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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푼니카 ①

기자명 김규보

“나는 왜 하인으로 태어나 고생하나”

의문을 분노로 표출한 푼니카
우연히 기원정사서 붓다 만나
악행 저지른 자기모습 돌아봐

아버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머니에 대해선 확실히 아는 게 있었다. 자신처럼 하녀였다는 사실이다. 수닷타 장자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 푼니카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어왔다. 일을 야무지게 하는데다가 성격도 무던해 많은 이로부터 사랑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푼니카가 걸음마를 떼기 전에 병마로 쓰러져 숨을 거두었기에 어머니에 관한 기억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푼니카를 안쓰럽게 여긴 주변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곤 했어도 부모가 없다는 사실은 늘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옛 기억을 꺼낼 때마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 기울여 들었다.

“네 엄마는 시린 겨울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강가로 나갔단다. 물을 긷기 위해서였지. 밖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손이 얼어붙을 지경인데, 물을 만져야 하니까 얼마나 추웠겠니. 모두 꺼려하는 일이었는데 네 엄마는 늘 웃으며 그 일을 해 주곤 했어. 다들 고마워했지.”

누구나 어머니를 말할 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훌륭한 인품으로 존경받았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그만큼 슬픔도 컸다. 그토록 훌륭했다는 어머니는 왜 일찍 죽어야 했을까? 악한 사람은 떵떵거리면서 잘살고 있는데…. 의문은 깊어졌지만 마땅한 해답을 찾지 못하자 하인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탓하며 그것을 저주하게 됐다. 어머니가 그랬듯, 푼니카도 한겨울에 물을 뜨기 위해 강가로 나가야 했다. 어머니와 달랐던 건,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집사는 푼니카가 할 일을 제때 하지 못했을 경우 몽둥이를 들고 모질게 때리곤 했다.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에 짜증이 났고 분노했다.

‘나는 왜 하필 하인으로 태어나 이렇게 고생하고 있지. 아니, 하인으로 태어났어도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누군지도 몰라. 다들 행복하게 사는데 나는 왜 이런 걸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존재야.’

그때부터 푼니카는 쌓아둔 의문을 조금씩, 조금씩 분노로 분출하기 시작했다.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잦아졌고 거짓말을 하거나 욕을 내뱉는 일도 예사롭지 않게 했다. 성격이 괴팍하게 변하자 푼니카를 안쓰럽게 여겼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등을 돌려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거는 이조차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푼니카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푼니카는 우연히 심부름을 하러 기원정사에 가게 되었다. 수닷타 장자가 붓다를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붓다라는 존재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도 알았다. 하지만 푼니카에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그렇고 그런 소문에 불과했다. 기원정사는 처음 가보는 것이었지만 별생각은 없었고, 그저 물건만 갖다 주고 나오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침 사위성 사람들이 기원정사에 모여 붓다의 설법을 듣기로 한 날이었다. 약속했던 이에게 물건을 건네주고 돌아서려는데 붓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자들이여. 성내는 것은 모든 법을 잃는 근본이 되고 악한 세계에 떨어지는 인연이 된다. 성냄의 원인이라고 믿는 그것이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성을 돋우게 되느니, 성내려는 생각은 마음을 뒤덮어버린다. 세 가지 번뇌 가운데서도 분노가 가장 거세니 성내려는 그 생각을 빨리 버려서 커지게 해선 안 된다.”

푼니카는 얼어붙은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분노하며 갖은 악행을 저질러왔던 자신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분노를 표출할수록 쾌감이 일어나 더욱 큰 분노를 터뜨리게 되는 악순환을 헤매는 동안, 악한 세계에 얼마나 가까워졌던 걸까.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의 찡그린 표정이 떠올랐다. 푼니카는 알고 싶었다. 이튿날부터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 기원정사로 향했다.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54호 / 2018년 9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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