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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그의 시대와 생애-하

기자명 장은화

‘선’ 독특한 해석으로 서구에 지대한 영향 준 지식인·대중들 영적 영웅

일본·미국 오가며 불교철학 강의
선수행자들의 ‘바이블' 저서 출간
미국·영국 대중잡지에 소개되며
유명인사로 각종 언론 주목 받아

1950년대 미국사회에서 대다수의 교육받은 서양인들에게 선은 여전히 낯설었지만 이들은 "스즈키의 선불교 서적으로 선불교에 대해서 적어도 한 번쯤은 들어볼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1950년대 미국사회에서 대다수의 교육받은 서양인들에게 선은 여전히 낯설었지만 이들은 "스즈키의 선불교 서적으로 선불교에 대해서 적어도 한 번쯤은 들어볼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소엔은 스즈키가 일리노이의 폴 캐러스 밑에서 공부하도록 주선해주고, 스즈키는 1897년 미국으로 건너가 캐러스의 조수로서 11년 동안 불교자료를 번역했다. 소엔이 스즈키의 영적인 안내자였다면, 캐러스는 스즈키의 지적인 멘토가 되어 그의 향후 삶과 저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독일 대학의 철학박사이기도 했던 캐러스는 젊은 스즈키를 서양의 학문과 철학에 입문시켜 향후 선불교의 서양전파에 필요한 소양을 쌓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캐러스 아래서 장기간의 도제생활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스즈키는 한 사람의 불교학자로서 이름을 떨쳤을지 모르지만, 아마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아시아 사상의 전파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폴 캐러스는 그 당시 불교전통이 전무한 미국에 불교를 대중화하기 위해서 노력한 인물로서, 찬불가를 작곡하기도 하면서 불교 확산을 장려했다. 또한 그는 과학과 종교의 조화에 몰두했으며, 불교를 과학적, 이성적, 도덕적 원칙으로 간주했고, 또한 불교 이외의 종교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견해를 통해서 그는 불교가 근대적, 합리주의적, 과학적 입장과 전체적으로 상응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토마스 트위드(Thomas A. Tweed)에 따르면, 캐러스는 다양한 저술을 통해서 불교가 이른바 ‘과학의 종교’와 일치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불교가 ‘과학의 연구결과, 이성의 판단, 도덕의 요구, 그리고 종교 간 협력의 필요성과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담론은 근대화에 주력하고 있던 메이지 시대의 일본 대학에서도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서양철학도였던 스즈키가 캐러스의 사상에 마음이 끌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캐러스의 일원론에 대한 관심, 종교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 종교와 과학의 접목 시도 등은 이후 스즈키의 불교저작에 뚜렷이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캐러스의 오픈 코트 출판사에서 발간했던 ‘오픈코트(Open Court)’와 ‘모니스트(The Monist)’라는 저널을 통해서 스즈키는 당대의 많은 뛰어난 철학자들의 글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중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에게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제임스의 ‘종교체험의 다양성’(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 1902)은 이후에 스즈키가 선을 ‘순수체험’에 입각한 종교적 신비주의의 한 형태라고 내세우는 데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1년 스즈키는 베아트리체 어스킨 래인(Beatrice Erskine Lane, 1878~ 1939)과 결혼했는데, 래인은 뉴저지주 뉴어크(Newark) 출신으로서 컬럼비아대를 나왔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 없지만 둘은 많은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었다. 래인은 윌리엄 제임스와 함께 서양철학을 공부했을 뿐 아니라 신지학회(Theosophical Society) 회원이자 종교적 신비주의의 신봉자이기도 했다. 스즈키는 아내와 신지학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고 있었으며, 1920년대에 그들은 자신들의 집을 신지학회의 모임장소로 제공하기도 했다. 당시에 신지학은 스웨덴보르그(Emanuel Swedenborg, 1688~1772)의 신비철학과 더불어 유행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스웨덴의 신비주의자이자 신학자였던 엠마누엘 스웨덴보르그의 저서를 기반으로 형성된 기독교 운동이었다. 스즈키는 여러 해 동안 스웨덴보르그에 매료되었다가 나중에 그에 대한 열정은 식어버렸지만, 기독교 신비주의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전후에 출간된 스즈키의 저서들은 중세 도미니카의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요하네스 에크하르트(Meister Johannes Eckhart, 1260~1327/8)에 대한 안목 높은 논의를 많이 담고 있다.

일본에서 래인은 밀교종파인 진언종(眞言宗)에 관심을 가지고 영어로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1921년 스즈키는 교토로 옮겨서 일본 정토진종의 종립대학인 오타니(大谷)대의 불교철학과 교수직을 맡게 되었는데, 평생 정토진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관련 저술도 여러 권 내놓은 바 있다. 또한 아내 래인과 더불어 1921년에 창간했던 영어 불교학술지 ‘이스턴부디스트(The Eastern Buddhist)’는 현재까지 발간되고 있다. 1927년부터 스즈키는 ‘에세이인젠부디즘(Essays in Zen Buddhism, 1927)’을 필두로 1950년에 이르기까지 40여권에 달하는 영어 선불교서적을 미국과 영국에서 연속으로 출간했으며, 이 책들은 전후 미국 선수행자들의 바이블이 되었다. 스즈키의 선불교 서적 덕택에 1950년대의 미국사회에서 대다수 교육받은 서양인들은 선이 여전히 가망이 없을 정도로 이상하고 낯설기는 했지만, 선불교에 대해서 적어도 한 번쯤은 들어보게 되었다고 한다.

1951년 스즈키는 다시 도미하여 칼럼비아대에서 불교철학 강의를 개설했고 이것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선의 대유행(Zen boom)을 촉발했다. 6년 동안 금요일마다 열렸던 스즈키의 강의는 그 당시 많은 문인과 학자 그리고 비트운동의 핵심에 있던 뉴욕의 젊은 시인들과 보헤미안들의 관심을 끌었고, 또한 음악가 존 케이지, 소설가 잭 케루악, 시인 앨런 긴스버그, 가톨릭 사제 토머스 머튼, 심리학자 에릭 프롬, 그리고 역시 선을 대중화한 주역이었던 앨런 와츠(Alan Watts)의 사상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에 스즈키는 그의 선불교 사상에 관심을 둔 지식인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유명인사가 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점은 그가 미국과 영국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뉴욕커(The New Yorker)’와 ‘보그(Vogue)라는 대중잡지에까지 소개되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80대의 고령에 달한 스즈키는 그 당시 대중 사이에서 영적인 영웅이 되어 있었다.

선에 대한 스즈키의 독특한 관점은 현재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혼재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가 서구에 소개한 선은 현재까지도 미국을 비롯한 서양인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스즈키의 노력 덕택에 선은 2차 대전 이후 비(非)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선택하는 아시아종교로서 등장했다. 이렇듯 선이 20세기 중엽에 미국의 지식인과 젊은이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선승도 아니었고 선수행 경력도 일천했던 한 사람의 선 연구가가 그야말로 서양 지식인의 사유체계에 이처럼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은 역사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스즈키는 그 시대의 대중에 부응하는 사상을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가 일본의 불교와 그 문화를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으로 서양의 대중에게 전파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고 또한 그럼으로써 큰 명성을 얻기도 했지만 그의 사상의 저변에 흐르고 있던 일본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우월성은 현대 서양학계에서는 비판과 거부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서양학자들이 이른바 스즈키선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어보고자 한다.

장은화 선학박사·전문번역가 ehj001@naver.com

 

[1454호 / 2018년 9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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