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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밀라레빠의 복수와 수행

기자명 김정빈

원한은 원한이 아닌 오직 용서로만 풀 수 있다

백부에 고초 겪으며 복수 다짐
흑마술 익혀 주변인 모두 죽여
희열감도 잠시, 큰 악업 절감해

집에 액운 끼자 무상진리 깨쳐
산속 동굴에 살며 수행 정진해
깨달음 경지 노래한 게송 남겨

그림=근호
그림=근호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유명한 수행자인 밀라레빠(Milarepa, 1052~1135)는 티베트 서부에 있는 궁탕 지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세라뿌 갸르짼은 명문 귀족이었고, 어머니는 낭 지방의 왕족 출신으로 이름은 갸르모 겐이었으며, 그들에게는 밀라레빠 아래에 딸 하나가 있었다.

밀라레빠가 일곱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죽었다. 그의 아버지는 죽으면서 자신이 남긴 재산을 관리할 사람으로 백부를 지정했다. 밀라레빠가 재산을 되찾으려면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문제는 그의 백부와 백모가 밀라레빠의 아버지로부터 관리권을 위임받은 모든 재산을 차지해버리고는 밀라레빠 가족을 하인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었다.

억울함과 분노에 찬 밀라레빠의 어머니는 모든 희망을 아들에게 걸었다. 그녀는 아들을 닝마파의 한 스승에게 보내 공부를 시켰다. 그나마 공부를 시킬 만한 돈을 갖게 된 것은 그녀의 친정에서 얼마간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소년 밀라레빠는 스승을 모시고 마을에서 벌어진 어느 신혼부부의 결혼 피로연에 참석했다. 거기에서 만취한 뒤, 노래 부르는 모습이 그의 어머니 눈에 띄었다. 어머니는 아연실색하여 볶고 있던 보리를 내던지고는 오른손에 막대기를, 왼손에 재를 움켜쥐고 아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녀는 한 손으로는 아들의 얼굴에 재를 흩뿌리고 다른 손으로는 매로 아들의 몸을 사정없이 후려갈기며 외쳤다.

“오, 갸르짼이여! 당신의 아들이 얼마나 소갈머리 없는지 보십시오!”

그러더니 그녀는 기절해버렸고, 큰소리에 놀란 밀라레빠의 누이 빠다가 달려나왔다. 어머니의 가슴에 서러서리 쌓인 분노를 그제서야 깊이 이해한 밀라레빠의 가슴은 터질 듯이 아팠다. 그는 어머니의 볼에 자신의 볼을 대고 비비며 흐느켜 울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했다.

“너는 그렇게 즐거이 노래를 부를 기분이더냐? 나에게는 비애와 한탄 뿐인데!”
“어머니, 맹세코 제가 어머니의 원한을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소년 밀라레빠는 융통 트로겔이라는 흑마술사를 찾아갔고, 그 스승으로부터 더 뛰어난 스승인 윤덴 캬츠오라는 흑마술사를 소개받았다. 그 흑마술사는 밀라레빠에게 산꼭대기에 암자를 하나 짓도록 시켰다. 그런 다음 백부, 백모를 저주하여 그들을 패망시키는 주문을 가르쳐 주었다.

그의 흑마술은 적중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날은 마침 백부의 장남이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 밀라레빠의 백부와 가까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밀라레빠 네를 동정하고 백부와는 사이가 가깝지 않은 사람들은 뜸을 들이며 천천히 결혼식장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갑자기 거대한 전갈이 나타나더니 집게발로 저택의 큰 기둥을 들이받았다. 집이 무너지면서 밀라레빠의 백부, 백모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깔려 죽고 말았다. 애초에 밀라레빠는 백부, 백모는 죽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들이 살아서 비참함을 겪도록 하는 것이 그가 바라는 바였기 때문에 백부, 백모가 죽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를 탈출한 짐승들의 울부짖음이 마을을 뒤흔들었다. 비참한 울음소리와 신음소리로 가득한, 그리고 자신의 모든 가족이 죽어가는 것을 애통해하며 울부짖는 백부, 백모의 모습은 밀라레빠의 어머니에게는 그동안 바라고 바라마지않은 풍경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잔인한 희열감으로 차올랐다. 하지만, 복수를 행하고 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밀라레빠의 마음에 크나큰 고통이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행한 흑마술이 얼마나 끔찍한 악업인지를 절감했다. 고민의 시간이 이어졌고, 그는 이 모든 악업을 씻어내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행자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스승을 찾아 나섰다. 그리하여 밀라레빠는 금강승 불교 수행법 전수자인 마루빠를 만나게 된다. 마루빠는 니로빠라는 스승으로부터 수행법을 전수받은 금강승 불교의 대가였다.

제자가 오자 마루빠는 밀라레빠에게 탑을 하나 쌓으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밀라레빠가 탑을 절반쯤 쌓았을 때 그의 스승은 쌓아 올린 돌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제자가 그대로 하자 스승은 제자를 서쪽 산마루로 데리고 가더니 얼마 전에 쌓은 것과 똑같은 탑을 이곳에 쌓으라고 지시했다.

이런 식으로 마루빠는 밀라레빠를 괴롭히기만 할 뿐 수행법은 지도해주지 않는 일이 수십 차례나 반복되었다. 마루빠는 그 과정을, 밀라레빠가 흑마술로 지은 죄업을 정화시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밀라레빠로서는 스승의 처사가 괴롭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과정을 잘 견뎌내었고, 마침내 스승으로부터 금강승 최상의 수행법을 배우는 기회가 주어졌다.

어느 날, 그는 황폐해진 고향 마을 풍경이 펼쳐져 있는 꿈을 꾸었다. 꿈에 의하면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하나뿐인 누이동생 빠다는 걸인이 되어 있었다. 밀라레빠는 꿈이 진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고향을 향해 길을 떠났다. 가서 확인해보니 꿈에서 보았던 것은 모두 사실이었다.

어머니의 무덤가에 앉아 밀라레빠는 하염없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는 칠일 동안 깊은 사마디에 들었다가 깨어났다. 무상의 진리에 사무친 그는 앞으로의 일생을 오직 수행자로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밀라레빠는 주로 산속 동굴에 머물며 수행 정진하였고, 비상한 차원의 깨달음을 성취했다. 그는 깨달음의 경지를 노래한 수많은 게송을 남겼는데, 그것들은 ‘밀라레빠의 십만송’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법구경’은 말한다. “원한으로써는 원한을 풀 수 없으며 오직 용서로써만 그것을 풀 수 있나니 이것은 영원한 진실”이라고. 마음 깊은 데까지 사무쳐 있는 원한을 풀어내는 순결한 용서의 마음은 수행으로부터 나온다. 원한, 복수, 그러나 수행과 용서, 그리하여 최고의 평화! 밀라레빠가 간 그 길은 우리 또한 뒤따라 가야만 하는 응당한 불제자로서의 길이기도 하다. 작으냐 크냐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에게나 원망심, 원한심은 있다. 그리고 그 역시 작으냐 크냐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꽁꽁 언 마음을 녹이는 용서의 햇살마음 또한 누구나 계발할 수 있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54호 / 2018년 9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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