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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최동호의 ‘히말라야의 독수리’

기자명 김형중

백 척 대나무 위에서 한 발 내딛듯
절벽 넘는 시인의 자기체험 담긴 시

히말라야 설산 독수리 생태를
시인 운명·고뇌에 연결해 읊어
수행자·범부 모두 독수리처럼
불굴의지로 자기한계 돌파해야

히말라야에 사는 전설의 독수리는/ 먹이를 찢는 부리가 약해지면 설산의 절벽에 머리를 부딪쳐/ 조각난 부리를 떨쳐버리고 다시 솟구쳐 오르는/ 강한 힘을 얻는다고 한다/ 백지의 눈보라를 뚫고 나가지 못하는 언어가/ 펜 끝에 머물러, 눈감고 있을 때/ 설산에 머리를 부딪쳐 피에 물든/ 독수리의 두개골이 떠오른다.

솔개의 환골탈태론이 있다. 솔개는 70년을 사는 조류인데 40년이 되면 먹이를 찢는 부리가 약해져서 산의 정상에 올라가서 절벽에 머리를 부딪쳐 조각난 부리를 떨쳐버리고 다시 솟구쳐 오르는 강한 힘을 얻는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다시 30년을 더 산다고 한다. 회사에서 혁신경영의 일화로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나이 60세가 된 퇴직자에게 새로운 시도와 도약을 충동하는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예화이다.

실제로 솔개는 미국이 원산지인데 그 수명이 25년이라고 하고, 조류의 부리는 손톱이나 발톱처럼 빠지면 새로 생겨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새가 부리를 크게 다치면 음식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수일 내에 사망한다고 조류생태학자들은 말한다.

이런 솔개의 부리가 시인들에 의해서 히말라야의 전설의 독수리가 되어 독수리의 환골탈태론으로 변화하였다. 최동호(1948~현재) 시인을 비롯하여 문태준의 ‘히말라야의 독수리’가 있고, 노동자의 시인 박노해의 ‘솔개는 제 부리를 깬다’가 있다.

최동호 시인은 평론가를 함께 한다. 늘 원고지와 씨름하면서 살아 온 사람이다. 천하의 이백이라도 하얀 종이를 들이밀며 ‘한 수 적어봐라’ 하면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은 “백지의 눈보라를 뚫고 나가지 못하는 언어가/ 펜 끝에 머물러 눈감고 있을 때/ 설산에 머리를 부딪쳐 피에 물든/ 독수리의 두개골이 떠오른다”고 읊고 있다.

작가가 생각이 멈춰서 글 한 줄을 쓰지 못하고 밤새워 끌탕을 하는 경우가 수없이 있다. 글 쓰는 일이 직업인 사람에게 원고지는 환희이면서도 가장 두려운 대상이다.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인가’ 절망할 때 히말라야에서 머리를 부딪쳐 피에 물든 독수리의 두개골을 생각하면서 절벽을 넘는 시인의 자기체험이 느껴지는 감동적인 시이다. 스토리가 있는 시이다.

문태준은 “으깨진 자리에서 돋아나는 새 부리만큼 생명을 얻는다/ 네팔 어디 혹한에 버려진 부리처럼/ 하늘을 파고든 채 빛나는 설산/ 그곳에 두 번 사는 독수리가 있다”라고 읊었다. 박노해는 “모두가 잠든 한밤중/ 타악- 타악-/ 절벽 끝에 제 부리를 깨는/ 솔개의 소리 없는 새벽울음”라고 읊었다. 모두 수작이다.

최동호의 ‘히말라야의 독수리’는 올해 유심작품상이다. 히말라야 독수리들의 생태를 시인이 운명과 고뇌에 연결시킨 점을 높이 평가하여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한다. 출가 수행자나 시인이나 모든 사람들이 히말라야 독수리처럼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한계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

‘전등록’에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시방세계현전신(十方世界現全身)”이라는 장사경잠(長沙景岑) 선사의 법문이 있다. “백 척이나 되는 긴 대나무 위에서 한 발을 내딛어야 온 세상의 새로운 모습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구도자가 마지막 단계에서 부딪치는 자기 한계상황을 돌파해야 할 때 모든 것을 걸고 죽을 각오로 돌파하는 결단의 마음이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잡고 있는 손을 놓아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는 현애살수(懸崖撒水)의 고사가 있다. 절벽에서 절망을 딛고 한 번은 떨어져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대장부라 할 수 있다.

성공한 사람의 공통점은 한 번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다. 굳센 의지와 용기가 있는 사람이 큰일을 해낸다.

김형중 동대부여중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54호 / 2018년 9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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