고 후일까지도 이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1987년부터 모교인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부수업에 ‘범어’ 강좌를 신설한 것은 원전의 중요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의 결실이었다. 동시에 원전 번역에도 힘을 쏟았다. 그때까지 외국어로만 접할 수 있었던 인도 여섯 학파의 주요 텍스트를 우리말로 번역했으며 한문 중심이었던 불교경전과 논서들도 원전을 직접 번역해 연구에 활용하게 됐다.

이러한 고인에 대해 도올 김용옥 선생은 “원의범 선생님의 선구적 역할과 함께 이지수 교수님의 개척자로서의 공로는 누구나 다 심복하는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빈곤한 우리나라 기초학문의 체험 속에서 얼마나 괴로운 방황을 계속했어야 했는지 한없는 동정의 염이 인다”(이지수 저 ‘인도에 대하여’ 서문에서)는 말로 그 지난한 길을 대변하기도 했다.

이처럼 원전 번역과 연구에 고집스럽다할 만큼 천착한 이유에 대해 고인은 이렇게 밝힌 바 있다.

“한자로 번역된 불교용어만으로는 그 개념이 명학하게 파악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인도철학에 대한 영어 해설서를 아무리 읽어도 인도철학의 전문용어의 개념이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아 지적 혼란만 가중되었습니다. …인도의 여러 선생님들과 범어 원전을 공부하고 배우면서 오랜 기간 머릿속을 뒤덮고 혼란 속에 방황하도록 했던 짙은 안개가 걷히는 듯한 일종의 학문적 개안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체험으로부터 원전 공부를 후학들에게 전파하는 역할을 사명처럼 여기게 되었고…”(‘인도불교철학의 원전적 연구’ 출간사 중에서)

일찍이 원전연구에 대한 중요성에 눈을 뜬 고인의 선구자적 발자취는 인도철학과 불교학을 연구하는 후학들에게 풍성한 학문의 토대가 되었다. 이지수 교수의 지도 아래 1호 박사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를 비롯해 박영길(금강대 학술연구교수), 김성철(금강대 교수), 황정일(동국대 연구교수), 김진영(서강대 연구교수), 이영진(금강대 교수), 강향숙(동국대 연구교수), 이영석(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소장) 박사 등이 배출되며 인도철학 연구의 지평은 더욱 넓어질 수 있었다.

스스로도 말하듯 “재미없고 기발할 것도 없는 원전 연구를 계속 고집해 왔고, 그것을 본인 학문생활의 사명으로 삼아” 한 평생 묵묵히 한 길을 걸은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기억 또한 그의 삶을 담고 있다. 이영진 박사는 “별다른 취미도 없고 감정을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못한 성격 때문이신지 제자들에게도 ‘잘했다’ 칭찬하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사석에서 술잔을 기울일 때면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 더 열심히 하면 되지. 학문은 조급하게 할 필요 없다’며 늘 제자들을 응원해주셨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인명입정리론의 변증법적 방법’ ‘세친의 삼성론에 대하여’ 등 다수의 논문을 비롯해 ‘원시불교와 부파불교’ ‘인도철학’ ‘산스끄리뜨의 기초와 실천’ ‘산스끄리뜨 입문’ ‘유식입문’ ‘인도에 대하여’ 등의 역저를 남기고 2014년 6월 정년퇴임했다. 고인의 장지는 부친 이종익 박사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 선영에 마련됐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454호 / 2018년 9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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